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8:49 (목)
손흥민 조규성, 감격의 순간 벤투를 떠올렸다
상태바
손흥민 조규성, 감격의 순간 벤투를 떠올렸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12.03 0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벤치에서 파울루 벤투(53)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의 마음 속에 함께 하고 있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2-1 승리,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벤투 감독이 가나전 심판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하며 자리를 비웠지만 선수단은 오히려 하나로 똘똘 뭉쳤고 극적인 승리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경기 후 그들은 하나 같이 벤투 감독을 떠올렸다.

파울루 벤투(왼쪽에서 3번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3일 포르투갈을 잡아내며 12년 만에 다시 한 번 16강 진출 쾌거를 썼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벤투 감독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훈련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했다고는 하나 감독이 자리를 지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선수단은 하나로 뭉쳤고 선제골을 먹히고도 빠르게 동점골을 만들어내더니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역전골로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에 16강 쾌거를 써냈다.

선수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벤투 감독은 관중석에서도 열정을 다했다. 후반 33분 수비수 김영권(울산 현대)이 쓰러지자 수신호로 애타게 벤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애타는 마음이 전해진 걸까. 그의 역할을 대신한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는 김영권 대신 공격수 황의조(올림피아코스)를 투입하더니 미드필더 정우영(알 사드)을 수비수 위치로 내렸다. 위험성을 감수한 결과는 기적과 같은 역전골이었다.

선수들이 역전의 기쁨에 사로 잡혀 있는 순간 벤투 감독은 고함을 치며 선수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의 심중을 읽어낸 듯 이번에도 코스타 감독대행은 흥분하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였고 수비를 강화하는 교체로 결국 2-1 승리를 지켜냈다.

강호 포르투갈을 누르며 16강 진출을 확정짓고 기뻐하는 선수들. [사진=연합뉴스]

 

벤투 감독은 자리에 없었지만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충분히 잘 준비돼 있었다. 코스타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10여 년 동안 벤투 감독과 함께 하며 그의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벤투 감독은 그들을 향해 전폭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코스타는 뼈아픈 사령탑의 공백에도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예기치 않게 자리를 비우게 됐지만 벤투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 없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조규성(전북 현대)은 “감독님은 ‘나는 너희와 운동장에 같이 있다’고 말씀하며 동기부여를 해주셨다. 그런 게 큰 힘이 됐다”고 했고 손준호(산둥 타이산)는 “감독님께서 ‘코칭스태프들도 충분히 능력이 있다. 그 자리엔 없지만 항상 너희와 함께 한다’고 말해주셨다. 모두 능력 있는 분들이라는 걸 믿고 따랐기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기뻐했다.

코스타 수석코치는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감독님이) 지금 여기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훌륭한 감독님이다. 나는 옆에서 보좌하는 걸 더 좋아한다“며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짚어주면서 우리를 잘 이끌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많은 비판도 있었지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4년 반 동안 대표팀이 얼마나 잘 조직화됐는지를 보여주는 3경기였다. 그동안 월드컵에만 나서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역습을 통한 한 방을 노리기에 바빴던 대표팀이지만 이번엔 3경기 내내 그동안 준비한 플레이를 차분하게 풀어냈고 원정 2번째 16강이라는 달콤한 열매도 맛봤다. 많은 축구 팬들의 벤투 감독을 향한 의심 어린 시선도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 경기 퇴장으로 인해 이날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벤투 감독(왼쪽)은 조별리그 3경기를 통해 4년 반 동안 공들인 '빌드업 축구'가 틀리지 않았음을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사진=연합뉴스]

 

선수들은 벤투 감독 부임 내내 그의 철학을 존중했고 전적으로 믿고 따랐다. 그리고 1무 1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던 순간에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을 뿐,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잘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날 결국 기적을 연출했고 경기 후 중계방송사와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에 나선 이강인(마요르카)은 “기적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한 팀이 돼 노력을 많이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보답 받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에 대한 질문을 받은 조규성은 “4년 동안 확고한 스타일로 잘 준비했다. 많은 분들이 의심하셨을 거라 생각한다”면서도 “월드컵에서 증명하고 있다. 만약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벤투 감독이 떠난다면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벌써부터 아쉬움을 나타냈다.

감독의 부재 속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나선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은 이날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의 결승골을 도운 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 나선 손흥민은 “16강 올라가는 게 우리에겐 정말 큰 목표였지만 축구에서 결과는 정말 모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잘 보여드리고 싶다”며 “무엇보다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를 벤치에서 같이할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외부의 많은 비판에도 선수단은 벤투 감독의 철학을 이해하고 따르며 결속력을 다졌다. 이번 월드컵은 내홍이 잦았던 과거와 달리 선수단의 조직력이 어느 때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16강 진출 쾌거를 써냈다. 많은 비판을 홀로 견뎌내며 꿋꿋하게 버틴 벤투 감독의 뚝심은 한국 축구에 새로운 메시지를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성이 옳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에 선수들은 가장 기쁜 순간 감독을 떠올렸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