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한국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이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중국을 격파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진출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이문규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14일(한국시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프리-퀄리파잉(Pre-Qualifying) 토너먼트 중국과 첫 경기에서 81-80으로 이겼다.
한국과 중국, 뉴질랜드, 필리핀이 참가한 이 대회에선 상위 두 팀이 최종예선 출전권을 얻는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WKBL)가 예년보다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올림픽 티켓마저 따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 18위 한국 여자농구가 중국(8위)을 물리친 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 70-64 승리 이후 5년 만이다. 2015, 2017, 2019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중국과 만났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남북 단일팀으로 나섰던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도 중국에 졌다.
한국은 이어지는 경기일정에서 객관적 전력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필리핀(50위)과 16일, 뉴질랜드(35위)와 17일 격돌한다. 1승만 보태면 상위 2개 팀에 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5년 전 아시안게임 승리 당시에는 중국이 같은 기간 열린 세계선수권에 1진을 파견했고, 아시안게임에는 2진을 내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승리 의미가 더 값지다. 더구나 한국은 지난 9월 아시아컵 준결승에서 중국에 52-80 대패를 당했다. 시원한 설욕에 선수들도 이문규 감독도 고무됐다.
한국은 중국을 맞아 경기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았다. 전반을 48-41로 리드한 한국은 3쿼터에 3점을 더 벌려 10점 앞선 채 4쿼터에 돌입했다.
그러나 4쿼터 시작 후 2분도 되지 않아 순식간에 7실점해 접전이 펼쳐졌다. 경기 종료 2분 50초를 남기고 중국 양리웨이에게 가로채기에 이은 속공을 내줘 결국 77-77 동점이 됐다.
한국은 종료 1분 54초를 남기고 김단비(신한은행)가 자유투 2개를 얻었지만 하나도 넣지 못했다. 오히려 종료 1분 전 리멍에게 3점슛을 허용해 77-80으로 역전 당했다.
하지만 한국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김정은(우리은행)이 과감한 골밑 돌파로 따라붙은 뒤 김한별(삼성생명)이 스틸한 공을 박혜진(우리은행)이 다시 한 번 골밑 돌파로 연결하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23.4초를 남긴 중국의 마지막 공격 때 김한별이 또 다시 스틸하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센터 박지수(KB스타즈)가 23점 8리바운드, 김정은이 21점 4어시스트로 활약했다.
대표팀은 당초 뉴질랜드와 최종전에 포커스를 맞췄다. 필리핀과 뉴질랜드를 확실히 잡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날 생각보다 선수들이 잘해주자 이문규 감독도 승부를 걸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KBA)에 따르면 이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상황에 따라 전력질주를 할 생각도 있었는데, 워낙 우리 선수들이 잘해주다 보니 오늘은 이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된 게 승인”이라고 밝혔다.
이어 “뉴질랜드전을 목표로 이곳에 왔다. 다행히 중국을 이겼기 때문에 다음 경기도 모두 이기고 가도록 하겠다”며 3연승으로 대회를 마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김정은 역시 “인천에서 마지막으로 이겼을 때는 선배들도 있었고, 중국도 1.5군이었는데 5년 만에 제대로 된 경기에서 이긴 것 같다”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팬들이 한국 여자농구 수준이 떨어졌다거나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는데, 여자농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보답하는 경기가 아니었나 싶어 가장 좋다”고 했다.
여자농구는 지난 시즌 저조한 득점력에 ‘프로’ 이름에 걸맞은 경기력이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시즌 청주 KB스타즈가 아산 우리은행의 독주를 깬 것은 물론 개막에 앞서 부산 BNK가 창단하는 등 다양한 이슈로 올 시즌 예년보다 인기몰이 중인 시점이다. 베테랑 김정은은 여자농구의 부흥을 위해서도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낼 필요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2008년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나갔었다. 사석에서 (박)지수에게 다시 한 번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동기인 (염)윤아도 있고, (김)단비나 (배)혜윤이도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같이 해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잘 도와주고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올림픽 출전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아울러 “아직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리의 기분은 오늘까지다. 모든 선수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것 같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자농구의 인기를 살리는 길은 국제무대에서 성적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에 다시 나가는데 일조하고 싶다. 필리핀, 뉴질랜드전도 준비해야한다. 심기일전할 것”이라는 말로 결연한 각오를 다졌다.
지난 시즌 WKBL 통합 최우수선수상(MVP)의 주인공 박지수도 시상식에서 “여자농구 인기가 살아나려면 대표팀 성적이 중요하다. 팀에서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잘해서 여자농구의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낸 바 있다.
중국전 승리로 첫 단추를 잘 꿴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이번 대회를 무사히 통과해 내년 2월 최종예선에서 12년만의 올림픽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선수단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위기의식과 간절함이 목표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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