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11 (금)
안우진 배제, 아쉬움보단 박수 필요할 때 [기자의 눈]
상태바
안우진 배제, 아쉬움보단 박수 필요할 때 [기자의 눈]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3.01.05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선수 기량뿐만 아니라 국가대표의 상징적인 의미와 책임감, 자긍심 등을 고려해 대표선수를 선발했다.”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던 시대는 갔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이기에 결격사유가 있다면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는 확실한 선례를 남겼다. 조범현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4일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 제외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KBO리그 투수 2관왕이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가을야구 내내 압도적으로 많은 언급을 자아냈던 스타는 결국 국가대표라는 꿈 앞에 고개를 떨궜다.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이 4일 발표된 2023 WBC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진=스포츠Q DB]

 

30경기에서 15승 8패 평균자책점(ERA) 2.11, 삼진 224개를 잡아내며 故(고) 최동원(1984년·223개)의 국내 투수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울 만큼 안우진은 2022년 가장 빛난 투수였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맹활약한 김광현(35·SSG 랜더스)보다도 올 시즌 더 빛났던 게 안우진이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집결하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시속 150㎞대 강속구와 난공불락 슬라이더를 뿌리는 안우진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야구계의 궁금증은 커졌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안우진의 국가대표 승선을 의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소 논란이 있는 선수들도 ‘국가적 손실’이라는 이유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들은 “결과로 속죄하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MLB에서 촉망받던 강정호는 음주운전 삼진아웃 이후 커리어를 스스로 망쳤다. KBO리그 복귀도 노려봤지만 대중은 분노했다. 결국 강정호는 팬들에게 화려했던 커리어를 남긴 선수가 아닌 ‘범죄자’, ‘음주운전 뺑소니범’ 등의 이미지로 남았다.

조범현 KBO 기술위원장은 "선수 기량뿐만 아니라 국가대표의 상징적인 의미와 책임감, 자긍심 등을 고려해 대표선수를 선발했다"며 안우진 제외 이유를 밝혔다. [사진=스포츠Q DB]

 

안우진의 발목을 잡은 건 휘문고 재학 시절 폭력 전력이다. 당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자격정지 3년을 받았고 대한체육회 주관 국제대회(올림픽·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도 영구히 정지됐다.

넥센(키움 전신)의 자체 징계로 50경기 출전 정지를 받은 뒤 프로에 데뷔했고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그리더니 올 시즌 리그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놀라운 투구를 거듭하며 많은 팬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비판 어린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시즌 후 안우진은 WBC 대표팀 승선을 겨냥한 듯 “학교폭력이라는 네 글자의 주홍글씨로 진실을 덮는 건 아니”라며 의견문을 발표했고 법률대리인을 통해 피해자 4명 중 3명의 ‘과도한 폭력은 없었다’는 내용의 진술 조서도 공개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선 웃었지만 각종 시상식에서 외면을 받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관심은 WBC로 향했다. 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대회이기에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과 달리 안우진에게도 태극마크를 달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50인 예비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더니 4일 최종명단에서도 제외됐다.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대표팀 감독도 주목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안우진이지만 결국 태극마크의 꿈은 이룰 수 없게 됐다. [사진=스포츠Q DB]

 

실력만 놓고보면 아쉬움이 남는 게 당연하다. 지난해 10월 방한한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야구대표팀 감독은 그에 대해 “우수한 선수가 세계에서 활약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런 선수가 WBC에 출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고 이날 명단 발표 후에도 일본 현지 매체에선 안우진의 명단 제외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 가운데서도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대표팀이 WBC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더욱 그럴 수 있다.

다만 성적지상주의를 벗어나 더 건강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겠다는 철학이라면 이 선택은 당연히 박수 받아 마땅하다. 만약 안우진을 발탁하고 그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를 지닌 이들을 쉽게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이는 자라나는 선수들에게 ‘문제를 일으켜도 잘하기만 하면 돼’라는 그릇된 사고를 심어줄 수 있다.

그러나 KBO의 이번 안우진 제외 결정은 어린 선수들에겐 더욱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학교폭력 등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숱한 문제들은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강력한 제재도 동반돼야 한다. 이 중 하나로 엘리트 선수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국가대표의 꿈도 좌절될 수 있다는 교훈은 어린 선수들이 운동장 밖에서도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 억제기가 될 수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한 KBO의 진정성을 굳이 의심할 이유는 없다. 분명한 건 향후 비슷한 상황이에서 적용할 수 있는 확실한 기준을 세웠다는 점이다. 이는 추후 한국 야구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