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빼어난 피칭과 불안한 내야 수비, 그리고 담대함까지. 무대의 높이는 달라도 박종훈(28·SK 와이번스)을 보면 연상되는 투수가 있다. 메이저리그를 폭격하고 있는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2·LA 다저스)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5일 동시에 등판했다. 류현진이 먼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 6이닝 무실점하며 시즌 10승(1패) 째를 거둔 터였다.
몇 시간 후 서울 잠실구장 마운드에 오른 박종훈도 6이닝 동안 100구를 던져 7피안타(1피홈런) 무사사구 3탈삼진 4실점(2자책점) 호투하며 시즌 5승(4패) 째를 챙겼다.
경기 전까지 평균자책점(방어율) 3.33으로 전체 10위, 토종 선발 중 4번째 수준이었던 박종훈은 이날 호투로 3.31로 소폭 끌어내리며 규정이닝을 채우며 톱10에 진입했다.
유독 득점지원을 못 받기로 유명한 박종훈은 이날도 불운했다. 6회까지 호세 페르난데스에 솔로포로 1점만을 내주며 잘 던졌지만 7회 수비가 실책 3개를 범하며 흔들렸고 실점은 4로 늘었다. 자책은 2점으로 많진 않았지만 안 줄 수도 있었던 1점이 더해진 건 아쉬웠다.
SK는 실책 남발 속에 7회 4실점하며 흔들렸고 9회엔 2점 차까지 쫓겼다. 자칫 승리가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중계 카메라는 박종훈의 표정을 따라가기 바빴다.
병살타로 경기가 마무리되는 순간 박종훈은 환하게 웃었고 동료들을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류현진의 10승 도전 과정이 떠오른 경기였다. 내셔널리그 올스타 선발 투수 류현진은 아홉수에 울었다. 4차례 도전에서 1패만을 거뒀다. 쿠어스필드에서 올 시즌 최악의 투구를 한 경기를 제외하면 3경기 19이닝 2자책점만 기록해 평균자책점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실점은 이보다 3배 많은 6점이었다. 바로 불안한 내야 수비 때문이었다. 앞서 가던 경기에서도 수비가 흔들리며 승리 기회가 날아갔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늘 실책에 대해 “경기의 일부”라고 의연해 했고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날 5번째 도전 만에 10승을 채웠다.
박종훈도 “공을 던지고 나면 내 역할은 끝난 것”이라며 “수비 실책은 내가 볼넷을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다. 개의치 않고 내가 하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7회 실책 2개 이후 문책성 교체를 당한 최항을 향해서도 “이겼으면 됐다”며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에이스다운 듬직한 면모를 보였다.
류현진은 이날 불안한 내야 수비에도 위기 때마다 발군의 땅볼 유도 능력을 과시하며 불을 껐다. 박종훈의 생각도 같다. 연이은 실책 이후에도 “땅볼을 유도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공을 던졌다”고 말했다.
올 시즌 류현진의 기록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건 바로 볼넷 수다. 각종 기록에서 1위를 장식하고 있지만 특히 9이닝당 볼넷(BB/9)은 0.83개로 2위 잭 그레인키(애리조나, 1.17)과 큰 차이를 보인다.
박종훈의 BB/9는 3.01개로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지만 볼넷에 대한 생각에는 류현진과 차이가 없다. 특히 이날은 사사구를 하나도 내주지 않으며 승리까지 챙겼다. “볼넷을 안주려고 노력했는데, 좋은 결과요 가져왔다. 오늘 사사구가 없던 것은 의미가 있었다”고 만족해 했다.
승리와 평균자책점 등 복잡한 생각은 없었다. 목적이 분명했다. “중요한 경기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특히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것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구단에서 진행한 희망 더하기 캠페인을 통해 알게 된 예지 양을 위해 1이닝당 10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기 때문. 구단 홍보팀 직원에 따르면 70이닝 가량 던졌을 때 이 약속을 한 박종훈은 “170이닝을 목표로 100이닝을 더 던져 1000만 원을 채우고 싶다”고 욕심을 보이기도 했다.
목표는 소박하다. 전반기 11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앞으로 2경기 가량 더 나설 전망. “선발진에서 나만 잘 던지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던졌다”는 그는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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