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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폭력적 세상에 맞선 '한공주' 선생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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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폭력적 세상에 맞선 '한공주' 선생님 어머니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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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국내외 영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독립영화 ‘한공주’에서 17세 여고생 한공주(천우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엄청난 사건을 겪은 뒤 세상의 눈을 피해 잠시 머무는 곳은 전 학교 담임선생님의 어머니(이영란)네 집이다.

마트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선생님 어머니’는 처음엔 뜨악한 시선으로 공주를 받는다. 거추장스러워 한다. 심지어 공주의 배를 만지면서 “애 임신한 거 아니야”라며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지원금을 받고서야 공주를 집에 들이는 선생님 어머니는 공주와 차츰 교감을 쌓는다. 공주 역시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방을 치우고, 새 학교에 다니고, 선생님 어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자진해서 마트 일을 도우며 가정의 따뜻함을 조금씩 느껴간다.

▲ 선생님 어머니 역 이영란

‘선생님 어머니’는 공주와 비슷하게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 가정 있는 동네 파출소 소장과 내연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운영하는 마트로 쫓아온 남자의 아내와 주변 여자들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하지만 그들도 그 이상은 어쩌지 못한다. ‘화냥년’ 소리를 듣는 대상이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남성 사회에서 한공주가 어리고, 가난한 여자로서 삼중고를 겪는 것과 달리 '선생님 어머니'는 나이와 경험, 돈이 많아서 굳건하게 버티는 캐릭터다. 모욕과 수모를 당한 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한차례 눈물을 찍어내고는 “저것들은 나한테 어쩌지 못해”라고 큰소리까지 친다. 그리고는 남자의 애간장을 끓이게 한 뒤 이혼서류를 받아낸다.

전학 온 학교로 가해자의 학부모들이 몰려와 난리를 부리는 통에 공주는 다시금 짐을 꾸려 도망치듯 선생님 어머니 집을 빠져나온다. 선생님 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만 끝내 공주를 붙잡진 않는다. 이렇듯 공주와 선생님 어머니는 ‘지탄받는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녀 연대의 양상을 보이는 듯하나 이들의 관계가 공주를 구원하진 못한다.

내연남을 당당히 자식에게 새 아버지 감이라며 소개시키고, 아들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개의치 않을 만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선생님 어머니’는 한공주보다 앞서 폭력적인 세상에 홀로 맞서 살아온 드센 인물이다.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에 따뜻한 품을 남겨뒀기에 그 나이에도 남자를 갈구하고, 공주를 향한 이해와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선생님 어머니’ 역의 베테랑 여배우 이영란은 걸걸한 비음의 목소리와 노출을 불사하는 과감한 연기로 사실감을 더했다. 경희대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연출가이기도 한 그는 1978년 연극 '장난꾸러기 엘비라'로 데뷔해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영화 ‘꽃잎’ ‘태극기 휘날리며' ’늑대소년‘, 연극 ‘자기만의 방’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해왔다.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여우조연상,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단 특별언급 등을 수상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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