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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역린’ 드라마 미학의 절정, 영화 문법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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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역린’ 드라마 미학의 절정, 영화 문법의 부재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27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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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개봉 대하사극...시대 관통하는 메시지 뭉클

[스포츠Q 용원중기자] 조선 22대 왕 정조(이름 이산)는 11세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역적으로 몰려 뒤주에 갇혀죽는 것을 목도하고, 25세에 왕위에 올랐다. 평생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왕권 강화와 인재 육성, 신분차별 철폐에 앞장서 조선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개혁 군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빈번하게 드라마·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드라마틱한 캐릭터다.

다시금 정조다. 영화 ‘역린’은 정조 1년 발생한 존현각 자객 침투사건인 정유역변을 모티프 삼아 역모에 얽힌 인간군상의 24시간을 2시간16분의 러닝타임 안에 담는다.

 

퓨전사극의 포문을 연 ‘다모’를 비롯해 ‘패션 70’s’ ‘베토벤 바이러스’ ‘더킹 투하츠’의 이재규 PD는 매끄러운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의 섬세한 감성 표현에 강점을 보였다. 감각적인 영상미도 호평받았다. ‘역린’은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장을 옮긴 그의 장점이 잘 살려진 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 터치의 미드를 통해 익숙한 ‘제한된 시간설정’ 구조를 빌어 그 안에 다양한 등장인물, 그들의 절절한 감정, 스타일리시한 액션, 수려한 미장센을 빼곡히 채웠다.

◆ 퓨전사극 개척자 이재규PD 스크린 데뷔작...흥미로운 캐릭터 향연

끊임 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신체훈련에 매진하는 정조(현빈), 노론 최고의 수장이자 야심만만한 정순왕후(한지민), 아들인 정조의 안위만 걱정하는 혜경궁 홍씨(김성령), 정조를 그림자처럼 보필하며 신임을 얻는 내시 상책(정재영)과 왕의 호위를 담당하는 금위영 대장 홍국영(박성웅), 고아들을 모아 살수로 길러내는 비밀 살막의 냉혹한 주인 광백(조재현), 광백의 잔인한 제안에 왕을 암살하려는 조선 최고의 살수(조정석), 비밀을 품고 궁에 들어온 세답방 나인 월혜(정은채)는 각자의 존재 이유가 분명한 흥미로운 캐릭터들이다. 이들은 종횡으로 얽히며 드라마를 구축한다.

 

정조의 고독과 불안을 투영한 서고 겸 침전 존현각과 의복을 손질하는 세답방 세트, 캐릭터의 심리가 묻어나는 묵직한 의상 등 프로덕션 디자인은 신선하고 아름답다. 먹물 같은 어둠을 뚫고 고요히 흩뿌려지는 빗방울·눈꽃과 대비돼 격렬하게 부딪히는 화살·칼날의 긴박감, 존현각 지붕을 타는 살수들의 리드미컬한 액션은 매우 인상적이다.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역린'을 선택한 검증된 젊은 배우 현빈의 연기 역시 나무랄 데 없다.

◆ 영화적 압축미 떨어져 늘어지는 흠결...공감가는 메시지 감동 선사 

이런 여러 장점이 있지만 ‘역린’은 과했다. 드라마와 영화의 문법은 분명 다르다. 회당 1시간 분량의 16부작 드라마는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활용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와 달리 2시간 남짓의 영화는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이다. 덜어내고 압축해야 함에도 적잖은 주변 캐릭터들을 설명하려다보니 흐름이 늘어지고 산만해졌다. 살수와 월혜의 로맨스라든가 상책과 살수의 인연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의도했던 감동이 생겨나지 않는 이유다. 정조의 고뇌에 집중했다면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보다 입체적인 정조 캐릭터를 구축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생기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린’은 가슴 먹먹하게 하는 메시지를 과녁에 정확히 꽂았다. 극 중반 상책이 읊고, 엔딩에서 정조가 다시 말하는 ‘중용’ 구절에 힘입었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던 정조의 금과옥조라 더욱 마음을 파고든다. 인간 이산의 마음이 절로 공감가는 요즘, 위무의 손길이자 희망의 속삭임으로도 다가온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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