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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와 노스페이스, 호랑이썰매…올림픽 용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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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와 노스페이스, 호랑이썰매…올림픽 용품의 비하인드 스토리 [SQ포커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2.03.1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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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 아름다운 선전을 한 몇몇 선수들은 스타덤에 올라 각종 방송과 뉴미디어 콘텐츠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여러 면에서 진한 아쉬움과 여운을 남겼다. 이런 가운데 이번 동계올림픽을 ‘즐감’했던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궁금증으로 떠올랐던 올림픽 용품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했다.  

먼저 한국 선수단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로부터 총 400억 원 이상의 후원을 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공개한 동계올림픽 출전 종목별 연맹·협회, 관련 단체 후원 현황에 따르면 총 91개 기업이 지난 2018년 평창 대회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15개 종목에서 417억5200만 원 상당의 현금 및 현물을 지원했다.

선수단을 물적으로 돕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홍보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화면에 노출되는 게 인지도 향상 및 매출 상승과 직결되는 용품 후원사들의 경우 올림픽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그야말로 특수를 누리기도 한다.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을 기다리기에 앞서 알아 두면 재미있음직한 이야기들이다.

노스페이스가 동하계올림픽 4개 대회 연속 한국 선수단을 후원했다. [사진=영원아웃도어 제공]
노스페이스가 동하계올림픽 4개 대회 연속 한국 선수단을 후원했다. [사진=영원아웃도어 제공]

◆ '미국산' 노스페이스 심벌, 태극마크와 한 몸?

노스페이스는 올림픽 효과를 톡톡히 보는 브랜드로 통한다. 

미국 브랜드 노스페이스는 지난 2016년 리우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20 도쿄 하계올림픽을 거쳐 이번 베이징 대회까지 4개 대회 연속 올림픽 단복을 제작했다. 여기에 지난해 대한체육회와 4년 더 계약을 연장했으니, 2024 파리 하계올림픽 때도 공식 단복을 노스페이스가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한국 판권을 갖고 있는 영원아웃도어는 4개 대회 연속으로 대한체육회와 계약하면서 대표팀 유니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개회식 및 폐막식 단복부터 유니폼 제작을 모두 맡았다. 황대헌, 곽윤기, 김아랑, 최민정 등 올림픽 시상대에 선 선수들의 가슴팍에는 태극마크와 함께 노스페이스 심벌이 새겨졌다.

노스페이스는 이번에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성공했다. 페트병 등 리사이클링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기술을 접목했다. 단복 한 벌을 제작하는 데 500㎖ 페트병 200여 개가 활용됐다. 그렇잖아도 '뉴트로' 열풍을 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올랐는데, 가치 소비 트렌드까지 잡아냈다는 분석이다.

ESG(친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인 요즘 영원아웃도어의 이런 시도는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올림픽 개막에 맞춰 선수단복 4종을 모티브로 한 '팀코리아 레플리카'를 내놨는데 큰 관심을 모았다. 시상용 단복을 모티브로 한 '베이징 팀코리아 V 재킷'은 초기 물량이 금방 품절됐고, 개·폐회식 단복에 기초하는 '팀코리아 다운 파카'는 벌서 리셀(재판매)러들의 타깃이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원아웃도어는 코로나19가 휩쓴 2020년 매출을 전년비 5.4% 끌어올렸고, 영업이익은 무려 35.7%나 늘렸다. 지난해 매출도 국내 아웃도어 업계 호황기로 통하는 2013~2014년 수준에 버금가는 것으로 추측된다. 올림픽 수혜 연장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벌써 8년째 국가대표 유니폼을 만들면서 올림픽을 통해 이미지가 제고됐다는 평가다.

휠라는 네덜란드 등 유럽 대표팀을 후원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휠라는 네덜란드 등 유럽 대표팀을 후원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국산' 휠라는 유럽을 택했다

일각에선 올림픽이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국내 브랜드에 힘을 더 실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2012 런던 하계올림픽,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단복을 후원한 휠라는 노스페이스에 자리를 내준 뒤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휠라는 런던 올림픽 당시 국내외에서 3000억 원대 홍보효과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영원아웃도어가 그 몫 이상을 챙겨가고 있는 셈이다.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 필라 형제가 만든 브랜드지만 지난 2007년 한국지사가 글로벌 브랜드 사업권을 완전 인수하면서 토종 브랜드가 됐다.  

휠라는 '귀화' 브랜드 특성을 살려 해외 마케팅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번 대회에선 네덜란드 선수단 단복을 제작했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색 의류와 가방 및 신발에 휠라 로고가 새겨졌다. 뿐만 아니라 휠라는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빙상 대표팀도 지원하며 유럽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업계에선 대한체육회가 국산 휠라 대신 미국산 노스페이스를 선택한 데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평창 동계올림픽을 1년도 남겨두지 않았던 지난 2017년 초 대한빙상경기연맹과 휠라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당시 빙상연맹은 대표팀 선수복 공급업체를 휠라에서 돌연 헌터로 바꿨다. 국내에서 30년 만에 다시 열리는 올림픽 특수를 노리며 50억 원 이상의 연구비를 투자한 새 경기복을 공개할 계획이던 휠라는 크게 반발했고, 빙상연맹과 법적 다툼까지 벌였다. 당시 양 측은 서로 입장을 내놓고 연신 반박 보도자료를 뿌리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사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의 봅슬레이에는 '대한민국' 글씨로 형상화한 호랑이가 새겨졌다. [사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 썰매 빌려 타던 대표팀, 한국만의 호랑이를 새기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봅슬레이에선 영화 '쿨 러닝'의 후예 자메이카 대표팀이 어렵사리 본선에 출전해 완주하는 장면이 이목을 끌었다. 눈을 보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자메이카 대표팀은 장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라인 모금을 벌였지만 목표 금액에 도달하지 못했고, 중고 썰매를 구해 이번 대회에 참가해 감동을 자아냈다.

역시 다른 나라 썰매를 빌려 타던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지난 2014년부터 비로소 우리만의 썰매를 갖게 됐다. 소치 대회부터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썰매를 타고 있다. 현대차는 3차원(3D) 스캔 기술을 활용하고 레이저를 이용해 풍동(風洞) 실험을 하는 등 자동차 연구 개발 과정과 똑같은 방식으로 썰매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이번 대표팀 썰매에는 '임인년'에 열리는 베이징 대회에 앞서 좋은 기운을 얻고자 흑호를 새긴 게 특징이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은 헬멧과 썰매에 태극기, 전통문양, 붓글씨 등 한국적 디자인을 담고자 고심했다. 

한국판 호랑이 썰매를 제작하기 위해 비주얼스토리텔러 대표인 권동현 작가를 찾았다. 권 작가는 국립고궁박물관 미디어아트를 담당하고, '비주얼로 살아나는 이순신'을 집필하는 등 한국 역사를 시각화하는 비주얼 스토리 텔러로 2020 예술경영 우수사례로 선정됐던 인물이다. 권 작가는 연맹으로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호랑이 모양으로 형상화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사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스켈레톤 썰매에도 단원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속 호랑이가 그려졌다. [사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호랑이는 예부터 우리나라 건국신화에 등장하고 1988 서울 하계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될 만큼 국민들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우리 민족 기상과 얼을 대표하는 동물로 인지되기도 한다. 2018 평창 대회 스켈레톤에서 금메달,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썰매 강국 한국의 자긍심을 나타낼 대표 캐릭터로 채택됐다.

권동현 작가는 흑호를 한글로 표현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또 '대한민국' 글씨를 호랑이 모양 그리고 붓글씨 질감의 켈리그라피로 표현했는데, 이는 한국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스켈레톤 썰매에는 우리나라 전통문양인 단청과 단원 김홍도의 ‘죽하맹호도’ 속 호랑이를 담았다.

권 작가는 "우리나라 대표팀의 강인함과 용맹함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결과물을 접한 봅슬레이 대표 석영진은 "썰매 디자인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용맹스럽고 강해 보인다. 올해가 임인년이기도 해서 더 의미 있는 디자인"이라며 화답했다.

이번 대회 스켈레톤 '황제' 윤성빈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 탓에 트레이드마크인 '아이언맨' 헬멧을 착용하지 못했지만 그가 탄 썰매에는 한국의 혼이 담겨 있었다. 이번 대회 대표팀이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내지 못하면서 장비에 담긴 의미가 크게 주목받지 못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차준환이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시즌 베스트 점수를 받으며 전체 4위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을 낸 차준환. [사진=연합뉴스]

◆ 피겨스케이팅, 걸치고 두른 게 다 돈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차준환이 남자싱글에서 역대 가장 높은 톱5에 이름을 올렸고, 여자싱글에서도 유영과 김예림이 각각 6, 9위로 마치면서 나란히 톱10에 들어 다음을 기대케 한다. 차준환은 이미 팬덤이 두텁고, 김예림은 이번 대회 우아한 연기 장면과 상반되는 털털한 매력으로 '피겨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어 앞으로 더 주목받을 전망이다.

은반 위에서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고풍스런 느낌까지 자아내는 피겨는 실제로도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로 통한다. 다소 과장하면 선수들이 대회에 나설 때 착용하는 스케이트부터 드레스까지 모든 것이 돈이다.

단순히 의상뿐만 아니라 레슨비, 대관료, 안무 구성 등에서 큰 비용이 발생하는 '럭셔리한' 종목이기도 하다. 차준환과 함께 이번 대회 남자싱글 본선 무대를 밟은 이시형의 경우 어려운 가정 형편을 극복하면서 올림피언 꿈을 이룬 것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츠부터 비용이 상당하다. 상위 레벨 선수의 경우 발 형태에 맞춘 수제화를 신는데, 많은 선수들이 부츠에 발이 잘 맞지 않아 이를 수차례 교체하고, 최악의 경우 대회까지 포기하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하고는 한다.

방상아 전 SBS 피겨 해설위원은 "남자 선수들은 두 달에 한 번, 여자 선수들은 3개월에 한 번씩 부츠를 교환한다. 고난도 점프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체중이 모두 부츠에 실리니 신발이 오래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전한 바 있다.

김연아 역시 수제로 맞춘 부츠와 특수 제작된 의상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곤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연아 역시 수제로 맞춘 부츠와 특수 제작된 의상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곤 했다. [사진=연합뉴스]

선수용 부츠 한 켤레 가격이 100만 원, 날까지 포함하면 160만~180만 원대에 형성됐다는 걸 감안하면 경제적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다. '여제' 김연아(은퇴)의 경우 일본에서 스케이트화 제조 분야 최고 장인으로 꼽히는 요시다 요시오(吉田良雄) 씨의 고객이었다. 특정 선수의 습관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100% 수작업을 하는 요시오 씨의 스케이트화 가격은 기성 제품 3~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의상 역시 피겨 연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수들은 큰 대회를 앞두고 의상 선정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가격도 고가다. 피겨 의상 제작엔 선수, 안무가가 참여하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배경음악을 듣고 선수의 연기 영상을 본 뒤 관계자들과 논의를 거쳐 단 한 벌뿐인 옷을 만든다.

김연아는 나섰던 대회마다 '베스트 코스튬'으로 뽑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007 테마곡에 맞춰 연기했을 때 입은 의상은 장식하는 데만 200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그가 밴쿠버 대회에서 입었던 의상은 160만 원대였다. 하뉴 유즈루(일본)가 2014 소치 대회 남자싱글에서 우승할 때 입었던 의상은 3000달러(322만 원)에 달했다.

차준환과 유영이 이번 대회 착용했던 의상 역시 정확한 가격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수백만 원대인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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