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최현석 셰프(52)의 '롱런'은 이유가 있다.
최현석은 한국 1세대 스타 셰프다. 2010년 올리브TV를 중심으로 일반적인 요리 레시피 방송을 확장해 '한식대첩', '냉장고를 부탁해', '쿡가대표' 등 요리 서바이벌, 예능 붐을 일으켰다. 출중한 요리 실력에 더한 빼어난 입담, 타고난 예능감, 남다른 피지컬 등은 셰프와 파인다이닝의 고정관념을 깨고 수많은 '최현석 키즈'를 탄생시킨 바 있다. 무엇보다 요리 경력 30년 동안 큰 구설수 없이 셰프로서 대중의 인정을 받아온 방송인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심사위원도 아닌 '참가자'로 출연해 차세대 셰프들과 겨룬다는 소식은 신선한 재미를 안겼다.
최현석은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진행된 '흑백요리사'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심사위원으로 제의가 온 줄 알았다. 챌린저로 나가야 한다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김학민 PD가 '챌린저이실 때가 더 멋있습니다'라고 하더라. 그러면 '진짜 잘하는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뽑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당시 제가 30년 만에 45일간 식당 문을 닫고 연구 중이었어요. 새로운 영감, 자극이 필요했죠. 요리는 전통을 잘 끌고 가는 퀴진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걸 개발하는 퀴진이 있어요. 저는 그중에서도 '극사파'죠."
최현석의 요리는 예술로 말하자면 아방가르드(전위 예술)에 속했다. 가자미 미역국 하나를 만들 때도 상상도 못 한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맛과 플레이팅 모두 예측이 불가했다. 이러한 획기적인 시도를 돋보이게 만든 것은 심사위원 안성재와의 견해차였다. 전통을 중시하는 안성재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최현석이 끊임없이 부딪히며 무궁무진한 미식 세계를 선사한 것. 시청자는 두 사람의 '맛'있는 앙숙 케미에 환호했다.
"안성재 셰프와 추구하는 요리가 다를 뿐이지 사이는 정말 좋다"고 해명한 최현석은 셰프 대 셰프로 안성재 셰프를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미슐랭 3스타의 정의는 그 요리를 먹기 위해 그 나라를 방문해야 한다는 의미다. 안성재 셰프는 대한민국 미식계 수준을 높였다. 일본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홍콩 등 미식으로 발전한 나라에 비해 한국은 미식계에서 다소 떨어지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선배 셰프들이 기반을 다져놓고 안성재 셰프가 미슐랭 3스타를 받았으니 엄청나게 리스펙할 수밖에 없다. 미슐랭 3스타는 그야말로 '퍼펙트'다"고 설명했다.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는 대신 납득할 수 있는 심사위원을 요청했던 최현석이다. 그중 안성재는 그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고 소신껏 심사할 수 있는 심사위원이었다. 단, 자신과 요리의 결이 너무 달라 심사가 쉽지 않겠다는 작은 우려도 있었다고.
최현석은 "미슐랭 셰프는 '퍼펙트'라는 말처럼 빈틈이 없다. 미슐랭 레스토랑은 메뉴를 바꾸지 않는다. 메뉴를 바꾼다는 것은 새로운 리스크가 생긴다는 의미이고 이를 커버하는 데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하지만 저는 무릎이 깨지고 머리가 터져도 새로운 걸 만드는 스타일"이라며 "안성재 셰프가 제 요리를 평가하는 걸 보면서 저와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 동시에 제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이어 "제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안성재 셰프의 요리에 대해 요리는 잘하지만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심사는 본인의 요리관으로 하는 게 맞다. 안성재 셰프가 이번 프로그램이 잘 된 것에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파이널 진출자를 결정하는 세미파이널 5라운드 1차전 '인생을 요리하라'에서는 봉골레 파스타를 요리하던 도중 실수로 중요 재료인 마늘을 넣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안성재는 최현석의 봉골레 파스타를 "그리시(Greasy)하다"고 평가하며 다소 아쉬운 점수를 줬다. 이에 최현석은 1점 차이로 나폴리 맛피아에게 1위를 내어줬다. 최현석 셰프는 안성재의 평가에 대해 "내가 맞다"고 응수했지만 레시피를 복기하던 중 마늘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이를 전해 들은 안성재는 나지막하게 "마늘을 빼먹으셨다?"고 말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최현석은 "저와 정반대의 요리 스타일을 가진 안성재 세프라 평가를 듣고 '어차피 우린 가는 길이 달라'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리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완벽한 봉골레야. 이렇게 생각했다. 제작진이 레시피는 어떻게 되냐고 물어서 차례로 복기하던 중 마늘을 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방송을 많이 하고 경험이 많다고 해도 매 순간 요리할 때 긴장한다. 일부러 빼먹은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3일 밤을 잠 못 이루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마늘이 있었다면 1위를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는 "의미 없는 말이다. 저는 현장에서 마늘을 넣지 않았다. 무엇보다 저보다 나폴리 맛피아님이 요리를 잘하셨기 때문에 1위를 하신 거다"고 진지하게 답했다.
이날 최현석은 가볍게 던진 질문에도 셰프로서의 소신을 강조하고 다른 셰프들을 존중하는 진중한 답변을 내놓았다. 오로지 요리 외길만을 바라보는 '셰프 최현석의 품격'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끝으로 최현석은 재출연 의사에 대해 "나갈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제가 가는 요리의 길이 맞는지 틀린지 고민하다 출연한 거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확고함을 얻었고 영감도 얻을 만큼 얻어서 나가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 시즌1을 좋은 추억으로 가져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최현석이 출연하는 '흑백요리사' 최종회 11-12회는 오는 8일 오후 4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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