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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C 김상식 "난 평범한 사람, 대행 4회 우승에 도움" [SQ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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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C 김상식 "난 평범한 사람, 대행 4회 우승에 도움" [SQ인터뷰]
  • 김진수 기자
  • 승인 2023.05.1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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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고 나서 대학생 때 선수로 우승도 해본 적 있지만 그 정도로 감정이 막 올라온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그런 날이 처음이었어요.”

지난 7일 안양이 5905명의 관중의 함성으로 폭발했다. 안양 KGC인삼공사가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서울 SK나이츠를 꺾고 통산 4번째 챔프전 우승을 달성했다. 연장까지 갈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KGC는 통합우승(정규리그·챔프전 1위)과 올 3월 동아시아 슈퍼리그(EASL)까지 우승하면서 올 시즌 최강의 팀이 됐다. 김상식(55) KGC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자 선수들과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 11일 안양실내체육관 코트 위에서 김상식 감독을 만났다.

김상식 KGC인삼공사 감독이 11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우승 트로피 3개를 옆에 놓고 농구공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있다. 2022~2023시즌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왼쪽부터), 동아시아 슈퍼리그 우승 트로피,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김상식 KGC인삼공사 감독이 11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우승 트로피 3개를 옆에 놓고 농구공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있다. 2022~2023시즌 정규시즌 우승 트로피(왼쪽부터), 동아시아 슈퍼리그 우승 트로피,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6차전 3쿼터에 15점 차로 지고 있을 때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멤버 교체도 하고 변화를 주니까 4쿼터에 완전히 다른 팀이 되더라고요. 15점 차를 극복했기에 7차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시리즈를) 뒤집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없던 미신까지 생겼다. 6차전 전날 김상식 감독은 최승태(41), 조성민(40) 두 코치와 ‘아웃백’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다음날 경기에서 이겼다. 셋은 7차전을 앞두고 또 갔다. “제가 미신 같은 거 믿지 않는 사람인데 가게 되더라고요. 하하.”

KGC는 5차전까지 2승3패로 밀려 승부를 내주기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6·7차전을 연달아 승리했다.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두 코치들과 식사를 하며 진단하고 선수들에게도 해법을 구했다. 여러 의견이 오가면서 KGC가 뒷심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런 영광도 하마터면 없을 뻔했다. 김상식 감독은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농구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상식 감독(왼쪽)과 오세근이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KBL)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하고 트로피를 든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김상식 감독(왼쪽)과 오세근이 7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KBL)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하고 트로피를 든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국가대표 감독을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가서 이제 농구인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다른 구단들이 감독들의 거취 변화가 있는 시기였는데 소식이 없더라고요. 아, 이제 기회는 없나보다 생각했죠. 그래서 쉬려고 제주도로 떠났거든요. 우승하고 나니까 그때가 생각나더라고요. 이게 현실인가 하면서...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났습니다.”

꼭 1년 전, 김상식 감독은 제주도에 있었다. 제주에서 홀로 ‘한 달 살기’를 할 작정이었다. 친구가 마련해준 숙소에서 지내며 등산도 하고 ‘맛집 탐방’도 나섰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시작해 40여 년간 몸담은 농구와 이별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 차출과 관련해 10개 구단·KBL(한국프로농구연맹)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 2년 넘게 맡았던 대표팀 감독직을 내려놓고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딱히 대안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단념할 때쯤, 연락이 왔다. KGC에서 감독 제의가 왔다.

“구단과 선수들을 위해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수락했어요. 마음을 딱 잡았죠. 아내도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옆에서 제가 맘고생하는 거 보면서 많이 안쓰러웠을 거예요.”

김상식 감독은 양정고와 고려대 졸업 후 농구대잔치 시절 실업팀인 기업은행에서 뛰었다. 1997년 프로 출범 이후에는 광주 나산 플라망스, 안양 SBS 스타즈에서 뛰었다. 빠른 드리블에 이은 슛이 탁월해 '이동미사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김상식 감독은 양정고와 고려대 졸업 후 농구대잔치 시절 실업팀인 기업은행에서 뛰었다. 1997년 프로 출범 이후에는 광주 나산 플라망스, 안양 SBS 스타즈에서 뛰었다. 빠른 드리블에 이은 슛이 탁월해 '이동미사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부임 이후 고양 캐롯 점퍼스(데이원 점퍼스)로 떠난 전성현(32)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 배병준(33), 박지훈(28), 정준원(34) 등 식스맨들을 적극 활용했다. “선수 1명이 15~16점 넣기는 어려워요. ‘모션 오펜스’(전원 공격)를 통해 15~16점을 두세 명이 나눠서 넣으면 이를 커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를 위해 그는 식스맨들도 편하게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나섰다. “식스맨들은 주전하곤 달라서 제가 몰아붙이면 더 위축될 수 있어요. 그래서 다그치기보다는 칭찬을 많이 했어요. 대신 팀워크만 해치지 말자고 강조했습니다.”

김상식 감독은 지방 원정에 가면 사비로 떡볶이나 커피를 선수들한테 쐈다. 오마리 스펠맨(26)의 어머니가 한국을 찾았을 때는 향수를, 대릴 먼로(37)의 두 자녀가 데리고 왔을 때는 신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입단한 신인 선수 대학 졸업식에도 참석했다.

“어머니가 아들을 외국에 보내놓고 불안해할 수 있잖아요? 감독이 선물을 주면 아들이 잘 지낸다고 안심할 수 있고요. 스펠맨이 감동하면서 이러더라고요. 자긴 태어나서 감독에게 이런 선물 처음 받아봤다고.(웃음)”

김상식 감독은 "제가 감독대행만 4번 했잖아요. 어려울 때 팀을 맡아보니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노하우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김상식 감독은 "제가 감독대행만 4번 했잖아요. 어려울 때 팀을 맡아보니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노하우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스포츠Q(큐) 손힘찬 기자]

최승태, 조성민 코치에게는 각각 공격과 수비를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확실하게 줬다. 코치와 선수들이 의견을 내면 되도록 들어줬다. 잘 안되면 감독이 나서서 다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김상식 감독이 미국 LA레이커스 연수 시절 보고 배운 것들이다. 감독과 코치, 선수가 의견 교환을 활발하게 하면서 KGC는 원팀(One Team)이 됐다.

김상식 감독은 한국 대표 농구 집안이다. 아버지는 김영기(87) 전 KBL 총재다. 1950~60년대 국가대표를 지내면서 화려한 드리블로 명성을 날린 한국 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은퇴 후 족집게 같은 해설로도 이름을 날렸다. “우승하고 나서 아직 뵙지는 못했어요. 축하 인사를 많이 받으시나 봐요. 전화로 우승했다고 말하니 정말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조만간 빨리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답했죠.”

김상식 감독은 사령탑보다 감독 대행으로 불린 기간이 더 길다. 2003년 은퇴하고 미국 연수를 다녀와 2004년 안양 SBS스타즈(KGC 전신)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는 팀마다 성적이 부진했고 사령탑이 물러났다. 그때마다 코치였던 김상식 감독이 대행을 맡았다. 그렇게 감독 대행을 프로팀에서 3번, 대표팀에서 1번 했다. 감독 대행만 여러 번 맡은, 짓궂은 운명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8~2009시즌에는 대구 오리온스 처음으로 정식 감독이 됐지만 성적 부진 때문에 시즌 막판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요, 제가 감독대행 할 때마다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어요. 연승도 하고 SBS에 있을 때는 거의 팀을 끝에서 6위까지 끌어올렸죠. 하지만 진짜 희한하게  어려운 상황에서 팀 딱 뭉쳐놓으면 제가 감독을 못하고…내가 많이 부족한가보다 하며 속을 달랬어요. 그래도 대행할 때 많이 배웠습니다. 팀이 어려울 때만 맡아서 그런지 헤쳐 나가는 노하우가 생겼거든요.”

코치를 시작한지 20년 만에, 선수 때 밟지 못했던 챔프전에서 우승에 3관왕까지 했으니 올 시즌 제대로 보상받은 셈이다. “저희 팀 사무국장도 우스갯소리로 그러더라고요. 올스타전에서도 이기고 챔프전도 드라마틱하게 우승했다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을 목터져라 응원한 팬들에게 고마움을 남겼다. “제가 대학에서 정기전도 뛰어봤지만 챔프전 때는 정말 그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6·7차전 때는 옆에서 얘기하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였어요. 감사하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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