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남자배구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의정부 KB손해보험에는 케이타뿐만 아니라 주장 김홍정(36)과 제2 공격수 김정호(25)도 있다. V리그 13개 팀을 통틀어 가장 확실한 외국인선수를 보유했지만 그것만으로 KB손보의 사상 첫 정규리그 준우승 및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KB손보는 3일 경기도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프로배구 도드람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PO) 단판승부 홈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3-25 25-17 25-19 25-15) 역전승을 거뒀다.
정규리그에서 마지막까지 인천 대한항공과 우승을 다툰 2위 KB손보은 지난달 30일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이후 사흘간 휴식했다. 4위로 봄 배구 무대에 올라 이틀 전 준PO를 치른 탓에 지친 한국전력을 무난하게 제압했다.
케이타의 난조 속에 1세트를 내줬지만 2세트부터 반격했다. 미들 블로커(센터) 김홍정과 윙 스파이커(레프트) 김정호가 경기 분위기를 바꾸면서 케이타를 도왔다.
1세트 양희준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고 원업존에서 대기한 김홍정은 2세트부터 들어와 승부처마다 블로킹을 잡아냈다. KB손보를 상징하는 노랑과 검정색이 적절히 섞인 신발을 착용한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디그와 블로킹 후 화려한 세리머니로 팀 분위기를 북돋웠다.
후인정 KB손보 감독은 경기 후 "교체 투입된 김홍정이 주장으로서 제 몫을 알고 잘해준 덕에 우리 페이스로 만들고 승리할 수 있었다"며 "미팅 때 '신영석(한국전력)이 전위로 올라오면 공이 2개 이상은 올라갈 테니 잘 대비하자'고 주문했는데, 잘 맞아들어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홍정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단판 승부는 분위기 싸움이고 모두가 다 미쳐야 한다"면서 "무게를 잡기보다 내가 먼저 나서 미치겠다"고 강조했는데, 팀 기세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경기 후 만난 김홍정은 "이번 시즌 블로킹이 잘 안 돼서 많이 힘들었다.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준비했다. 1세트 때 밖에서 보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처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세트에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좀 더 미친 척하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녔는데, 후배들이 같이 따라와줘서 모두 미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2009~2010시즌 수련선수로 당대 최강 대전 삼성화재에서 데뷔한 그는 챔프전을 경험한 바 있지만 주역은 아니었다. 러시앤캐시(현 OK금융그룹)을 거친 그는 이번에 KB손보에서 주축으로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릴 기회를 맞았다.
김홍정은 "다른 건 없다. 내가 언제까지 배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한다. 후회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 '그때 잘할 걸'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싶다. 챔프전이라고 특별히 다른 건 없다. 똑같이 미친 척하면서 뛰어다니고, 즐겁게 우리끼리 배구 하다보면 좋은 경기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호는 케이타의 공격부담을 덜어줬다. 15점을 냈다. 공격성공률(44.44%)은 평소보다 낮았지만 특히 4세트 3연속 에이스를 기록하는 등 서브로 6점을 올렸다.
현장에서 경기를 중계한 김상우 KBSN스포츠 배구 해설위원은 "김정호가 보이기 시작하니까 팀이 분위기를 내누지 않는다"고 했고, 김준형 캐스터는 "김정호가 작게 보이는 게 아니고, 크게 보인다"고 치켜세웠다.
김학민 KB손보 코치는 경기 앞서 "김정호가 15점 정도 내주면 경기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그 바람대로 맹활약했다. 후인정 감독은 "(김)정호는 우리 팀에서 케이타와 대각에서 공격을 맡아줘야 한다. 사실 오늘 정호 공격이 좋지는 않았다. 교체하려던 중 서브가 좋아 끝까지 믿고 뛰게 했다. 서브에서 잘해줘 손쉽게 경기를 가져온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김정호는 올 시즌 부상 등으로 지난 시즌(481점, 공격성공률 54.73%)보다 다소 수치가 저조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팀 제2 공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53.26%의 높은 성공률로 271점을 쌓았다. 김홍정 역시 시즌 중반 부상 당한 새 신인 양희준에게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코트 안팎에서 팀 중심을 잡아줬다. 그리고 큰 경기에서 관록 있는 플레이로 팀을 지탱했다.
둘의 활약은 케이타를 일깨웠다. 케이타는 "경기 시작하면서 흥분된 상태였고,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2세트부터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팀원들이 열심히 뛰어주는 만큼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2세트부터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건 김정호의 서브에이스 덕이다. 팀원들의 우승 열망을 깊게 느낀 이후 정신을 차렸다. 내게 공을 올려달라고 했다. 이후 몸이 풀리면서 좋은 경기를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2017~2018시즌 삼성화재에서 데뷔해 2018~2019시즌부터 KB손보에서 뛴 김정호 역시 챔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케이타와 함께한 지난 2년간 연일 새 역사를 쓰고 있는 KB손보에선 김홍정과 김정호가 지닌 힘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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