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한국 수영사에서 이제 박태환을 빼 놓고 얘기는 불가하다. 수영 대표팀 안종택(47) 감독은 박태환이 딴 올림픽 금메달은 단순한 금메달 한 개가 아니라 5000만 국민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메달이었다고 했다. 박태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망주가 자라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열악한 코칭 환경. 유망주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오는 9월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은 제2의 박태환을 찾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수영 국가대표팀의 체계적인 훈련 아래 대표선수들은 박태환이 열러놓은 가능성의 길을 더 넓히기 위해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진천=스포츠Q 글 권대순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한동안 박태환(26·인천시청) 문제로 수영 대표팀 안팎이 시끄러웠지만, 수영대표팀이 훈련을 하고 있는 진천선수촌에까지는 그 소식이 들리지 않은 듯 했다. 산속에 있는 요새처럼 자리한 한국 국가대표팀의 새 요람인 그 곳에서 수영 국가대표선수들은 묵묵히 훈련에 땀흘리고 있었다.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22명의 수영 국가대표 선수를 이끄는 수장은 안종택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2008년 노민상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수석코치로 입성해 2012년부터 현재까지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수영대표팀의 가능성과 현실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 한국 수영, 제2, 제3의 박태환 가능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자유형 400m 금메달과 200m 은메달을 획득한 것은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국은 올림픽 10위권 국가로 발돋움했지만 기초종목에서는 ‘해도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 사실. 안종택 감독은 박태환의 등장으로 그런 편견이 깨졌다고 말했다.
“박태환의 성공을 통해서 선수들의 생각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막연히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해고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훈련한다.”
김연아를 보고 자란 ‘김연아 키즈(kids)’들이 빙판 위에서 꿈을 키우고 있다면, 박태환을 보고 자란 ‘박태환 키즈’들도 현재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5~6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이 많이 있다. 유소년이나 청소년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선수들이 등장한다. 유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장규철 같은 선수가 그 대표적인 예다.”
안종택 감독은 “이제 선수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 올라왔다”며 “이제는 감독과 수영연맹에서 만들어 주는 훈련 여건과 시스템적인 부분에 대한 보완만 어우러지면 ‘제2의 박태환’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감독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으면 수영의 미래도 없다
안종택 감독은 제2의 박태환 얘기와 함께 자연스레 수영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어도 지도자들의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안종택 감독은 자신이 초등학교 팀부터 실업팀 감독을 거쳐 지금의 대표팀 감독까지 왔기에 누구보다도 지도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표팀에 들어오기 전 한달 급여가 150만원도 안됐다”고 운을 뗀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코치직에 전념을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현실을 맞기엔 너무나도 적은 금액.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데 선수들을 가르치는데 온 힘을 집중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좋은 선수들이 나오길 바라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낮에는 감독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은 하는 사람들도 봤다. 생계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는 감독들 때문에 지도자 교체도 잦아진다. 선수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나. 아무리 좋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도 좋은 지도자가 받쳐주지 못하면 그 잠재력은 가능성으로만 머물 뿐이다.”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있어도 지도자가 그것을 발견해내고 가꿔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안종택 감독은 “개인적으로 엘리트 스포츠에만 목을 메는 지금과 같은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향후 10년 내에 한국 스포츠에 큰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맞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준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 아시안게임, "선수들을 믿는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아시안게임이다. 개최국이라는 것은 이점과 동시에 상당한 부담감으로도 작용한다. 특히 한국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 4, 은 3, 동메달 6개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최상의 컨디션이었던 박태환이 대회 3관왕을 차지했기에 가능했던 성적이었다.
“광저우 때 잘 한 것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홈에서 열리는 경기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 때 좋은 기록을 냈던 백수연이나 이제 고등학생 또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임다솔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또 남자 수영의 장규철이나 양정규 역시 아시안게임 메달이 기대된다.”
안종택 감독의 말투에서 확신이 묻어났다. 안 감독은 현재 박태환의 몸 컨디션도 굉장히 좋다고 밝혔다.
“박태환이 지금 내고 있는 기록을 들어보니 아시안게임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굉장히 좋은 기록들이다. 지금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성적이 잘 나올 것 같다”
그런데 안 감독이 언급하는 선수 중 우리에게 익숙한 선수 한 명의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 바로 광저우 아시안게임 평영 200m 금메달리스트 정다래였다. 안종택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정다래와 사제지간을 맺어왔다.
“다래는 부상치료 차 아예 선수촌에서 나가 있는 상태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무릎을 다쳤고, 2012년 올림픽 때는 웨이트 훈련 중 어깨를 다쳤다. 이후 어깨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되면서 제대로 훈련 할 수 있는 몸이 되질 않았다. 2013년 세계선수권 국가대표로도 선발됐지만 중도에 하차했고, 아예 몸을 만들기 위해 퇴촌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발전은 오는 7월 다시 열린다. 안종택 감독은 “그때는 아마 선발전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1년에 11개월이나 합숙하며 보낸다는 수영대표팀은 필연적으로 지루함과 싸울 수밖에 없다. 매일 같은 훈련장에서 같은 훈련 프로그램, 같은 동료 선수들, 같은 숙소에서의 생활. 감독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은 듯했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 입장에서도 힘든 일이다. 같은 공간에서 훈련이 계속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사육 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국내-해외 전지 훈련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안종택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성적을 ‘자존심 문제’라고 정의했다. 홈에서 열리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안종택 감독은 “앞서 말했듯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있겠지만 선수들이 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광저우대회 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믿는다”며 웃었다. 실없는 웃음이 아니라 확신이 엿보이는 웃음이었다.
◆ 주목! 유망주 - 임다솔(16·계룡고)
고등학생 국가대표 임다솔은 이미 지난해 3월 국가대표에 뽑힌 유망주다.
2013년 동아수영대회 여고부 배영 200m 결승에서 2분12초03의 한국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고, 2013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대회 대표에도 뽑혔다.
하지만 아직은 친구들을 못 만나서 더 아쉬운 꼬마 숙녀의 모습이었다.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가 뽑히니 남들보다 꿈을 빨리 이뤄서 좋다고 답한 그는 “첫 아시안게임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초심의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취재후기] 충북진천에 위치한 선수촌은 정말 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요새 같은 느낌이었다. 취재하는 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외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었다. 수영대표선수들은 외딴 곳에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고립감’을 느낀다고 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런 힘든 시간들을 생각하며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역영으로 좋은 성적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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