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무파사: 라이온 킹'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무파사가 돌아왔다. 둘도 없는 형제'였던' 타카(스카)와 함께.
동물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초원에 새 생명이 찾아온다. '라이온 킹' 심바와 닐라의 두 번째 사랑의 결실이자 키아라의 동생. 닐라는 사자의 습성에 따라 아이를 낳기 위해 밀림으로 향하고 심바도 그 뒤를 따른다. 홀로 남겨진 키아라는 티몬과 품바의 손에 맡겨진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불안감만으로 키아라의 표정이 어두워지는데 설상가상 폭풍우까지 몰아친다. 그때 초원의 현자 라피키가 지팡이를 짚으며 나타난다. 라피키는 키아라에게 심바가 아버지 무파사와 함께 폭풍우를 몰아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어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를 꺼낸다. 이것이 '무파사: 라이온 킹'(감독 배리 젠킨스)의 시작이다.
초원과 대비되는 끔찍한 가뭄, 희망이랄 것 하나 없는 척박한 땅. 무파사는 이곳의 유일한 아기 사자다. 마른 땅처럼 퍽퍽한 삶이지만 부모의 꿈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이들은 언제나 희망을 놓지 않는다. 석양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초원 '밀레레'에 도달할 것이라 믿기에. 그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고, 가뭄의 끝을 알리는 단비가 내린다. 계곡으로 향한 무파사는 조금씩 고여가는 물 위에서 뛰어논다. 동물들은 평화롭게 목마름을 해소한다. 그러나 비극은 순식간에 찾아오기 마련. 계곡의 물이 빠르게 불어나면서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무파사가 위험에 빠진다. 부모가 다급히 물속으로 뛰어들어 보지만 댐이 무너지면서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다.
나무 조각 하나에 몸을 의지한 무파사는 낯선 초원에 당도하고, 자신과 같은 아기 사자 타카를 만난다. 평소 형제를 원했던 타카는 떠돌이를 거부하는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며 무파사가 무리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돕는다. 우애를 다지며 청년으로 성장한 무파사와 타카. 무파사는 자신을 구해준 타카에게 헌신하고자 다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난폭한 하얀 사자 무리에게 습격을 받는다. 게으른 왕은 하얀 사자의 우두머리 키로스에게 단숨에 제압되고, 무파사는 왕족의 혈통을 이어야 하는 타카와 밀레레로 도망친다. 키로스를 피해 얼마나 달렸을까. 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하얀 사자들의 발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습격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사자 공주 사라비와 그의 호위무사인 코뿔새 자주. 사라비는 자신과 자주도 밀레레에 데려갈 것을 요구한다.
2019년 개봉해 474만 관객을 동원한 실사 영화 '라이온 킹'에 이어 5년 만에 공개된 후속편은 전작의 가장 큰 아쉬움이었던 동물들의 표정을 개선해 한층 더 다채로운 감정 표현을 보여준다. 동물 털 묘사는 더욱 섬세해져 클로즈업도 끄떡없고 눈이 달라붙어 뭉친 털의 표현까지 사실적이다. 전작을 오마주한 장면들은 '라이온 킹' 팬들을 반긴다.
디즈니 레전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의 후속 애니메이션이 심바와 키아라의 후일담, 티몬과 품바의 시선을 그렸다면 실사 영화 '무파사'는 심바가 태어나기 전, 무파사와 스카의 어릴 적 이야기를 담는다. 무파사-스카 대결 구도에 상상을 더해 최초의 만남과 갈등의 시작점, 관계의 마침표를 차례대로 펼친다. 서로를 형제라 부르던 이들이 어떤 이유로 대척점에 섰는지, 스카의 흉터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무파사'가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새롭지 않다. 우애 대신 연애를 택하고 서로를 배신하는 전개가 평이하게 흘러간다. 내부 갈등은 스카의 질투를 통해서만 성립돼야 한다는 듯, 캐릭터 간의 대립이 말 한마디로 손쉽게 해결되고 갈등이 심화되려는 순간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개입한다. 살아온 배경과 가치관이 다른 떠돌이들이 뭉쳐 긴 여정을 떠나는데 이들을 와해하는 갈등은 '암수의 사랑'이 전부다. 메시지를 위해 선택한 것이 이토록 열렬한 정상성이라니, 이주민이 모인 공동체임에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이방인을 몰아내는 밀레레보다 이곳이 더 낙원에 부합하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또 어떠한가. 메타포가 흘러넘쳐 우화를 넘어 일종의 그리스 신화나 성경처럼 느껴진다. 아프로디테와 헤파이스토스, 아레스의 삼각관계는 명화와 조각상, 수많은 재해석을 남겼지만 2024년의 '무파사'는 과연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야기로써나 우화로써나 물음표만 남은 '무파사'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아우르는 메시지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게으른 통치자와 폭군, 능력없는 후계자가 어떤 참사를 몰고 오는지 똑똑히 새긴다. 지난한 역사가 눈앞에 그려지고 현재진행형인 얼굴들도 스쳐지나간다.
극 말미 물소 한 마리가 무파사를 향해 "사자 한 마리의 운명이 밀레레의 운명을 바꿀 수 없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사자 한 마리의 외침은 초원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밀레레 모두의 외침은 사자 한 마리의 운명, 더 나아가 초원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청소년, 한 명의 여성, 한 명의 장애인, 한 명의 노동자, 한 명의 국민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모두가 있다면 세상은 바뀐다. 그 어느때보다 연대의 힘이 필요한 한국의 오늘, 가장 눈에 밟히는 대사다.
또 다른 관건은 물이다. 앞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바타: 물의 길'(2022) 연출 당시 CG로 물을 표현하며 많은 고충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아바타2' 개봉 후 2년이 지난 2024년, 기술은 진일보했을까? 영화는 무파사를 수차례 물에 담궜다 빼면서 빗방울, 홍수, 폭포, 강물, 지하수 등 다양한 물의 형태, 속도에 도전한다. 하지만 유동성 문제는 여전하다. 영화 속 물은 점성을 띤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에서는 프레임이 깨지기도 한다. 덧붙여 음악은 'Circle of Life'(서클 오브 라이프)가 지탱하고 엘튼 존과 한스 짐머가 참여해 웅장함을 살린 전작과 달리 머릿속을 맴도는 멜로디가 전무하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했던가. 동물 묘사를 얻고 내어준 댓가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무파사'는 전국 영화관에서 절찬상영 중이다. 러닝타임 118분. 전체 관람가. 쿠키영상 없음.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