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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4) 차세대 '롤러 퀸' 유가람, 스무살 질주본능 누가 막을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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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4) 차세대 '롤러 퀸' 유가람, 스무살 질주본능 누가 막을쏘냐?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5.28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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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니어무대 휩쓴 신예, 성인무대에서 롤러스케이팅 장거리 전설 우효숙과 맞대결

[300자 Tip!] 한국 롤러스케이팅은 201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4관왕에 빛나는 우효숙(29·안동시청)이 오랜 시간 간판 자리를 지켜왔다. 당분간 장거리에서 그를 넘을 선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효숙이 빙상 스피드스케이팅에도 도전하는 사이 장거리 롤러스케이팅의 계보를 이을 신예가 무섭게 성장해 주목받고 있다. 올해로 실업 3년차를 맞은 유가람(20·안양시청)은 국내를 비롯해 세계주니어대회를 휩쓸며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실업 무대에서도 각종 대회 우승을 거머쥐며 차세대 ‘롤러 퀸’으로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시니어 무대마저 정복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유가람은 “순발력만 보완한다면 보다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인천=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이상민 기자] 올해로 실업 3년차인 유가람은 일찌감치 주니어 무대를 정복한 뒤 시니어 대회에서도 존재감을 빛냈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여자 일반부 EP 1만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이 종목 2연패를 달성했다. 지난 4월 전국남녀종별대회 여자 일반부 E 1만5000m에선 6년 만에 대회신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했다.

유가람의 돌풍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4일 전북 남원에서 열린 코리아오픈롤러대회 여대 일반부에서 3관왕에 오른 것. E 1만5000m와 E 2만m, P 1만m를 모두 휩쓸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폭발적인 스피드는 없지만 꾸준한 레이스로 포인트를 얻으며 정상에 올랐다.

▲ 유가람이 인천 동춘인라인롤러경기장에서 힘차게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날 훈련에서 유가람은 1만m 레이스를 소화했다.

각 종목에 따라 전략을 달리 세운 게 주효했다. E(제외)는 등수가 처지는 선수부터 제외되는 경기로, 횟수 심판이 한 바퀴 전에 종을 치며 알려준 뒤 다음 바퀴에 제외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가람은 “E경기에서는 뒤에 있으면 제외당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앞에서 레이스를 주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P(포인트)경기에선 다른 선수들이 언제 포인트를 획득하는지 일일이 알 수 없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 포인트를 쌓으려 노력했다. 포인트 경기는 200m 트랙일 경우 남녀 포인트 5000m 경기에서 3바퀴부터 2바퀴마다 점수가 주어진다. EP(제외+포인트)경기는 제외 경기와 포인트 경기의 방식을 함께 한다.

다양한 종목만큼이나 많은 작전이 요구된다. 유가람은 “장거리 레이스에서는 머리를 쓸 줄 알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스피드가 필요하고 지구력도 뛰어나야 우승권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실업팀의 사뭇 다른 공기와 로컬룰

유가람이 롤러스케이트를 처음 탄 건 안양 부림초등학교 4학년 때다. 친구를 따라 롤러를 시작한 유가람은 스케이트를 타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결국 선수의 길에 들어선 뒤 안양 귀인중과 안양 동안고를 거치면서 수많은 주니어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수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2009년 3관왕에 오른 유가람은 2년 뒤 금메달 2개, 2012년 은메달 3개 및 동메달 2개, 2013년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 지난해 금메달과 은메달 1개씩을 따냈다.

하지만 유가람은 2013년 안양시청에 입단한 뒤 잠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언니들과 레이스를 펼치기 버거웠기 때문이다. 학생 신분으로 나서는 대회와 실업무대는 확연히 달랐다.

유가람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실업팀에 들어오고 나서는 언니들이 워낙 쟁쟁해 운동을 소홀히 했을 때 성적이 떨어지더라”며 “그래서 학생 때보다 메달을 따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크다. 경기보다 심적인 부담감을 떨쳐내는 게 우선이다”고 말했다.

▲ 중, 고교시절 레이스와 실업 무대에서 선배들과 겨루는 경기는 큰 차이가 있었다. 유가람(왼쪽 두번째)은 로컬룰의 장벽으로 몸싸움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다.

“언니들의 기가 워낙 세기 때문에 한 번 크게 혼나면 위축됐어요. 그게 경기까지 이어지더라고요. 또 한국에서는 국제대회와는 다르게 몸싸움이 허용되지 않고 손을 쓰거나 밀어서도 안 됩니다. 예의가 중시되는 문화 때문인 것 같아요. 반면에 세계대회에서는 어느 정도 몸싸움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로컬룰이 몸싸움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변경돼 경기하는 데 애를 먹는다는 유가람이다. 지금이라도 국제롤러경기연맹의 룰을 도입해 몸싸움을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전설 넘어 '장거리 퀸'이 되기 위한 조건

3년간 많은 대회를 치르며 실업 무대에 연착륙한 유가람은 여자 장거리의 1인자 우효숙과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그 무대는 다음달 11일부터 13일까지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2015년 롤러스케이팅 스피드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유가람이 실업팀 막내였을 때 우효숙은 스피드스케이팅 도전에 나섰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만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유가람에게 우효숙의 레이스는 경이로움 그 자체로 남아 있다.

“남자 선수라고 생각될 정도로 체력이 대단했어요. 평소에 정말 노력을 많이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레이스를 펼칠 때 보면 항상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시거든요. 체력 소모가 클 법도 한데 어떻게 버텨내시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2012년부터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스피드스케이팅에 도전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플레잉 코치 겸 선수로서 청주시청으로 돌아온 우효숙은 올해 1월 안동시청으로 새둥지를 틀었다. 우효숙은 사전경기로 열린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1만5000m 제외경기 7연패를 달성하고 스피드 EP 1만m에서 4위를 차지하는 등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다.

유가람 입장에선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셈이다. 유가람은 “워낙 잘 타셨기 때문에 ‘왜 복귀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가람을 지도하는 박성일(48) 안양시청 감독은 제자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유가람은 “조금 부담되기도 하지만 감독님께서는 ‘넌 잘 할 거다. 할 수 있다’는 말로 용기를 주신다”고 말했다.

▲ 전설을 넘어 롤러 퀸이 되겠다는 각오다. 유가람이 우효숙과 맞대결을 앞두고 선전을 다짐했다.

그렇다면 우효숙이라는 큰 벽을 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유가람은 자신감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아직까진 스케이트를 타면서 즐기고 싶은데 ‘넌 꼭 1등해야 해’라는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되고 외려 자신감이 떨어진다”며 “자신감을 찾는 게 가장 큰 과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성일 감독은 “근력과 순발력, 민첩성, 조정력, 지구력이 운동의 5대 요소인데 가람이는 순발력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다. 끊임없는 훈련으로 보완하고 있으니 좋아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않는 장점 살리겠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는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지만 다른 방면에서 장점으로 작용할만한 부분이 있다.

우선 유가람을 지도하고 있는 코칭스태프가 그의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다. 안양이 고향인 유가람은 초·중·고교시절을 안양에서 보내며 지도자들로부터 꾸준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특히 박성일 감독은 안양시 소재의 모든 팀들을 총괄하는 총감독이자 안양시청 소속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유가람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우효숙이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을 달성했던 당시 국가대표 코치였던 박성일 감독은 “당시 효숙이도 뛰어난 근지구력에 비해 순발력과 스피드가 부족해 이를 전술로서 깨는 걸 구상했다”며 “앞으로 가람이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유가람이 선두로 나서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다. 단거리와는 다르게 장거리 경기는 치밀한 작전과 두뇌싸움이 요구된다.

유가람은 “무슨 일을 하든 포기하지 않는 게 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스케이트를 탄다”며 “내가 한 번 더 가면 1등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레이스를 펼친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신력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설 우효숙과 시니어 무대 첫 맞대결이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유가람이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려 다시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우효숙을 제압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취재후기]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 채택되지 않으면서 롤러스케이팅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볼 수 없는 종목이 됐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아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종목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오히려 2010년 광저우 대회를 끝으로 폐지됐다. 유가람은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서 제외된 이유를 모르겠다. 롤러스케이팅의 인기가 없기 때문인 것일까”라며 고개를 떨궜다. 롤러스케이팅이 되도록 빨리 올림픽,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국위선양을 하는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고글과 헬멧을 벗으니 영락없는 스무살 소녀다. 보통 사람들이 평범하게 갖고 있을법한 학창시절의 추억이 없는 유가람은 각종 주니어 대회를 휩쓸며 운동에 매진한 보상을 받았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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