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배우 이순재(90)가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공로상이 아닌 대상이다. 함께 '개소리'를 만든 든든한 동료견 아리(소피 역)와 베스트커플상도 수상했다. 시니어 배우는 대상을 받을 수 없다는, 사람이 아닌 동물은 배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업계의 편견 가득한 불문율을 깬 뜻깊은 결과다.
이순재는 지난 11일 방송된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개소리'로 대상을 받았다. 결과가 발표된 순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눈물을 흘렸다. 앞서 건강 악화 소식을 전했던 그는 후배들의 부축을 받기는 했지만, 또렷한 목소리와 명쾌한 소감으로 건재함을 보여줬다.
시니어 코미디 '개소리'는 이순재를 필두로 시니어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아리를 비롯한 배우견들이 함께 만들어낸 도전적인 드라마였다. 그동안 TV드라마는 끊임없이 젊은 피를 수혈하는 '늙지 않는 세계'라는 비판점을 지니고 있었다. 50대 이후의 배우들은 주연의 위치에서 물러나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어머니를 연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개소리'는 이 세계를 뒤집었다. 이순재, 김용건, 예수정, 임채무, 송옥숙을 내세워 누군가의 '무언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연기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했다. 장기간 시청률 부진을 겪고 있는 KBS에게는 도박에 가까운 기획이었다. 그러나 '개소리'는 최저 0%대까지 떨어졌던 KBS 평일드라마 시청률을 평균 4%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숫자 자체만 본다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닐지 모르나, KBS 평일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0'에서 '4'로 상승시켰다는 결과로 본다면 굉장한 수치다. 무엇보다 시니어 배우에 대한 시청자 수요를 증명하며 드라마 시장의 시야를 넓혔다는 의의를 지녔다. 그렇기에 KBS가 이순재에게 수여한 대상은 단순한 존경으로만 해석되지 않았다. 이 모든 현상을 계산한 결과값이었다.
이날 이순재는 수상소감에서 "1962년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KBS와 연을 맺었다. 그런데 그 이후 KBS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배우 숫자가 많으니 적절한 배역이 없으면 출연을 못 하는 거다. 당연한 거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회가 한번 오겠지 하고 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 뒤 "그리고 오늘, 이 아름다운 상 이 귀한 상을 받게 됐다"고 수상의 기쁨을 표현했다.
지상파 시상식은 시청률과 인기가 척도가 되기 때문에 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청장년층 배우들에게 트로피가 돌아간다. 특히 60세 이후의 배우들에게는 연기상이 아닌 '공로상'이 전달되곤 했다. 이들은 연기로 평가를 받기보다 그간 쌓아온 경력과 공로로 평가받았다.
이순재는 공로상에 대한 문제점을 짚으며 "상이라는 건 좋은 거다. 그 상이 진정한 상이었을 때, 내가 최선을 다한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스타라고 상을 주는 게 아니다. 그늘 밑에서 열심히 한 사람이 받는 거다. 그럴 때 일생의 영예가 된다.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지 인기나 다른 조건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 공정한 상이야말로 영예가 된다"고 '연기'대상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성을 이야기했다.
또한 "소피(아리)는 전적으로 주연 연기를 했다. 이 친구 역량이 없었으면 '개소리'가 짖다 말았을 것"이라며 "이 상은 나 개인의 상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개소리'에는 우리 소피를 비롯해 수많은 개가 나온다. 그들도 한몫을 다 했다. 파트마다 맡은 역할들이 있고 최선을 다했다"며 배우견도 연기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KBS는 이번 시상식을 통해 "추모는 선택이 아니"라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시상식을 열었고,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2024년 세상을 떠난 배우들을 추모했다. 일부 배우를 선별해 추모하는 기존 시상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 남궁원(1934. 08. 01~2024. 02. 05)부터 오현경(1956. 11. 11~2024. 03. 01), 남일우(1938. 05. 25~2024. 03. 31), 권성덕(1940. 08. 17~2024. 10. 13), 김동수(1948. 03. 27~2024. 06. 25), 김수미(1949. 09. 03~2024. 10. 25), 박지아(1972. 02. 25~2024. 09. 30), 송재림(1985. 02. 18~2024. 11. 12)까지 대중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하고 고인이 된 이들을 기렸다.
KBS는 추모 영상을 통해 "당신이 보여준 연기에 대한 진심, 땀과 열정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중 '연기에 대한 진심, 땀과 열정'이라는 문구는 이순재가 수상한 대상에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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