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4:12 (금)
김현우의 '레슬링 그랜드슬램' 도전, 그 의미가 남다른 까닭은
상태바
김현우의 '레슬링 그랜드슬램' 도전, 그 의미가 남다른 까닭은
  • 강두원 기자
  • 승인 2014.05.19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인천 AG 금메달 따낸다면 레슬링 그랜드슬램 달성, 체급·룰 변경에도 '거칠 것 없다'

[300자 Tip!] 모든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의 최고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수없는 땀과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어지고 자신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 '피겨퀸' 김연아 역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생애 최고 목표였던 금메달을 따낸 뒤 한동안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해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하지만 레슬링 스타 김현우(26·삼성생명)는 다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후 체급을 바꿔 여전히 강자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또 다른 목표를 향해 하루도 빠짐없이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다.

▲ '춤추는 밧줄, 이것이 레슬링 훈련이다' 보기에는 그저 밧줄을 잡고 위아래로 쉽게 흔드는 것 같지만 기자가 직접 손에 쥐어본 이 밧줄을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한국 레슬링은 이와 같은 고강도의 훈련이 있었기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왔다.

[태릉=스포츠Q 글 강두원 · 사진 이상민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모여 있는 태릉선수촌에서 가장 고되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종목을 가릴 수 있을까. 어느 종목의 선수들이든 나름의 뼈를 깎는듯한 고통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로 올라서기 위한 노력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태릉선수촌 필승관 내 레슬링장에 들어선다면 이보다 더한 훈련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훈련을 보게 될 테니 말이다.

2년 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국민들에게 시원한 금메달 소식을 13차례나 안겨주며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세운 한국 선수단 중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현우 역시 국민들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김현우를 아는 사람이라면 단연 런던올림픽 결승전 당시 시퍼렇게 퉁퉁 부은 오른쪽 눈을 기억할 것이다. 레슬링이란 종목이 워낙 몸과 몸이 부딪히는 스포츠이고 특히 머리싸움에서 지 않고자 이마를 맞대고 수없이 다투느는 종목이기 때문에 얼굴 부상이 많다.

김현우 역시 당시 예선전부터 치러오면서 부딪혔던 것이 점차 누적돼 결국 결승전에서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다. 그래서 결승 경기에 지장을 줬지만 끝까지 집중하고 금메달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은 결과 2-0 승리를 거두고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다.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올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김현우는 시상대에 올라 밝은 웃음으로 손을 흔들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김현우는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75kg급으로 체급을 올려 다시 한 번 1인자가 되기 위해 도전한다.

◆ 새로운 도전, 새로운 금메달을 위한 체급 변경

김현우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체급은 그레코로만형 66kg급이다. 그는 이 체급에서 2006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 금메달과 2010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에 올림픽 금메달까지 주니어와 시니어 무대에 걸쳐 세계를 평정했다.

그러나 그는 런던올림픽 이후 체급을 변경했다. 지난해 헝가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6kg급이 아닌 74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체급 변경에도 유럽의 강호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결승에 올랐고 러시아의 로만 블라소프를 2-1로 꺾고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현우와 함께 66kg에 출전한 류한수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이는 한국 레슬링이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인섭(그레코로만형 58kg급), 손상필(그레코로만형 69kg급), 김우용(자유형 54kg급) 이후 14년 만에 얻어낸 값진 금메달 다수확이었다.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던 김현우가 체급을 변경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체중감량의 어려움을 첫 번째 이유로 들었지만 두 번째 이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운동선수가 가질 수 있는 최고 목표가 금메달이잖아요. 근데 그것을 이루고 나니까 처음에는 허무한 마음도 들고 내가 레슬링을 하는 목표가 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레슬링을 계속해도 더 높게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결심한 게 74kg급으로 체급을 올려서 ‘여기서도 1인자가 돼 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는 체급을 올리자마자 세계선수권에 나가 금메달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큰 부담 없이 치렀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실은 66kg에서 뛸 때도 가끔 74kg에서 경기를 치르곤 했어요. 그래서 적응에 어려운 점은 없었고 체력 부분도 역시 자신감이 있었고, 부담감보다는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했더니 금메달을 따낸 것 같아요. 타이밍도 그렇고, 훈련이나 심적으로도 모든 부분이 잘 맞아 떨어진 점도 없지 않고요.”

▲ 김현우는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국내 1인자로 올라서며 한국 레슬링의 희망으로 등장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연달아 시련을 맞으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 중학교 때 이미 국내 1인자,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김현우는 원주 평원중학교 1학년 때 국내 레슬링계를 평정하며 혜성처럼 나타났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앞길이 탄탄대로였다.

강원고를 거쳐 경남대로 진학한 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그러나 김현우는 베이징행 티켓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에게 찾아온 첫 시련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을 치를 당시 무언가 모르게 올림픽에 대한 간절함이 적었어요.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야 한다’라는 마음이 부족했죠. 마음이 온전히 가지 않으니 준비하는 것도 소홀했고. 열심히 해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만약에 선발이 돼서 올림픽에 나갔어도 아마 성적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때 탈락하고 나서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아닌가 싶어요. 목표의식도 뚜렷하게 가질 수 있었고요.”

첫 번째 시련을 견뎌 낸 김현우는 2010년 5월 아시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그해 11월에 열렸던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해 나갔다. 그는 당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나가 오로지 금메달만을 바라보고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김현우가 거둔 성적은 예선탈락. 두 번째 시련이었다.

“광저우 대회 때는 베이징 때와 달리 간절했어요. 그런데 부담감이 좀 있었어요. 세계선수권이나 다른 많은 대회에 나갔었는데 아시안게임은 또 다르게 부담감이 오더라고요. 첫 아시안게임이고 나이도 여전히 어렸고 민감한 부분이지만 병역 문제도 있었고. 몇 개월 전부터 잠도 잘 못자고 너무 많은 부담감을 안고 있었어요. 그게 경기에 고스란히 드러났죠. 긴장을 한 나머지 제 기량에 100%는 둘째 치고 50%도 보여주지 못했죠. 일본 선수랑 경기를 했었는데 실력 면으로 따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지만 침착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경기를 했어요. 그렇게 지고 나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열심히 준비했는데 ‘난 안되나 보다’라는 생각도 하고 그야말로 ‘멘붕’이었어요.”

첫 번째 고난을 극복해 낸 후 다시 도약하고자 노력했지만 두 번째 찾아온 시련은 김현우를 심각한 슬럼프로 이끌었다. “레슬링을 하면서 가장 힘든 슬럼프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힘겹게 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말이 있는 것처럼 김현우에게도 한 줄기 빛이 찾아들었다.

▲ 레슬링 훈련은 국내 아마추어 종목 중 강도가 첫 손에 꼽힐 정도로 세다. 새벽부터 온 몸을 쥐어 짜는 듯한 훈련이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다. 김현우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다"며 땀을 뻘뻘 흘렸지만 "이래야 내가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긍정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 조력자와 함께 올림픽 정상으로

김현우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은 태릉선수촌 레슬링장에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보이며 김현우에 연신 지시를 내리고 있는 김인섭(41) 코치였다. 그는 은퇴 후 삼성생명 레슬링단의 코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었다. 김현우 역시 김 코치 밑에서 피나는 훈련 끝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김현우가 자신에 닥친 두 번째 시련을 떨쳐내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물 역시 김 코치였다.

“광저우 때 김인섭 코치님이 조언도 해주실 겸 대표팀과 같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허망하게 지고 나서 멘붕에 빠져 있는데 김 코치님이 오시더니 ‘넌 이제 밑바닥을 쳤어. 그러니까 올라갈 일만 남았다. 날 믿고 따라와라.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게 해주겠다’ 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이 그렇게 믿음이 갈 수가 없었어요. 절망에 빠져 있던 저를 꺼내주신 게 바로 김 코치님이죠. 그 이후부터 코치님을 믿고 런던올림픽만 생각하고 훈련했죠. 코치님 덕분에 가장 힘들었던 슬럼프를 가장 빨리 극복해낼 수 있었어요.”

두 번의 시련을 이겨 낸 김현우 앞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은 없었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6kg급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김현우는 같은 해 프레올림픽에 나서 66kg급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 본무대의 우승 가능성을 높였고 결국 오른쪽 눈이 퉁퉁 부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그동안의 시련이 있었구나. 이전에 광저우 때 금메달을 땄더라면 마음이 많이 해이해져서 올림픽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 "그랜드슬램, 당연히 자신있지만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김현우는 오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다면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올림픽 금메달을 더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박장순, 심권호에 이은 한국 레슬링 사상 3번째 대위업이다.

◆ 룰 변경 등 변수에도 '그랜드슬램 자신있다'

김현우가 런던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한국 레슬링에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올림픽 ‘노골드’의 수모를 말끔하게 씻어 준 값진 금메달이었다.

한국 레슬링이 이전 같지 않다는 평가에도 김현우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훈련량 덕분이었다. 레슬링 대표팀은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쉬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며 올림픽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다.

“한국이 레슬링에서 강점을 보이는 부분은 역시 많은 훈련량에서 나오는 체력과 근지구력 등이에요. 외국선수들이 신체적인 면에서 저희보다 훨씬 유리하지만 저희는 그런 약점을 체력으로 커버하죠. 1회전에서는 상대와 힘겨루기에서 조금 부족하지만 2회전에 접어들면 저희는 몸이 풀리기 시작하는데 외국 선수들은 지치기 시작하죠. 그런 것을 잘 이용해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한국 레슬링의 장점인 것 같아요.”

김현우는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다면 레슬링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그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까지 금메달을 따냈지만 유일하게 아시안게임의 금메달이 없다. 만약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면 박장순, 심권호에 이어 한국 레슬링 사상 3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대위업을 완성하게 된다.

그랜드슬램을 앞두고 김현우에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룰 변경일 수 있다. 레슬링은 지난해 올림픽 퇴출 위기를 겪었다. 소극적이고 벌점 위주의 경기가 이뤄지면서 지루하다는 평가가 이어졌고 결국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될 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세계 레슬링계는 올해 초 룰 변경이라는 자구책을 꺼내 들었다. 기존 2분 3세트제에서 3분 2세트제로의 변경이 핵심이며 보다 박진감 있고 공격적인 경기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아시안게임을 1년 여 남겨두고 룰 변경이라는 변수를 만났지만 김현우는 개의치 않는다.

“모든 룰이 다 똑같고 어차피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경기라 특별히 누구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그저 바뀐 룰에 빨리 적응하려고 훈련하고 있고, 경기의 승패는 훈련량에서 결정되는 것이기에 열심히 노력할 뿐이죠.”

▲ 한국 레슬링의 간판이자 세계 레슬링계의 1인자인 김현우는 언제나 태극마크의 자랑스러움을 안고 뛰고 또 뛰며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김현우는 아시안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고 그랜드슬램의 화룡점정을 위해 어느 때보다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랜드슬램 달성이 자신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확고했다.

“당연히 자신있죠.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이니까요. 자신있지만 자만하지 않아야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준비를 완벽하게 잘 해서 좋은 모습 보여줘야죠. 레슬링 팬들은 물론 레슬링 가족들도 모두 올 테니 그들 앞에서 멋지게 경기해서 금메달을 목에 걸겠습니다.”

[취재후기] 레슬링 대표팀의 훈련은 태릉선수촌 내에서도 무시무시하기로 유명하다. 일반사람들이 본다면 ‘저걸 어떻게 해?’라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현우는 항상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한다. 그리고 사이사이 보여주는 살인미소까지.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준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김현우의 훈련 모습을 하늘에서 감명 깊게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kdw0926@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