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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마음" 월드컵 자부심 잇는 윤제균의 '영웅'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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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마음" 월드컵 자부심 잇는 윤제균의 '영웅'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2.12.0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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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가슴 아픈 역사가 주는 울림은 실패가 없다. 여기에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까지 더해졌으니 속수무책이다.

윤제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뮤지컬 영화 '영웅'이 크랭크업 2년 만에 개봉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쉽사리 개봉을 결정하지 못했던 작품은 2022년 마지막 극장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뮤지컬 영화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은 지난 9월 개봉한 '인생은 아름다워'와 영웅 덕에 때아닌 뮤지컬 영화 장르의 호조를 누리게 됐다.

영화의 근간이 되는 동명 뮤지컬은 2009년 초연돼 미국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대표 넘버 '누가 죄인인가'는 삼일절마다 곳곳에서 회자되는 곡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정성화 분)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1년을 그린다.

[사진=CJ ENM 제공]
[사진=CJ ENM 제공]

영웅의 영화화는 성공적이다. 뮤지컬 팬들에겐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무대적 상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영화 팬들에겐 독립 투사의 이야기를 새로운 장르로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뮤지컬을 재연하는 작품이 되지 않기 위해 개연성을 더하고 추가된 넘버가 있기는 하나, 2012년 원작을 보고 느낀 감동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던 윤제균 감독의 다짐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는 '다 아는 무대'와 '다 아는 이야기'가 색다른 경험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성공적인 영화화에는 윤제균 감독의 선택이 통했다. 뮤지컬 원작 초연부터 무대에 오른 정성화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안중근 자체로 자리하고, 노래 실력이 출중하다고 알려진 김고은과 박진주는 여느 뮤지컬 배우와 견주어도 손색 없는 음색과 기량을 선보인다. 실제로 정성화는 기자간담회에서 박진주를 뮤지컬 무대에 데려가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윤제균 감독은 박진주를 점 찍어두고 마진주라는 캐릭터를 추가했다.

여기에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에 나문희를 택한 것도 훌륭한 선택이었다. 악극 '친정 엄마', '불효자는 웁니다'에 출연한 바 있는 나문희는 아들을 보내야 하는 아픔을 절절한 노래로 풀어내 작품 스토리에 완성도를 더한다.

[사진=CJ ENM 제공]

아쉬운 점은 넘버에 더해지는 다소 과한 연출이다. 무대적 상상을 웅장한 그림으로 그려내다 보니 현실과 극적인 장면간 간극이 커 이질감이 느껴진다. 뮤지컬 영화의 고질적인 약점을 윤제균 감독도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연출 경력만 20년이 넘는 '쌍천만' 베테랑 감독 윤제균 아닌가. 제작보고회에서 노래가 연기의 연장선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힌 것을 증명하듯 대사와 노래가 눈속임 마술처럼 매끄럽게 이어진다. 뮤지컬보다 더 뮤지컬다운 영화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은 '국제시장', '해운대'처럼 눈물을 짜내는 영화가 아니다. 오열 제조기에 가까운 역사를 그리고, 배우들이 시종일관 울음을 쏟아내지만 관객에게 눈물을 요구하진 않는다. 영화가 역사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기 보다 안중근이라는 한 사람의 긍지에 맞춰져 있기 때문. 그 덕에 평소라면 눈물을 쏟아낼 법한 장면들도 눈에 맺힌 눈물 방울에 방해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다.

동시에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이들의 희생을 강조한다. 일제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열사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하나 짚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슴 속에 가지고 있을 애국심을 끌어낸다.

[사진=CJ ENM 제공]
[사진=CJ ENM 제공]

이러한 애국심은 최근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던 월드컵 경기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2022 카타르 월드컵 3차전에서 강팀 포르투갈을 상대로 2-1의 성적을 얻으며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얻었다. 모두가 그들이 패배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대표팀은 스스로를 믿었고 이들의 믿음에 국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여러 사건들로 침체된 국가 분위기는 믿음으로 하나가 돼 활기를 되찾았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영웅은 '꺾이지 않는 마음'을 이어가는 영화다. 대한 독립을 위해 인생을 바친 안중근의 꺾이지 않는 마음, 팬데믹 2년 동안 영웅을 품에 안고 살아온 윤제균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 이 마음이 한 데 모여 침체된 영화 시장에 활기를 되찾아 줄 것이라 기대를 품어본다.

영화 밖 재미 포인트를 한 가지 전하자면, 뮤지컬 원작이 영화 개봉과 함께 동시 개막한다. 영화와 뮤지컬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뮤지컬은 내년 2월 2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영화는 오는 21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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