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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김예림 톱10, '약'하지 않은 한국 피겨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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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 김예림 톱10, '약'하지 않은 한국 피겨 [베이징올림픽]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02.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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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퀸’ 김연아(32) 은퇴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무게감은 급격히 줄었다. 수많은 ‘포스트 김연아’ 후보군이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꽃을 피운 이는 없었다. 한국 피겨는 김연아와 함께 한 여름밤의 꿈을 꾼 것 같았다.

이후 8년이 흘렀다. 여전히 강력한 위용을 뽐내는 ‘슈퍼스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와 비교해 한국 피겨는 많이도 변했다.

유영(18·수리고)은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4.16점, 예술점수(PCS) 68.59점, 총점 142.75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70.34점과 합쳐 총점 213.09점. 세계 6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유영이 17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총 213.09점을 획득, 6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연기를 마치고 포효하고 있는 유영.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개인 최고점(223.23) 경신은 무산됐지만 김연아(2010년 대회 228.56점·2014년 대회 219.11점)에 이어 역대 한국 선수 여자 싱글 올림픽 최고점에서 세 번째 높은 점수를 얻었다. 순위로도 김연아를 제외하면 평창 대회 때 7위에 올랐던 최다빈(22·은퇴)을 넘어섰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고난도 점프 기술은 트리플 악셀을 성공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동안 이 기술을 연마하면서도 제대로 착지를 해내는 것도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트리플 악셀을 제대로 구사하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유영은 이번 대회 쇼트프로그램과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첫 점프인 트리플 악셀을 소화해냈다. 회전수 부족 등이 있긴 했지만 온전히 소화해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둘 수 있는 성과였다.

두 차례 연기에서 첫 점프를 성공적으로 마친 유영은 이후 거침없었다.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로도 알려진 ‘레 미제라블’에 맞춰 연기를 펼친 이날은 쇼트프로그램 때보다도 더 안정적이었다. 7차례 점프와 다양한 스핀까지 무난히 소화한 유영은 연기를 마친 뒤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예림 또한 훌륭한 연기로 9위에 오르며 한국 동계올림픽 첫 동반 톱10 진입 성과를 써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보다 앞서 링크에 선 김예림(19·수리고·단국대 입학예정)의 연기도 훌륭했다. 푸치니의 투란도트 바이올린 버전 선율에 몸을 맡긴 김예림 또한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두 손을 높이 들고 뛰는 고난도 타노 점프로 마무리한 걸 시작으로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를 펼쳤다.

쇼트프로그램 당시 아름다운 몸짓으로 연기를 마친 뒤 씩씩하게 걸어나오는 장면으로 인해 ‘피겨장군’이라는 애칭을 얻은 김예림은 이날도 깔끔한 마무리 후 털털한 성격이 돋보이는 반응을 보여줬다. 134.85점을 더한 김예림은 총점 202.63점으로 9위에 올랐다.

한국 피겨 선수가 올림픽에서 나란히 톱10에 오른 건 사상 처음. ‘김연아 키즈’들의 성장으로 더 이상 한국이 피겨의 변방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큰 수확이었다.

둘은 이번 대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카밀라 발리에바(16·러시아)와 대비되는 행보로 더욱 큰 격려와 관심을 받았다. 남자 선수들도 쉽게 소화할 수 없는 4회전 점프를 거침없이 뛰며 ‘천재소녀’로 불리는 발리예바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며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발리예바가 올림픽에 정상적으로 출전했다는 점.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발리예바의 자격 일시정지를 했다가 철회했고 이에 반발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제소했으나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발리예바가 만 16세 이하 보호선수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며 기각했다.

금지 약물 복용에도 경기 출전을 감행한 카밀라 발리예바는 수차례 엉덩방아를 찧고 체면을 구기며 메달 획득에도 실패했다. [사진=연합뉴스]

 

발리예바는 CAS 청문회에서 “할아버지와 컵을 함께 쓰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복용하던 약물을 자연스럽게 섭취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CNN에 따르면 트라비스 티가르트 미국반도핑기구(USADA) 회장은 “발리예바의 소변 샘플에서 검출된 금지 약물 농도는 샘플 오염으로 판정받은 타 운동선수와 비교해 200배 가량 많은 양”이라며 “발리예바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경기력 향상 물질을 복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발리예바가 출전한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는 정상에 섰다. 많은 비판 속에 나선 쇼트프로그램에서 82.16점으로 1위에 올랐던 그는 부담감 때문인지 수 차례 엉덩방아를 찧고 141.93점을 얻어 총점 224.09점으로 4위,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우승은 총점 255.95점을 받은 안나 셰르바코바, 은메달은 251.73점을 따낸 알렉산드라 트루소바(이상 ROC)에게 돌아갔다. 동메달은 일본의 사카모토 가오리(233.13점)의 몫이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선 유영과 김예림을 만족감을 표했다. 점수와 순위를 떠나 자신만의 연기를 훌륭히 마쳤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만큼 올림픽은 정정당당함을 바탕으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검증하는 곳이고 아쉬운 성과에도 이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였다.

더 이상 김연아는 없지만 한국 선수들은 세계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걸 이번 올림픽을 통해 증명했다. ‘약’하지 않은 한국 피겨의 성과다. 반면 발리예바는 금지 약물을 복용하고도 개인 종목에선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빈축을 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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