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나는 이상한 감독입니다."
'큐어', '스파이의 아내', '산책하는 침략자' 등으로 탄탄한 국내 팬덤을 지닌 일본 장르영화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69) 감독이 2편의 신작을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통해 선보인다. 신작 '클라우드', '뱀의 길'(2024)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으로 상영된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지난 2일 열린 개막식에서 트로피를 건네받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내 40년 영화 인생 중 20년을 부산이 지켜봤다"며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한 감사와 애정을 드러냈다.
3일 오후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간다천 음란전쟁'(1993) 이후 40년을 넘긴 영화 인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40년 이상 영화 제작을 하면서 베테랑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나는 아직도 영화가 끝나면 다음 영화는 무엇을 찍을지 고민한다. 내 영화 테마나 스타일은 여전히 모호하다"며 "나는 좀 이상한 감독이다. 올해로 69살이 됐고 2편의 영화를 영화제를 통해 소개하게 됐다. 한 편은 프랑스, 한 편은 일본 작품이다. 둘 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이자 B급 영화다. 이 나이에 2편이나 촬영하는 감독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내가 이상하다는 답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장르영화 한 우물을 파는 우직함에서는 영화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고 그렇게 믿고 싶다. 영화 작업은 영화가 너무 좋아서 시작한 거다. 지금까지 봐온 작품이 산처럼 많은데 훌륭한 작품과 비교했을 때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찍어도 일부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며 "360도로 봐도 부족하지 않은 영화를 찍고 싶다. 이를 추구하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가지 않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일본에 많은 감독이 있지만 나와 같은 것을 하려는 젊은 감독을 떠올려 보면 떠오르는 이가 없다. 장르영화를 목표로 하는 감독이 거의 없다. 한국은 이런 작업을 하는 젊은 감독이 많다고 들었다. 부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장르영화의 매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영화만으로 표현 가능한 순간을 그리는 게 장르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순간이 스크린으로 나오면 다른 곳에 눈을 두지 못하고 못 박힌 듯 보게 되지 않나. 영화가 끝난 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내는 게 장르영화다. 신랄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도 좋지만 나는 영화가 영화적이어야 영화의 가능성이 넓어진다고 본다. 그렇기에 영화만으로 표현 가능한 영화가 좋다"고 답했다.
◆ '재도전'과 '새 도전'
올해 상영작 2편 중 '뱀의 길'은 1998년 연출한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는 "15년 전 촬영한 '뱀의 길'은 저예산 야쿠자 영화였다. '링'으로 잘 알려진 타카하시 히로시가 각본을 썼다. 개성있게 잘 쓰인 각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내 작품이라기보다 각본가의 성향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은 내 작품이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5년 전 프랑스 프러덕션에서 연락이 왔다. 내 작품 중 다시 찍고 싶은 작품이 있냐고 묻더라. 직관적으로 '뱀의 길'이 나왔다"고 리메이크 계기를 전했다.
"오리지널은 한마디로 복수극이었어요. 아버지가 딸을 죽인 사람에게 복수를 한다는 심플한 이야기로 주인공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남자였죠. 아내의 존재가 빠져 있어요. 딸이 있으면 아내가 있을 테고 부부의 이야기일 터이니 주인공을 여자로 바꿔보고 싶었어요."
주인공과 더불어 야쿠자 스토리인 원작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그는 "프랑스 리메이크판까지 마피아를 넣고 싶지는 않았다. 야쿠자나 마피아가 절대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패션, 헤어스타일, 말투 등이 스테레오타입화된 캐릭터를 지양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스타 배우 스다 마사키가 주연을 맡은 '클라우드'는 조금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은 요시이가 전문 리셀러로 활동하며 폭력의 세계에 물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본격적인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4~5년 전부터 각본을 쓰기 시작했지만 장르영화 특성상 투자를 받기 어려워 난관에 부딪혔던 작품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기존 일본 액션 영화는 등장인물이 야쿠자, 경찰, 살인자 등 평상시 폭력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나는 폭력과 인연이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일반인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임 당하는 극한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며 "투자를 받지 못해 영화를 찍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스다 마사키 배우가 출연을 승낙한 후로 제작 속도가 붙었다. 스다 마사키 배우는 일본에서 인기, 실력 모두 톱 수준인 배우다. 30대 배우 중 가장 톱이다. 그 덕에 제작이 수월해졌다"고 스다 마사키를 향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스다 마사키는 예전부터 흥미롭게 지켜본 배우 중 한 명이에요. 멋진 젊은 배우가 많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찌질하고 더러운 인물을 잘 연기하는 배우가 필요했거든요. 그게 누굴까 했을 때 스다 마사키뿐이었어요. 멋진 면을 깔끔하게 지우고 피로감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배우예요. 각본을 쓸 때부터 이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바쁜 배우라 내 작품엔 와주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30살이 되고 결혼을 하면서 그동안과 다른 타입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죠."
구로사와 기요시가 발판을 다진 일본영화계는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후카다 코지 등 뉴제네레이션 감독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훌륭한 작품을 찍고 잘 자리매김하고 있는 감독들이다.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첫 번째로 지금 가고 있는 길을 한 발짝 나아가 계속 갔으면 좋겠다는 것, 두 번째는 가끔 장르영화도 찍어보라는 것이다"라는 유쾌한 너스레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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