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엄마가 뿔났다' 이후 16년 만에 KBS 스튜디오를 찾은 이순재는 건강 이상설이 무색할 만큼 정정한 얼굴이었다. 그뿐이랴 우려 어린 시선에 보란듯 무대와 안방 두 보금자리를 주연의 책임감으로 채우고 새로운 도전장까지 내밀었다. 모두가 입 모아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선배이자 스승 이순재. 이제 그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걸고 시청자와 만나려 한다.
KBS2 새 수목드라마 '개소리'(연출 김유진, 극본 변숙경)가 24일 오후 온라인 제작발표회를 진행했다. '개소리'는 활약 만점 시니어들과 경찰견 출신 소피가 그리는 유쾌하고 발칙한 노년 성장기를 담은 시츄에이션 코미디 드라마. 시니어 배우 5인방 이순재, 김용건, 예수정, 임채무, 송옥숙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주요 배역의 이름. 이순재, 김용건, 예수정, 임채무, 송옥숙 다섯 배우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배역을 연기한다. 특히 이순재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는 설정까지 겹친다. 극중 이순재는 드라마 갑질 사건에 휘말려 거제도로 도망치고 그곳에서 동네 개 소피를 만난다. 이어 소피의 '개소리'를 알아듣기 시작하고 여전한 경찰견의 촉을 지닌 소피와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친다.
이순재는 작품의 신선한 소재를 꼽으며 "그동안 드라마가 뜸했다. 그러던 차에 드라마 제안이 들어와서 두 말 없이 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김용건은 물론 예수정, 임채무, 송옥숙, 박성웅, 연우 등이 입 모아 이순재를 향한 존경을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1935년생, 올해로 89세인 이순재는 1950년대 무대와 안방극장을 시작으로 2020년대에도 우직하게 무대, 안방,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많은 배우들의 귀감이 된 배우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해 드라마 175편, 영화 150편, 연극 100편 가량에 출연했다. 정극, 시트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홀로 채운 연기 경력만 70년에 이르니 한국 배우의 역사 그 자체라 부를만 하다. 신구, 박근형 등과 더불어 무대에 꾸준히 올라 한국 연극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기도.
올해 78세, 연기 경력 60년. 다른 이에게 존경을 받아 마땅한 김용건도 당연하게 이순재를 향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했다. 김용건은 '개소리'를 함께하며 바라본 이순재의 모습을 통해 재무장했다고. 그는 촬영 후반에 찾아온 이순재의 건강 악화를 언급하며 "저희뿐만 아니라 감독, 스태프들 모두가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극복하셨다. (노안으로 인해) 대본이 안 보이면 큰 종이에 쓰기도 했다. 대사를 외우려는 완고한 모습이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도 방대한 대본을 외우는 열정을 자랑하고 있다. 배우 두 명과 함께 90분을 가득 채우며 관객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지난 5월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연극을 선보이고 "배우의 생명은 암기력이다. 대본을 완벽하게 외워야 제대로된 연기를 할 수 있다. 대사에 혼을 담으려면 외워야 한다. 대사를 외울 자신이 없으면 관두는 게 원칙"이라는 소신을 밝혀 현장에 자리한 배우들을 울렸다.
그 소신은 '개소리'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도 굳건했다. 이순재는 "대본은 다 외워야 한다. 대사를 제대로 못 외우는 건 배우가 아니다. 암기의 편차가 있더라도 당연히 다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재의 아들 이기동으로 분한 박성웅은 이순재와 함께한 시간이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이순재는 10번의 리허설에도 대사 NG가 없었다는 후문. 박성웅은 "80세가 넘으신 나이에도 현장에서 그 정도의 열정을 갖고 계신 걸 보고 저는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유쾌하고 좋은 교훈이 있는 현장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순재는 백상예술대상 무대에서 "연기에는 완성이 없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달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보다 젊은 배우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열정, 이순재의 원동력으로 가득 찬 '개소리'가 어떤 작품일지 기대된다. '개소리'는 오는 25일 오후 9시 50분 KBS2에서 첫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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