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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빛바랜 투혼, 뼈저렸던 사령탑 부재 [SQ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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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빛바랜 투혼, 뼈저렸던 사령탑 부재 [SQ초점]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3.01.11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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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등록명 옐레나)와 김연경만으론 역부족이었다. 감독 대행의 대행이 지키는 인천 흥국생명의 빈자리는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흥국생명은 11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과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2-3(28-30 20-25 25-21 11-15)으로 졌다.

이번 시즌 중요한 승부처였다. 갑작스러운 감독 경질 등으로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지만 선두 현대건설을 잡으면 승점 차를 1로 줄일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선두의 벽은 높았다.

인천 흥국생명 김연경이 11일 수원 현대건설전에서 동료들을 독려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일 권순찬 감독이 구단의 선수 기용 개입 문제로 이견을 보이다 경질됐고 이영수 감독 대행도 단 1경기만을 치른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기중 감독을 선임했으나 고사의 뜻을 나타냈고 결국 또 다른 감독 대행 김대경 체제로 선두를 홈에서 맞이했다.

전력만 놓고 보자면 밀릴 게 없었다. 3라운드에서 김연경의 분전 속 현대건설을 잡아냈던 기억이 있었다. 상대 주포 야스민 베다르트(등록명 야스민)는 여전히 부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김대경 감독 대행은 권 전 감독의 경질 배경이 된 김연경-옐레나 동반 배치를 예고하며 상대 미들블로커 양효진의 예봉을 꺾어 현대건설을 잡아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2세트 모두 초반엔 앞서 갔다. 높은 리시브 효율과 옐레나의 집중타를 바탕으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현대건설의 수비벽은 생각보다도 더 두꺼웠다. 1세트는 14-7 리드도 지키지 못했고 2세트엔 상대보다 2배 많은 범실(8-4) 속에 흔들렸다. 2세트 공격 효율은 6.61%로 현대건설(23.81%)과 큰 대조를 이뤘다.

김연경과 옐레나 일변도 공격은 현대건설로선 충분히 대비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현대건설은 양효진과 황민경, 고예림, 황연주 등 고른 공격 패턴으로 흥국생명을 괴롭혔다. 양효진을 잠재우지 못하자 측면 공격까지 시너지 효과를 누렸다.

3세트 이후 김연경은 코트의 감독으로 나섰다. 1세트 공격 비중이 적었던 김연경은 2세트 컨디션을 끌어올리더니 3세트 8득점, 공격성공률 72.73%로 놀라운 집중력으로 동료들을 이끌었다. 4세트에는 김연경이 끌고 이주아가 밀며 흐름을 뒤바꿨다. 경기는 결국 풀세트로 향했다. 

그러나 뒷심이 부족했다. 연이은 범실이 나왔다. 김연경과 김해란이 겹치는 등 불운도 이어졌다. 너무도 잘 싸웠기에 승점 1을 추가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권순찬 전 감독과 이영수 전 감독 대행까지 물러난 상황에서 유일한 코칭스태프로서 팀을 꾸려가고 있는 김대경 감독 대행.

 

3라운드와 크게 달라진 건 흥국생명의 감독 부재뿐이었기에 이날 패배가 더욱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선수들의 동요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순찬 감독의 경질 이후 이영수 감독 대행까지 자진 사임한 소식을 전해들은 뒤엔 백전노장 김연경과 김해란도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경기 전 김대경 감독 대행도 “선수들이 마음은 불편하겠지만 티 내면 안 좋아질 게 뻔해 티 안내고 운동에 집중하려는 것 같다”며 “내가 나가면 더 이상 코치가 없다. 선수들을 위해 남아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대경 코치는 감독 선임과 관련해 “일단 회사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상 당장은 외부 인원이 들어오면 힘들 것 같다”며 “구단에는 선수들과 상의해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뻔히 알고 있었던 현대건설의 높이였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블로킹 벽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3세트 이후 리시브가 약한 정지윤을 공략하며 재미를 봤지만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은 5세트 정지윤 대신 고예림을 택하며 약점을 지웠고 결국 승리를 챙겨갔다. 반면 끝까지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혈투였으나 흥국생명은 블로킹에선 8-17로 크게 밀렸고 5세트에서도 블로킹 벽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무너졌다.

김대경 대행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는 경기 전 직접 선수들의 훈련을 도우면서 일인다역을 맡고 있다. “벤치를 해본 적이 없어서 선수들과 중간중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 선수들에게 크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려 한다”는 그는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내가 말을 많이 하기보다 선수들끼리 믿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전술적인 이야긴 따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행 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원론적인 이야기들 외에 구체적인 지시사항은 많지 않았다. 흐름이 좋지 않을 때는 작전타임으로 끊어주고 어려울 땐 선수들을 독려하는 데 집중했다. 다만 승리까지 2%가 부족했기에 감독이라는 두 글자가 어느 때보다 더욱 크게 느껴진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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