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스포츠Q(큐) 글 신희재·사진 손힘찬 기자] “은퇴할 때 프로필에 한국 대표팀 최연소(25세) 월드컵 주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월드컵에 나가는 국가대표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데, 당시에는 경험이 없고 부족해서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 부족함 때문에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와 지금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제주SK 구자철(36)의 말이다. 제주의 자랑이자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던 구자철이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커리어 제2막을 연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인터뷰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아픔이었다.
14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구자철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 위촉식. 구자철은 행사의 주인공으로 단상에 올랐다.
2007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한 구자철은 국내에서는 제주 유니폼만 입고 통산 116경기 9골 21도움을 올렸다. 프로 커리어의 시작 4년과 마무리 3년을 모두 제주에서 보냈다. 은퇴 후에도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구단과 함께한다.
구자철은 “수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했고 준비해 왔다. 단지 축구화를 신고 뛰는 데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 내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리자는 생각이 확고했다”며 “나를 키워주고 낳아준, 항상 마음이 가는 구단에서 직책을 제안했다. 서두르지 않되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목표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은퇴 기자회견의 화두는 단연 국가대표팀 시절 이야기였다. A매치 통산 76경기 19골, 연령별 합산 108경기 29골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달고 수많은 명장면을 연출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단상에 올라갈 때”라 할 정도로 붉은 유니폼을 입었을 때 자긍심이 높았던 구자철이다.
구자철은 U-20 월드컵,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올림픽,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할 만큼 메이저 이벤트에 강했다. 2011년 한일전 삿포로 참사(0-3 패)의 아픔을 간직하고 “다음 한일전을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품었을 정도로 정신력 또한 남달랐다. 2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박지성 이후 대표팀을 이끌 주장으로 선임된 배경이다.
런던 올림픽 한일전, 대표팀 시절 베스트 골 톱3 등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던 구자철은 ‘아쉬웠던 순간’을 묻자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을 꼽았다. 11년 전 대표팀은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런던 세대'를 앞세워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에 도전했다. 그러나 러시아(1-1), 알제리(2-4), 벨기에(0-1) 상대로 1무 2패에 그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귀국길에서 팬들이 선수단에 호박엿을 투척하고, 홍명보 감독이 불명예스럽게 사퇴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구자철은 “그때 내가 너무 어렸다. 돌이켜보면 책임감이 부족했다. 월드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덕을 봐야 했던 분들에게 죄송했다”며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는 비단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꿈과 희망이 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 부분이 당시엔 부족했다”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선수 생활 막바지 발목과 무릎 부상으로 신음했던 구자철은 화려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행정가로 새출발에 나선다. 구자철은 “한국 축구 시장의 가능성은 굉장히 무한하다”며 “축구판에 어떻게 도움을 줄지 생각하면 설레서 잠을 못 잔다. 하고 싶은 것도, 해줄 수 있는 것도,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기성용(FC서울), 이청용(울산HD)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구자철은 이들과 함께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구자철은 “(유스 어드바이저로서) 급하게 뭔가를 바꿀 생각은 없다”며 “일단 올해는 옆에서 지켜본 뒤 조금씩 일이 늘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해보려 한다. 한국의 유소년 시스템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주 확고하다. 그 부분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매듭을 지을 때까지 최대한 현명하게 해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유소년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한 구자철은 “중학교 2학년 때 U-20 월드컵 출전이 목표였다. 백지훈, 박주영, 김진규 형이 공항에서 대회 전 인터뷰한 게 머릿속에 남았다.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었다”며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목표가 없으면 동기부여와 행동에서 차이가 생긴다. (유망주들이) 명확하게 자신의 꿈을 그려보길 바란다. 내가 한국 축구의 모든 걸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제주에서 어떻게든 좋은 유망주를 발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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