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주현희 기자] 미소 지을 수 없는 프로야구 전반기였다. 각종 악재가 잇따르며 10년 만에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 가운데 치러진 올스타전의 관중석도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그럼에도 팬들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19,20일 양 일간 창원NC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 올스타전은 시작 전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태풍 다나스가 북상하며 경남권이 비의 영향을 받게 된 것. 19일 퓨처스 올스타전은 이틀간 미뤄진 뒤 결국 취소됐고 KBO(1군) 올스타전은 하루 연기 개최됐다.
◆ 흥행 내리막 프로야구, 하늘도 무심했던 올스타전
2007년 이후로 10년여 간 흥행 그래프는 오르막을 그리며 어느덧 800만 관중시대를 열었지만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엔트리 논란 이후 야구 팬들의 관심이 몰라보게 싸늘해 졌다.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다가 올 시즌은 초반부터 강팀과 약팀의 경계가 뚜렷해 순위 판도가 예상 가능하게끔 갈렸다. 아직 40여 경기씩을 더 남겨두고 있지만 5강 진출팀을 예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다.
이로 인해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발길이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막판 관중 감소의 영향을 아시안게임으로 인해 휴식기에서 찾은 KBO지만 올 시즌에도 각종 변수들로 인해 관중의 열기를 회복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프로야구 최대 축제 중 하나인 올스타전을 앞두고는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수도권 등 먼 곳에서 경기장을 찾으려던 관중들의 환불 행렬이 이어져 하루 만에 4000표 가량의 취소표가 나왔다.
◆ 만족도는 최상, 잘 준비했고 잘 뛰었다
하지만 그만큼 현장 구매를 통해 경기를 지켜본 팬들도 적지 않았고 1만4268명의 관중이 자리를 메웠는데, 생각보다 빈자리가 눈에 크게 드러나진 않을 정도였다.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티켓 구매를 위해 현장을 찾은 팬들 덕분이었다.
더 중요한 건 팬들의 만족도였다. 힘들게 방문했지만 경기 내내 관중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고 경기장을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올스타전 개최를 앞두고는 행사에 대한 무용론이 일기도 했다. 팬들의 선택을 받은 선수들이 정작 어슬렁거리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의식했기 때문인지 선수들은 더욱 힘을 내 뛰었다. 여느 시즌 경기 못지 않았다. 경기 내용도 치열했다. 드림 한동민(SK 와이번스), 나눔 김현수(LG 트윈스)를 중심으로 한 화끈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경기는 9회초 한동민의 결승타로 드림의 9-7 짜릿한 역전승으로 마무리됐다.
KBO의 준비도 박수를 보낼만 했다. 기존의 홈런레이스, 퍼펙트피처 등에 더해 선수들과 가족 팬이 함께 호흡하는 장애물 경주인 슈퍼레이스를 신설했는데, 재미는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올스타전의 참 가치를 살렸다.
퍼포먼스상을 신설한 것 또한 ‘신의 한 수’였다. ‘맥아더 장군’, ‘홈런공장장’, ‘동미니칸’으로 변신한 제이미 로맥과 최정, 한동민 등 SK 선수들을 중심으로 창원NC파크에 ‘이학주 신드롬’을 일으킨 ‘교주’ 이학주(삼성 라이온즈)와 마스코트 탈을 쓰고 팬들을 즐겁게 한 박민우(NC 다이노스) 등의 존재감도 퍼포먼스상 마련에 따른 효과라고 볼 수 있었다.
재정적 지원이 열악한 소방관들을 돕기 위한 'B119 캠페인‘을 홍보한 것도 의미 깊었다. KBO리그는 후반기 관중 1명당 119원씩 계산해 소방관들의 장비 등 지원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는데, 이날 경남 지역 소방관들을 초청해 뜻깊은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젊은 부부는 “아쉬운 걸 꼽을 게 없을 정도로 재미 있게 경기를 봤다”며 “선수들도 모두 열심히 뛰어줬고 끝까지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봤다”고 밝혔다.
대전에서 방문했다는 가족 팬은 “최정, 로맥 등 퍼포먼스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정말 재미 있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 2% 부족했던 준비 과정, 800만 관중 유지 위해서 새겨야 할 ‘팬퍼스트’
모든 게 완벽할 순 없었다. 예상치 못한 태풍이 괴롭힌 건 KBO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 대처가 다소 아쉬웠다.
많은 비가 몰아친 19일 퓨처스 올스타전을 우천순연 한 KBO는 오히려 태풍의 영향을 더욱 심하게 받은 20일 경기를 앞두고 개시 3시간 전인 오후 3시경 취소를 결정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KBO엔 플레이볼 3시간 전부터 경기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팬들을 운운하며 ‘팬 퍼스트’를 강조하는 KBO의 입장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장거리 원정 팬들이 많지 않은 정규시즌과 달리 올스타전은 10개 구단 팬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행사다. 서울에선 KTX로 3시간, 고속버스로는 4시간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창원NC파크다. 조금 더 팬들의 입장을 생각했다면 굳이 3시간 규정에 얽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팬들이 20일 경기 진행 여부를 알 수 없어 창원행 교통편에 몸을 실었다. 과천에서 내려왔다는 LG 팬은 “내려오다보니 경기가 취소됐다고 하더라”며 “예상치 못하게 숙소까지 잡아 하루를 묵고 경기장을 찾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문제는 또 하나 있었다. 경기가 하루 미뤄져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진행됐다는 점. 장거리 응원을 온 팬들은 다음날 출근 등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티켓을 취소한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팬들은 창원으로 향했다.
경기에 대한 만족도는 컸지만 경기 후 불꽃놀이와 시상식 등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귀가를 서둘러야 했다. 모든 행사의 마무리를 지켜본 뒤 발길을 옮긴 관중들 중엔 마땅한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피곤한 얼굴로 다음날 새벽 1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 팬들도 보였다.
‘팬 퍼스트’ 정신으로 팬들의 입장을 먼저 고려했다면 연기 개최된 21일경기는 전날과 같은 오후 6시가 아닌 1시간이라도 앞당겨 진행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었지만 이러한 세심함이 부족했다. 귀경을 앞둔 한 팬은 “경기가 미뤄지며 내일은 뜻하지 않게 하루 휴가를 냈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팬들이 적지 않았을 터.
본 행사는 팬들의 기대와 달리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TV로 중계를 본 야구 팬들도 근래 들어 가장 재밌었던 올스타전이라는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주춤하고 있는 흥행 열기 부흥을 위해 ‘팬 퍼스트’를 강조하고 있는 KBO라면 보다 더 세심한 행정으로 팬들을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충분히 성공적이었지만 만점을 주기엔 다소 아쉬운 점이 보였던 KBO 올스타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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