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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JOB아먹기(98) 김해진] 피겨 국가대표가 인생2막을 맞이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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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JOB아먹기(98) 김해진] 피겨 국가대표가 인생2막을 맞이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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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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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곽나경 객원기자] '여왕' 김연아가 세계를 지배한 이후 피겨스케이팅은 한국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종목이 됐다. 최근에만 해도 남자 차준환, 이시형(이상 고려대), 유영(수리고), 김예림(단국대) 등이 시니어 그랑프리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등 희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젠 유망주도 무척 많다. 시리즈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단 6명만만 경쟁할 수 있는 20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여자 싱글 신지아(영동중), 김채연(수리고), 권민솔(목동중) 등 역대 최다인 3명을 보내는 쾌거도 있었다.  

10년 전에도 이렇게 주목받던 이가 있었다. 2012 주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 김연아 이후 7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했던 김해진이다. 기세를 몰아 김연아, 박소연과 함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2018년 은퇴 후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피겨 안무가이자 MBC 동계올림픽 해설위원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안무 지도 중인 김해진 피겨 스케이팅 안무가. [사진=본인 제공]
안무 지도 중인 김해진 안무가. [사진=본인 제공]

-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해진입니다. 현재는 피겨스케이팅 안무가 겸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선수 시절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매번 떠오르는 장면이 다르지만 지금은 2014 소치올림픽에 출전했을 당시가 떠오르네요. 제가 평생을 롤모델로 생각했던 김연아 선수와 함께 같은 링크장에 서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무대가 올림픽이었다는 것이 매우 영광이었던 순간이었습니다.”

- 은퇴 순간이 어떻게 남아 있나요? 

“링크장에 선 순간부터 연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순간의 감정들이 깊게 남아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은퇴는 아니었고 1년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해외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려고 계획했지만 부상을 당하면서 기권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아서 1년 동안 매 경기를 은퇴 무대라 생각하며 일과 선수생활을 병행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 은퇴 준비를 하며 미래를 그렸을 텐데요. 

“사실 피겨 선수들은 은퇴 후 코치 길을 걷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외의 직업이라고 해도 안무가나 스케이팅 스킬 코칭 정도입니다. 해설위원이나 심판의 경우 대회가 있을 때만 일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저도 은퇴하면 당연히 코치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길은 없을지, 대학생 때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없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코치님께서 안무가 일을 제안하셨고, 훈련과 일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안무를 짜면서 아이들에게 제가 가진 예술적 부분을 전달해준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 때부터 안무가 길을 깊게 생각하면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 안무가와 코치는 어떻게 다른가요?

“피겨스케이팅 코치는 기술을 담당합니다. 예를 들면 점프나 스핀 등이죠. 전반적인 선수 관리가 코치의 몫입니다.

그와 달리 안무가는 작품을 만드는 직업이라 생각하면 쉽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007’, ‘아디오스 노니노’같은 작품들은 데이비드 윌슨이라는 안무가가 만들어 준 작품입니다. 안무가는 기술보다는 구성을 주로 가르치며, 음악 선정 등에 안무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됩니다.”

- 안무가에게 중요한 능력이 궁금합니다. 

“직업 자체가 예술, 창작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틀에 갇혀 버리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작품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많이 접하며 소스를 가져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스포츠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수가 소화를 못하는 안무는 점수와 직결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선수가 기술을 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안무를 짤 수 있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해진 안무가. [사진=본인 제공]
김해진 안무가. [사진=본인 제공]

- 안무가의 시즌·비시즌은 선수 때와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안무가는 안무를 완성하면 1차적으로는 해야 할 일이 끝납니다. 선수들이 연기하기 전까지 작품을 만들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바쁜 시기입니다. 시즌이 시작하면 선수가 연습하면서 불편한 부분에 대해 레슨을 진행합니다. 승급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작품을 짜는 경우도 있지만 실전 전후를 기준으로 봤을 때 작품을 짜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그래서 선수 시절과 달리 겨울에는 시간이 조금 넉넉한 편인 것 같습니다. 찬 공기가 느껴지는게 선수 때는 정말 싫었는데 지금은 찬 공기가 오면 쉴 시간이 된 것 같아 반갑습니다.”

- 롤모델 안무가가 있나요?

“예전에 저에게 갈라쇼 작품을 주셨던 신예지 안무가님이 계십니다. 사실 피겨스케이팅 안무가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외국에 안무를 받으러 나갔는데 우리나라에서 거의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팅 안무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오신 분입니다. 아무도 안하던 직업을 만들어 주신 분이라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국내 최초 미디어 아트 아이스쇼 'G-SHOW'의 안무가로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초반에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음악 위에 작품을 짜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음악은 작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박자와 콘셉트만 아는 상태에서 작품을 짜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시스템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마찰이 있었지만 다행히 나중에는 순조롭게 공연 준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형식의 공연이기도 하고, 뮤지컬 배우, 연기자, 스케이터가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야 해서 삐걱거리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공연이 잘 막을 내렸고, 큰 사고 없이 진행된 것에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 해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은퇴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안무가 일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평창올림픽 1차 선발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대한빙상경기연맹 쪽에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MBC에서 해설위원을 찾고 있다. 선수 생활하면서 공부도 같이 했던 것 같은데 해볼 생각이 있느냐' 제안하셨습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요즘은 해설위원의 연령층이 많이 낮아졌지만 당시에만 해도 연배도 있으시고 경험도 풍부하신 분들이 해설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조금 망설였는데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승낙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 캐스터와 호흡을 맞추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MBC는 올림픽 외에는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아나운서 분들이 피겨 중계를 처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겨가 약간의 차이로 인과 아웃이 바뀌고, 명칭이 달라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 하십니다. 중계를 준비하면서 함께 공부하다 보면 올림픽이 끝날 때는 같이 피겨 팬이 되는 점이 재미 요소인 것 같습니다.”

- 해설위원의 시선에서 피겨의 매력은?

“’피겨’라고 하면 아릅답기만 할 것 같은데 요즘은 차준환 선수 같은 남자들도 떠오르고 있잖아요. 그런 선수들은 마냥 우아하기만 하지 않고 파워풀합니다. 스포츠적인 면모들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공중 4회전은 저도 해설하며 감탄합니다. 

특히 동계스포츠 중에서 유일하게 음악도 함께하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예술적 측면과 스포츠적인 측면을 종합한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마치 하나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순위가 나뉘는 짜릿함과 감성적인 부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차준환 선수와. [사진=본인 제공]
차준환(왼쪽)과. [사진=본인 제공]

- 김해진표 해설만의 매력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아무래도 피겨가 본인의 취향이 들어가 설명할 수 밖에 없거든요. 정해진 정답이 없다 보니 최대한 기술 위주로 객관적으로 얘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해설을 할 때 음악이 잘 들릴 수 있도록 말수를 줄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 다르기 때문에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해설위원이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선수들의 이전 연기를 많이 찾아봅니다. 선수들의 기술 변화 등에 대해 설명해드리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많이 공부하려 합니다.”

- 개인적인 목표가 있나요?

“사실 아직은 딱 하나의 길을 정해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20대잖아요. 안무가와 해설위원 뿐만 아니라 심판도 준비하고 있는데 피겨와 관련된, 혹은 피겨와 관련되지 않은 일들을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30대를 맞이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많이 일을 벌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는 것입니다. 장기적인 목표는 그 중 필요한 걸 골라 전문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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