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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벗은 김보름, 매스스타트 메달로 마음고생 보상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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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벗은 김보름, 매스스타트 메달로 마음고생 보상받을까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2.02.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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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김보름(29·강원도청)이 누명을 벗었다. 오랜 마음고생을 뒤로 하고 이제 준비했던 대로 빙판 위를 달리면 된다. 한국 선수단이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매스스타트 일정에서 메달을 추가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폐막 하루 전날인 19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경기가 열린다. 2018년 평창 대회에서 남자부 이승훈(IHQ)이 금메달, 여자부 김보름이 은메달을 따냈던 종목이다. 이승훈과 김보름은 올해도 각각 정재원(서울시청), 박지우(강원도청)와 함께 출전해 두 대회 연속 메달 획득을 노린다. 이날 오후 4시 준결승이 시작된다.

김보름은 이번 대회 강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되진 않지만 오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낸 터라 오로지 레이스에만 집중한다면 지난 4년간 흘린 땀을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고조된다.

최근 김보름은 과거 '왕따 주행' 논란으로 얽힌 노선영(은퇴)을 상대로 낸 민사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사진=연합뉴스]
누명을 벗은 김보름이 19일 매스스타트에서 올림픽 2연속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는 지난 16일 김보름이 노선영을 상대로 청구한 2억 원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노선영)는 원고(김보름)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피고가 2017년 11∼12월 후배인 원고에게 랩타임을 빨리 탄다고 폭언·욕설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이전 가해진 폭언은 소멸시효가 지나 배상 범위에서 제외됐다.

재판부는 "원고·피고와 함께 훈련한 선수들이 국가대표 훈련 당시 피고가 원고에게 화를 내며 욕설하는 것을 봤다는 사실확인서를 작성했다"며 "그 내용은 원고의 스케이트 속력에 관한 것으로 '천천히 타면 되잖아 XXX아' 등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피고의 허위 인터뷰로 명예가 훼손됐는지에 대해선, 원고가 피고를 소외시키고 종반부 갑자기 가속하는 비정상적인 주행으로 '왕따 주행'을 했는지 먼저 판단해야 한다"면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특정감사 결과 '왕따 주행은 없었다'고 결론지었고, 재판부 역시 같은 의견"이라고 매듭지었다. 평창 대회 직후 이뤄진 정부 조사 결과에 재판부도 수긍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 경기는 정상적 주행이었다. 오히려 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주행순서를 결정하고 선수 간 간격이 벌어질 때 적절한 조처를 할 지도력 부재 등으로 초래된 결과"라며 "설령 선수들 사이 간격이 벌어졌다고 해도 각자 패턴과 속도대로 주행하고, 뒤처진 선수는 최선을 다해 앞 선수를 따라가는 게 경기 결과에 유리하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다"고 했다.

단 법원은 노선영의 인터뷰로 피해를 봤다는 김보름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허위 사실은 직접 원고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문제점을 제기하거나, 피고 입장에서 느낀 것을 다소 과장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보름이 노선영(오른쪽)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사진=연합뉴스]

김보름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 8강에 노선영, 박지우와 함께 출전했다가 왕따 주행 논란에 휩싸였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노선영이 한참 뒤처져 들어왔는데, 김보름이 마지막 주자 노선영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경기 후 노선영을 무시하는 듯했던 인터뷰 태도까지 겹치면서 비난 여론이 일었다.

이후 문체부가 감사를 통해 경기에서 고의적인 따돌림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미 여론의 뭇매를 맞은 김보름은 큰 상처를 입고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김보름은 1년 뒤 오히려 자신이 노선영으로부터 훈련 방해, 폭언 등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고백했다. 국가대표로 선수촌에 입촌한 2010년부터 평창 올림픽이 열린 2018년까지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노선영은 반박했지만,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김보름의 손을 들어줬다.  

김보름은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길고 길었던 재판이 드디어 끝났다"고 운을 떼며 심경을 전했다. 왕따 논란이 벌어진 직후인 2018년 2월 21일 휴대전화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 사진도 첨부했다. 그는 '빙판은 정직하니까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했다. 빙판이 알아줄 거니까 난 열심히 타면 된다'고 썼다.

"죽기 살기가 아닌, 죽어보자 마음먹고 평창 올림픽을 준비했었다. 2018년 2월 24일. 내 몸은 내가 노력했던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며 4년 전을 떠올렸다.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날이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메달이 확정된 순간 눈물을 쏟고는 빙판 위에서 국민에 사죄의 절을 올렸다. 닷새 전 발생한 왕따 주행 논란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왕따 주행 논란 이후 펼쳐진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관중을 향해 큰 절을 하며 사죄했던 김보름. [사진=연합뉴스]
김보름은 승소 판결에 장문으로 심경을 전했다. [사진=김보름 인스타그램 캡처]
김보름은 승소 판결에 장문으로 심경을 전했다. [사진=김보름 인스타그램 캡처]

김보름은 "이후 4년, 정말 많이 힘들었고 포기하고 싶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채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상황이었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을 시작했고, 그날 경기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이 이제야 밝혀지게 됐다"고 적었다.

그는 위자료로 받는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겪은 일들을 계기로 앞으로는 이런 피해를 보는 후배 선수들이 절대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상처와 아픔은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만 오늘로써 조금, 아주 조금 아물어 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4년 전 느낀 고통을 완전히 털어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달랜 그는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때의 아픈 감정은 세상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다. 공황장애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인한 트라우마까지 생겨 아직도 경기 전에 약을 먹지 않으면 경기를 할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지나간 나의 평창 올림픽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이제야 그 평창 올림픽을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제 진짜 보내줄게. 안녕, 평창. 잘 가"라고 썼다.

그러면서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고, 경기는 이틀 뒤로 다가왔다. 비록 4년 전 기량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이번 올림픽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물론 평창에서 보여드리지 못했던 나의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냈던 선수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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