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한국 프로스포츠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입장권료, 중계권료 수입에 머물러 있던 수익구조가 점차 다변화되고 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유광점퍼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상품화 사업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있어 보이는 상품’만 있다면 스포츠팬들은 언제든지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다. 공급자의 치밀한 전략, 구매자의 욕구를 자극하는 영업 스킬까지 더해진다면 스포츠산업도 조만간 당당히 산업군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스포츠Q 민기홍 기자]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는 귀엽고 발칙한 디자인의 상품들을 주기적으로 기획해 팬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있다.
일 잘하는 NC 프런트는 “우리의 타겟은 야구팬이 아니라 한국의 시민”이라며 “데이트를 할 때, 잠잘 때도 NC의 티셔츠를 입히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똑똑한 직원들은 시장의 수요를 반영한 상품들을 적시에 유통, 판매해 스포츠산업 파이를 키우고 있다. 적자 일변도의 한국 스포츠에도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 있다.
스포츠산업의 미래는 ‘디머스(DeMerS)’에 있다. ‘디’는 디자인(Design), ‘머’는 머천다이징(Merchandising), ‘스’는 세일즈(Sales)를 의미한다. 소비자가 열광하는 디자인, 구체적인 상품화 계획, 스토리를 얹어 판매하는 영업력이 스포츠산업의 명운을 쥐고 있다는 소리다.
스포츠디머스 프로그램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최준서 교수는 “디머스가 스포츠산업의 향후 20년을 책임질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이 역량을 강화하게 되면 구직자 입장에서도 스포츠산업 내 취업 대상 조직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양대 스포츠디머스 프로그램이 주최하고 교육부 수도권대학 특성화사업(CK-Ⅱ)과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산업융합 특성화대학원 지원사업이 후원하는 더 넥스트 스포츠 어젠다((The Next Sport Agenda) 2014가 지난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개최돼 스포츠산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이 자리에는 스포츠산업에 관심 있는 대학생은 물론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은 없을까 갈증을 느끼던 스포츠산업 실무자들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라이선싱은 선진국형 비즈니스, “반드시 된다”
“라이선싱은 선진국형 비즈니스죠. 아직 한국에서는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도 선진국형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분명히 될 사업입니다.”
IB월드와이드 김영진 상무의 확신이다. 그는 “스포츠비즈니스를 하는 선도적인 기업으로서 라이선싱 사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분야”라며 “굉장히 유망하고 성장할 분야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승부를 걸기 위해 인천 아시안게임 사업권도 따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의 '호돌이' 이후 200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메가스포츠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했음에도 라이선싱 사업으로 큰 수익을 낸 적이 없었다.
IB월드와이드가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거둔 매출은 60억원 정도. 김 상무는 “이는 부산 대회가 남긴 자료조차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값진 성과”라며 “글로벌 마켓 기준으로 이 사업은 최근 5년간 연평균 2.6%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K리그 대전시티즌, 경남 FC, 광주 FC 등의 엠블렘 제작, 붉은악마와 한국 축구대표팀의 머플러 등 상품 디자인을 전담한 장부다 선들 스포츠사업본부장은 ‘축구디자인’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스토리와 시각 자료를 덧입힌 강의에 청중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는 “축구 디자인의 핵심 3요소는 가족(Familyship), 제사(Rites, Ceremony), 라이벌(Opponents)”이라며 “디자인하는 순간만큼은 가족의 일원이 돼야 한다, 팀 고유의 자부심 있는 세리머니(의식)를 고려해야 한다. 라이벌을 고려해 정반대의 상징색을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본부장은 “축구디자인은 일회성 용역 사업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장기적 프로젝트로 어떻게 구단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의 문제로 다뤄져야만 한다”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긴 호흡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다듬어야할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 융합의 시대, ‘스포테일 시대’가 온다
이날 연사 중에는 스포츠산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기업체의 임원과 교수도 참석해 큰 호응을 받았다. 다른 분야와의 융·복합을 통해 스포츠산업의 경계를 무너뜨리겠다는 주최측의 의도가 반영된 시도였다.
전국 8400여개의 편의점을 보유하고 있는 BGF리테일의 류왕선 전략기획본부장은 스포츠마케팅과 리테일의 합성어인 ‘스포테일’이란 개념을 내놨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대기업답게 류 본부장은 철저히 ‘소비자 중심의 관점에서 생각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고객들은 편의점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점포에서 체류 시간이 짧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시식대, 흡연실, 파우더룸, 스터디룸 등 휴게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였다.
류 본부장은 “그동안 유통업체의 스포츠마케팅 활동은 단발성의 스폰서십과 단순한 제휴 수준에 머물렀다. 업계 입장에서는 투자를 하기 매력적이지 않았다”면서 “이제는 구단, 선수, 캐릭터든 관계없이 채널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평소 글로벌 기업 초빙강연을 많이 다녔다는 에린 조 파슨즈 뉴스쿨 디자인 교수는 “스포츠산업의 끝이 어디다라고 정의하고 들어가서는 안된다”며 “바운더리를 깨는 연습부터 먼저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모든 것을 지우고 맨 처음부터 생각해야 마켓 리더가 될 수 있다. 괴롭고 힘들더라도 초기에 시간을 투자해라”며 “상처를 입는 것을 두려워 말라,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조 교수는 지난해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로 꼽힌 나이키를 예로 들었다. 그는 “신발 자체로의 기능성과는 무관하게 아이팟 센서를 신발 밑창에 붙였다"며 “이를 통해 나이키는 러닝이라는 행위가 외로울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전했다.
행사를 준비한 이들도 업계 전문가들의 이야기 한마디를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김범규(23·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씨는 “편의점 전문기업이 와서 머천다이징의 기본에 대해 가르쳐준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며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현장의 목소리로 들어 좋다"고 평가했다.
◆ ‘영업의 달인’ 마틴 레니의 울림, “팔줄 알면 무직자는 되지 않는다”
“달변가만이 영업을 잘 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잘 묻고 잘 들을 알아야 한다.”
서울 이랜드 FC의 마틴 레니 감독도 디머스 프로그램의 한축을 담당했다. 그는 이날 축구 지도자가 아닌 ‘영업 전문가’로 무대에 섰다. 레니 감독은 부상으로 인해 일찌감치 현역 생활을 접고 제약, 소프트웨어의 세일즈 담당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명확한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라. 잘 묻고 경청해서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팔줄 아는 사람은 절대로 무직자가 되지 않는다. 성공에 대한 갈증을 지녀라”는 메시지를 던져 큰 박수를 받았다.
박성배 곤자가대학교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왜 스포츠산업에서 더욱 세일즈 능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상기시켰다. 그는 “스포츠상품은 비예측성, 비일관성, 무형성, 소멸성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며 “스포츠서비스 상품만이 갖는 특성이므로 공급자로서의 능력을 키워나가야한다”고 당부했다.
NBA 의류 라이선싱 사업으로 연매출 300억원을 내고 있는 엠케이트렌드 김문환 대표이사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젊은 친구들을 공략해 시장을 잠식하면서 NBA를 바라보게 됐다”며 “세일즈에는 장기적인 계약,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최준서 교수, “한국 스포츠업도 자생력을 가져야”
이 밖에도 홍원의 스포티비 대표이사, 이준하 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대회운영부위원장 등이 스포츠 중계권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과 최근 시장 추이, 평창 올림픽 준비 과정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홍 대표는 “미디어 환경은 지상파, 케이블, 뉴스 등 기존 플랫폼에서 IPTV, 포털사이트 등 뉴미디어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중계권을 통해 스포츠팬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위원장은 “평창 올림픽의 목표는 문화, 환경, 평화, 경제 올림픽을 치러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라며 “13개의 경기장 중 신설하는 것은 6개뿐이다. 보완하는 것이 3개, 4개의 기존 경기장을 활용한다”고 예산 절감안에 대해 어필했다.
한국풋살연맹의 경기분석관 인용현(26) 씨는 “실무를 해보신 분들이 경험을 곁들여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해주셨다”며 “내용도 내용이지만 다양한 아이디어, 유명한 분들의 프레젠테이션 스킬까지 배워가는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크게 흡족해 했다.
최준서 교수는 “이제는 한국 스포츠 구단과 경기단체도 자생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비즈니스 마인드 없이 경기력 향상에만 치중해왔다”며 “‘디머스’ 트레이닝을 받은 친구들이 필드로 진출해야 한다. 취업난의 학생들에게도 돌파구를 모색하는 기회”라고 정리했다.
[취재 후기] 행사에 나선 올스타급 연사 다수가 ‘디머스’라는 신조어에 대해 극찬을 쏟아냈다. 특히 IB월드와이드의 김 상무는 “디머스의 첫 번째로 언급되는 것이 디자인이라는 사실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디자인이야말로 상품의 차별화, 가격의 저항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요소라는 것. 스포츠산업을 주시하는 이들이라면 ‘디머스’라는 용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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