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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될 우민호의 안중근 '하얼빈'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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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될 우민호의 안중근 '하얼빈'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12.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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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전례 없던 시도다. 독립 영웅을 감동적인 스토리로 포장해 장르영화 형식을 유지하던 기존 한국 역사극의 틀을 완전히 해체한다. 대신 고전 양식을 통해 '나의 나라'로 향하는 여정이 얼마나 춥고 어두운지, 원대한 목표와 나약한 인간성이 얼마나 치열하게 대립하는지를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상업영화의 전형을 깨고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겠다는 선언이다. 가히 한국영화에 대한 도전이라 부를 만하다. 

◆  "누군가 '하얼빈'은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합니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은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다. 우덕순과 독립의군을 조직해 일본군을 격파한 순간부터 살아남은 11명의 동지와 단지동맹회 결성하고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척결 후 "까레아 우라!"를 외치기까지, 기록으로 남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영화적 상상으로 풀어낸다.

앞선 인용은 우민호 감독이 첫 국내 시사회에 앞서 취재진에게 전달한 자필 편지 속 내용이다. 그의 말대로 역사극은 기록에 의해 모든 결말이 '스포일러'된 이야기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길을 어떻게 설정하냐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독립 투쟁을 상징하는 안중근의 일생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생정신에 감읍한 이들을 통해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됐다.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부터 주동진 감독의 '의사 안중근'(1972), 서세원 감독의 '도마 안중근'(2004)과 뮤지컬 영화 '영웅'(2022)까지. 기존 작품들은 안중근의 항일정신과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중 뮤지컬이 원작인 '영웅'이 동지를 잃은 슬픔과 절망을 뱉어내는 안중근의 속사정을 담아낸 정도다. 이런 가운데 우민호 감독은 우상화를 제하고 '실존주의'를 택한다. 결코 영웅적이지 않은, 극히 사실적인 인물들을 통해 여정을 그려낸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지독하게 고독하다. 추위에 떨며 홀로 꽁꽁 언 강을 건너고, 동지로부터 신념을 의심받으며, 좁은 방 한편에 숨어들어 눈물을 삼키는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나 목표를 잃지 않는다.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죄책감을 목숨줄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삶의 주체이면서, 그 삶을 조국 독립에 바치기로 결심한 행동가다. 그래서 더욱 숨이 막힌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 아닌 감히 상상하기도 벅찬 고통에 숨이 죄어온다.

그렇다고 해서 안중근의 고독이 고통으로 단순화되는 것은 아니다. "고독은 생각을 집중하게 하는 숭고한 조건이다. 고독의 맛을 음미해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는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안중근의 목표는 고독을 통해 숭고해진다. 국민성을 박탈당하고, 삶을 놓치고, 동지를 잃으며 음미한 고독이 그를 숭고하게 만든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시각 연출은 이를 예술로 승화한다. 얼굴을 덮는 어둠과 일렁이는 그림자, 화면을 가득히 채우는 침묵 속의 공기, 긴장의 순간에 전환되는 흑백 영상 등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예술을 녹여낸다. 안중근이 느끼는 고독을 정물화해 관객이 점차 그와 동화되도록 만든다. 이는 나와 단절된 영웅이 나와 연결된 역사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이어 영화를 묵직하게 누르던 어둠은 극 말미의 내레이션을 통해 '빛'을 발한다. 동시에 어둠으로 채워진 극장 안의 관객도 '빛'이 된다. 극장이 그토록 강조하는 영화적 경험이 무엇인지 몸으로, 가슴으로 경험하는 순간이다.

동시에 매체의 특성에서 재미 요소를 더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1951)이 떠오르는 추격신이라든가, 몽골의 광활한 풍광을 압도적으로 담아내는 IMAX 화면이라든가, 신아산 전투의 처절함과 이토 히로부미 척결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일렉 기타 사운드 음악이라든가, 구와 신을 오가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라든가, 빈틈없이 치밀하게 계산된 미장센이라든가. 무엇보다 '하얼빈'이 첫 호흡이라는 우민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이렇게나 찰떡궁합이라니! 고수와 고수의 만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다섯 차례 작업하며 영혼의 짝꿍이 된 우민호 감독과 조영욱 음악감독은 또 어떠한가. '절제의 미학' 김보묵 미술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현빈, 조우진, 전여빈은 인생 연기를 새로 썼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하얼빈'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한 이들의 발걸음은 오랜만에 등장한 '전천후 영화'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 더불어 오늘의 관객들이 경험하는 시대성이 메시지 확장을 기대케 한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 상업영화, Why Not?

'시네마 천국'(1988)은 세계적인 명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국에서 외면받고 조기 상영 종료된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제작자는 151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이 흥행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1년 뒤 '시네마 천국'은 칸 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상을 휩쓸고 위축된 이탈리아 영화 산업을 재건축했다. 그리고 30여 년 뒤인 한국의 오늘, 숏폼 시대가 도래하면서 롱폼 영화는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는 분석이 쉽게 나왔다. 

'하얼빈' 사전 시사 직후 일각에서 114분 분량이 숏폼 시대에 통할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왔다. 영웅 서사에 으레 있어야 할 눈물 차오르는 감동이 없다는 평이 오갔고, 패스트 콘텐츠에 익숙한 관객이 영화가 전달하는 고독을 견디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다. 

의문이 생긴다. 역사극이 왜 반드시 눈물을 유발하는 신파 콘텐츠여야 할까. 상업영화가 왜 반드시 오락적인 서스펜스와 스펙터클을 선사해야 할까. 정교하게 짜인 시퀀스 속 정적과 공백이 왜 당연히 일반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없을까. 그리고 되묻고 싶다. 왜 안중근의 실존에서 영화(榮華)를 찾냐고.

'시네마 천국'이 명작이 된 후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누군가 내 영화를 헐뜯으려 한다면 그 영화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영화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인용해 말하고 싶다. '하얼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독이 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영화 '하얼빈' 스틸컷. [사진=CJ ENM 제공]

또한 '서울의 봄'은 개봉 당시 141분에 이르는 긴 상영 시간 때문에 관객을 사로잡기 어려울 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312만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올해 최고 성적을 낸 '파묘'(1191만명)는 러닝타임이 134분에 이른다. 두 영화를 두고 긴 러닝타임을 문제 삼는 관객은 없었다. 오히려 N차 관람을 인증하는 관객이 줄을 이었다. 이보다 훨씬 긴 180분을 자랑하는 '오펜하이머'는 323만명이 관람했다. 관객들은 정말로 롱폼을 원하지 않을까? 사실만 이야기한다면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길어서' 흥행에 실패한 영화는 없다.

영화감독들이 시장 공식에 부딪혀 '예술하기'를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팬데믹 이후 통하지 않는 낡아버린 상업 감성에서 빠져나와 마음껏 감상적으로, 마음껏 서정적으로 굴길 바란다. "왜 IMAX 연출을 넣었냐"는 질문에 "Why Not?"(왜 안 돼?)이라고 자신 있게 답하는 우민호 감독처럼, 흥행 공식과 상관없는 다양한 시도로 과거의 'CJ식' 영화에서 탈피하려는 CJ ENM처럼 새 길을 개척하길 바란다. 그 길이 위기의 한국영화를 '시네마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하얼빈'은 오는 24일 극장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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