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1970~80년대에는 유럽에서 활약하는 구기종목 선수들을 보기 힘들었지만, 1990년대 이후 유럽 무대를 누비는 태극스타들이 많아졌다. 핸드볼에서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뛴 윤경신(42) 남자 핸드볼대표팀 감독과 홍정호(40) 광주 도로공사 플레잉코치가 유럽에 진출했다. 홍 코치는 노르웨이 바에크클라게츠와 덴마크 슬라겔세에서 뛰었다. 하지만 축구와는 달리 핸드볼은 자국 리그의 활성화와 선수의 소극적인 마인드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선수들이 유럽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구단의 적극적인 지원을 입고 원대한 목표를 세운 뒤 유럽 진출을 꿈꾸는 차세대 에이스가 있다. 주인공은 팀 이적으로 시련을 딛고 재도약 의지를 다잡은 이효진(21·서울 SK 슈가글라이더즈)이다.
[잠실=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에 ‘우생순’은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다주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극적인 명승부가 조명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반짝했던 관심은 금세 잦아들었다. 당시 임오경 서울시청 감독은 “핸드볼을 위해 정작 필요한 건 우생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핸드볼은 직접 경기장에 찾아와 응원해 주는 관중 한 명이 절실하다. 비인기종목이란 측은한 시선은 이젠 거둬들일 때가 됐다.
실업무대 세 번째 시즌을 앞둔 이효진은 핸드볼의 룰이 경기장에서 원활하게 설명되면 더 많은 관중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실제로 핸드볼 경기를 보면 재미있는데, 규칙이 조금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저 선수가 왜 갑자기 공을 놓고 백코트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축구처럼 룰이 비교적 단순하다면 더 많은 분들이 경기장에 찾아오셨을 거라 생각해요.”
서울 성산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따라 시작한 핸드볼. 올해로 벌써 선수 생활 11년째를 맞았다. 휘경여고 2학년 때인 2011년 주니어대표팀에 뽑힌 이효진은 이듬해 제18회 세계여자주니어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쥐며 이름을 알렸다. 빠른 발과 순도 높은 득점력이 돋보였다.
지난해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19회 세계여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한국의 우승과 MVP(2회 연속), 득점왕(64골), 베스트7(센터백)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팬클럽이 결성될 정도로 이효진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이효진은 “대회에 앞서 예선 통과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우승이 더욱 극적이었던 것 같다”며 “예선에서 체코에 한 차례 진 것이 오히려 남은 경기에서 심기일전한 결과로 돌아왔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 유럽 핸드볼, 프리미어리그 연상케 하는 열기에 빠져들다
두 차례 유럽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2회 연속 MVP를 수상하면서 유럽 진출에 대한 꿈이 커졌다.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중에 부러움을 느꼈단다. 이효진은 “관중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 유럽축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응원소리가 컸다”며 “관중이 없을 때는 경기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대회에서는 그럴 틈이 없었다.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분위기였다”고 돌아봤다.
동네 어귀에서도 핸드볼 코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 핸드볼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종목이다. 프로팀과 아마팀의 수는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고 챔피언스리그 등 국가간 클럽 대항전도 활발하게 열린다. 경기가 많다 보니 선수들의 기량도 자연스레 올라가고 있다.
이효진은 “항상 열광적인 분위기인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면 직업이라도 재밌고 뿌듯할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 유럽무대 진출? 지금 당장은 NO!
지난해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를 치르며 이효진은 크로아티아, 노르웨이, 루마니아, 세르비아, 독일, 러시아 등 체격이 큰 유럽 선수들을 상대하며 스피드로 승부했다. 힘과 신장 차는 컸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공격할 땐 빠르게 치고 나갔고 수비 시에도 앞 선부터 타이트하게 막았다. 상대가 공을 원활하게 돌리지 못하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 그의 강점이 살아난 것이다. 처음으로 접한 핸드볼 스타일에 당황한 유럽 선수들은 한국에 경기 주도권을 내줬다.
유럽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효진. 진출 시기를 조금 앞당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보완할 점이 산더미란다. 아울러 소속팀을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팀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SK에 언니들도 많이 있고 대표팀에는 제 자리(센터백)에 여러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일단 후보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갈 생각입니다. 아직 어린데 급할 거 없지 않나요(웃음)?”
유럽 진출 시기는 앞으로 4~5년 후로 보고 있다. 실력과 노련미가 자리 잡았을 때 나가고 싶다는 바람이다. 국위선양을 하겠다는 뜻도 함께 전한다.
이효진은 “유럽 선수 수준으로 기량을 키운 뒤 해외에 나가고 싶다”며 “어느 정도 실력이 돼야 진출할 수 있는 곳인 만큼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나를 보고 ‘한국에는 저런 선수밖에 없나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가장 잘하고 있을 때 여유 있게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SK 구단 관계자도 “인큐베이팅 시스템에서 선수를 키워 해외로 보내는 것이 구단의 지향점이다. 선수가 원하는 시기에 해외진출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온아 언니의 오뚝이 정신 본받고파"
2012년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경남개발공사에 입단한 이효진은 2013년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올 시즌을 앞두고 SK로 둥지를 옮겼다.
그가 지난달 팀을 옮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연봉 문제로 이전 구단과 갈등이 있었고 임의 탈퇴 됐다가 지난해 10월 팀에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경남개발공사가 책정한 제 연봉이 벤치멤버보다 더 적었어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 연봉 조정 신청을 했는데, 구단이 ‘떠나려면 7000만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이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팀이 SK였다. 분쟁 과정에서 생긴 비용 전액을 지불한 SK는 이효진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했다.
새 팀에서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그는 김온아(27·인천시청)를 롤 모델로 삼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러 차례 부상을 당했음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정신력을 닮고 싶단다.
169㎝의 이효진과 같은 센터백 포지션인 김온아는 167㎝의 키로 핸드볼 선수 치고는 작지만, 발과 슛 동작이 빠르다. 여기에 넓은 시야와 경기 운영능력, 빠른 판단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등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부상을 당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첫 경기에서 공격 중 발을 헛디뎌 무릎 인대가 파열된 것. 귀국 후 수술을 받은 김온아는 1년여 치료와 재활 끝에 코트에 복귀했지만, 2013년 전국체전이 끝난 뒤 수술 부위의 염증으로 재수술을 받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지난해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인천시청을 우승으로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MVP에 선정됐다. 그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8년 만에 우승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효진은 “다방면으로 잘하는 선수이지 않나. 같은 선수가 플레이 하는 것을 봐도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온다”며 “몇 번을 다쳤는데 다시 복귀해서 그 정도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만약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잘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한 정신력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센터백 자리에 이효진도 괜찮네. 키가 작아도 쓸 만하네’라는 평을 듣고 싶어요. 공격에 비해 수비와 체력이 떨어지는데, 이 부분을 잘 보완해서 공수겸장의 센터백으로 거듭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센터백은 코트 중앙에서 공격을 조율하는 필드의 사령관. 임오경, 김온아의 센터백 계보를 잇는 한국 여자 핸드볼의 신세대 에이스로 주목받다가 팀을 옮기는 시련도 겪었지만 원대한 꿈을 품고 다시 뛴다.
완전체가 되고 싶은 ‘김온아 워너비’ 이효진이 두 번씩이나 자신을 MVP로 탄생시켜준 유럽무대에서 뛰는 그날을 향해 새로운 팀에서 새 도전에 힘을 내기 시작했다.
[취재후기] 이효진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당장 성적을 내는 것보다 4~5년 뒤 미래를 내다봤다. 유럽무대 진출도, 국가대표도 자신이 실력이 최상일 때 가고 싶어 했다. 그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보다는 5년 뒤 도쿄 올림픽을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세계를 제패한 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절정의 기량을 발휘할 때가 2020년이라고 봤다. 이효진을 주축으로 한 어린 선수들이 도쿄의 기적을 일으키길 기대해 본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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