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경기결과를 떠나 한국-가나 심판을 본 앤서니 테일러 주심을 향한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과거 손흥민을 퇴장시켰던 그라서 우리나라와는 ‘지독한 악연’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 밤 킥오프한 가나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3으로 패했다.
유효슈팅 3개에 3골을 얻어맞은 허술한 수비가 누가 봐도 첫 손에 꼽는 패인이다. 선발명단에 넣은 권창훈, 작은 정우영 카드도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잉글랜드 국적의 심판 판정을 두고 아쉬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전반 24분부터 불길했다. 우리 쪽의 실점 과정이었다. 코너킥 과정에서 안드레 아예유의 손에 맞고 떨어진 공을 모하메드 살리수가 차 넣었다. 비디오판독(VAR)이 진행됐으나 심판본부와 교신한 테일러 심판은 핸드볼을 선언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SBS 해설진은 탄식했다. 박지성 위원은 “심판이 직접 저 장면을 봤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이승우 위원은 “저게 핸드볼이 아니면 뭐가 핸드볼이라는 거냐”라고 보다 수위를 높였다.
축구종가 영국의 일부 미디어를 살펴보면 외신 반응은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래프의 경우 “핸드볼을 했음에도 골이 인정됐다.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적었다. 이브닝스탠다드는 “문제이긴 하나 이런 핸드볼이 용인된 적이 있다”고 가나 쪽의 손을 들었다.
국내팬들을 더 흥분시킨 건 후반 추가시간이었다. 나이 44세 테일러 심판은 후반 추가시간 10분 이후 나온 우리의 코너킥 상황을 무시했다. 권경원이 때린 중거리슛이 가나 선수의 몸에 맞고 라인 밖으로 나가 기적을 바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왔다.
시계가 멎었다 해도 가나 선수가 다리 경련으로 쓰러져 시간을 끌었던 터라 추가시간의 추가시간이 주어져도 무방해 보였다. 이번 월드컵은 이른바 ‘노래방 서비스’라고 일컬을 정도로 넉넉하게 인저리타임을 부과하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도 테일러 심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휘슬을 불었다.
이에 벤투 감독은 물론이고 주장 손흥민을 비롯한 한국 선수단이 모여들어 강하게 어필했다. 벤투 감독은 극대노한 상태로 전광판을 가리키는 등 강하게 항의했다. 검지와 중지 손가락으로 눈 부위도 가리켰다. 결국 레드카드를 받았다. 축구에서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 퇴장당하는 건 사실 이례적이다.
이로써 테일러 심판은 한국 주장과 감독에게 레드카드를 들이민 ‘스타 심판(?)’이 됐다. 손흥민은 2019년 12월 첼시전에서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와 경합하다 레드카드를 받았고 당시 테일러 심판이 국내에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클럽에서 손흥민을 지도 중인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 현재는 첼시 지휘봉을 내려놓은 토마스 투헬 전 감독도 테일러 심판과는 악연이다. 2022~202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초반인 지난 8월 극도로 흥분해 서로 드잡이하다 레드카드를 받고 말았다.
좋은 심판은 경기가 끝나면 기억에 남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2010년 2월 주심으로 데뷔한 이후 ‘분쟁을 키운다’는 평가를 받아온 테일러 심판. 지난해 6월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20 덴마크-핀란드 경기에서 빠른 판단으로 심정지가 온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살려 호평 받은 사례를 제외하곤 자주 구설에 올랐던 그가 또 하나의 이력을 추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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