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박상현 기자]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이 두번째로 내민 '플랜B' 카드는 성공적이었다. 주전들의 부상 이탈 속에 흔들릴 수 있었던 한국 축구대표팀이 우승후보 가운데 한 팀인 사커루를 잡으면서 다시 정상을 향한 자신감도 챙겼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17일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A조리그 최종 3차전에서 전반 32분 이정협(24·상주 상무)의 선제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내 호주를 1-0으로 꺾었다.
역대 한국 축구는 호주와 42년째 A매치를 치렀지만 단 한차례도 호주 원정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 1973년 서독 월드컵 지역예선 원정에서 비긴 이후 내리 3연패를 당했다. 1무 3패 끝에 처음으로 맛본 호주 원정 승리다.
반면 호주는 2009년 3월 5일 쿠웨이트와 2011 아시안컵 예선에서 쿠웨이트에 0-1로진 뒤 6년여 만에 홈에서 패배를 기록했다. 그만큼 한국 축구가 호주 원정에서 거둔 승리는 자신감을 충전하는 계기가 됐다.
◆ 얻은 것 - 압박 부활, 실리 그리고 기성용
한국은 호주전에서 볼 점유율에서 밀렸다. 후반 내내 호주의 파상 공세에 밀린 영향도 있지만 전반에도 볼 점유율을 앞서지 못했다. 이날 전후반 점유율은 33-67로 밀렸다.
볼 점유율에서 밀리면서도 슛은 9개나 때렸다. 호주보다 5개가 적었지만 호주 못지 않게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후반 내내 호주의 파상공세를 고려한다면 전반은 볼 점유율에서 앞서고도 앞서나가는 경기를 했다.
압박이 부활한 것이 좋은 경기 내용을 불러왔다. 기성용(26·스완지 시티)과 박주호(28·마인츠05) 등 포백 앞에서 든든한 벽이 되어준 수비형 미드필더 뿐 아니라 이근호(30·엘 자이시) 등 공격수까지 호주를 강하게 압박했다.
압박이 풀려 오른쪽 골망을 때리는 슛을 내주는 장면도 나왔지만 슈틸리케호의 압박은 경기 내내 효과적이었다. 압박의 부활은 수비가 그만큼 튼튼해지고 역습에 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프레싱이 성공해 역습을 성공시킨 경우도 있었다. 후반 내내 호주의 공세가 있었지만 장현수(24·광저우 푸리)의 단독 돌파에 이은 슛 장면은 바로 역습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리를 챙긴 것도 반가운 대목. 구태여 손흥민(23·바이어 레버쿠젠) 등 주전급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내지 않고도 원하던 승리를 챙겼다. 볼 점유율에서 밀렸어도 이기는 경기를 한 것이 큰 소득이다.
호주전은 무리할 필요가 없는 경기였다. 이기지 못하면 조 2위였다. 조 2위더라도 중국과 8강에서 만나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됐다. 그럼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지거나 비기는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승리를 챙겼다.
주전들의 체력을 최대한 아꼈을 뿐 아니라 카드 관리도 잘했다. 경고를 받았던 선수들 가운데 장현수만 내보냈고 결국 그 어떤 선수도 경고 누적으로 인한 결장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정협이라는 공격 자원의 가능성을 본 것 역시 실리라면 실리다. 그저 슈퍼 조커로만 여겼던 신데렐라 이정협이 선발로 나서 골까지 기록하며 선발로 써도 무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1위냐 2위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선수들에게 얘기했다. 다만 앞선 2경기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정신력과 경기력으로 풀어가느냐가 중요했다"며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줬다. 또 어떤 선수가 들어와도 누구나 다 준비가 되어 있어 계속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리 축구를 한 것에 대한 큰 만족의 표시다.
기성용이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자원이 됐다는 것도 소득이다. 득점 상황에서 이근호에게 찔러준 패스는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두려움 없는 플레이와 넓은 시야는 대표팀의 공수 조율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는 이유가 됐다. 기성용이 확실하게 한 자리를 잡아주면서 박주호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 '기-박 듀오'가 연착륙한 것도 큰 성과다.
◆ 잃은 것 - 한창 상승세인 구자철의 부상 그리고 트라우마
대표팀은 한가지 공격 옵션을 잃었다. 부상 상황에 따라 어쩌면 이청용(27·볼턴 원더러스)에 이어 또 다른 공격자원이 아시안컵을 마감할 위기에 처했다.
구자철(26·마인츠05)은 후반 경기 시작과 함께 공중볼 다툼 과정에서 매튜 스피라노비치(27·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에 밀려 앞으로 착지하다가 손을 잘못 짚는 바람에 팔꿈치를 다쳤다.
대한축구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팔꿈치 인대가 늘어난 것으로 보여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하지만 탈골도 우려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김창수(30·가시와 레이솔)도 경험을 했던 부분이다.
구자철이 빠진다면 이청용에 이어 공격 옵션을 추가로 잃게 된다. 앞으로 중요한 3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한창 몸상태를 끌어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던 구자철이 빠진다는 것은 큰 손실이다.
또 슈틸리케호가 계속 부상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개운치 않다. 대표팀은 오만전부터 계속 부상으로 교체카드를 소진하고 있다.
오만전에서는 전반 19분 김창수의 부상으로 차두리(35·FC 서울)가 교체 투입됐고 후반 33분 한교원(25·전북 현대)이 들어가는 과정 역시 이청용의 부상이 있었다.
호주전에서 다시 한번 2장의 교체카드를 부상으로 썼다. 구자철이 부상으로 나가기 전에 박주호가 전반 29분 네이선 번스(27·웰링턴 피닉스)의 팔꿈치에 가격당해 코를 다친 뒤 12분이 지나고 나서 교체로 아웃됐다.
박주호는 부상이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상대의 거친 플레이에 부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자칫 몸을 사리게 돼 위축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8강에서 만날 우즈베키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도 체력을 앞세운 거친 축구를 구사하는 팀이고 4강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이란은 말할 것도 없다. 결승전은 어느 팀과 맞붙어도 체력과 몸싸움이 계속되는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팀 선수들의 각오를 다시 한번 다져야할 2라운드, 녹다운 토너먼트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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