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2-22 23:54 (일)
[챌린지 2015] (29) 왕조 부활 위한 '10년 삼성맨' 임도헌의 특별한 '진인사대천명'
상태바
[챌린지 2015] (29) 왕조 부활 위한 '10년 삼성맨' 임도헌의 특별한 '진인사대천명'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6.19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치용 단장 이어 2대 삼성화재 지휘봉 잡은 임도헌 감독, "투지 넘치는 플레이 선보일 터"

[200자 Tip!] 삼성화재 블루팡스 단장 겸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는 신치용(60) 전 감독은 지난 20년간 삼성화재를 국내 남자배구 최정상에 올려놨다. 그리고 현역 시절 ‘임꺽정’으로 이름을 날린 임도헌(43) 감독이 9년간 코치생활을 거쳐 지난달 2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의 패기에 밀려 V리그 8연속 정상 정복에 실패한 삼성화재. 신임 임도헌 감독은 잠시 멈춘 삼성화재의 ‘우승 본능’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의 로드맵이 무엇일까.

[용인=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이상민 기자]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열심히 한다면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지만 삼성화재의 두 번째 왕조를 이끌어갈 임도헌 감독의 목소리엔 빼앗긴 우승 트로피를 되찾겠다는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 임도헌 삼성화재 신임 감독이 삼성생명 휴먼센터 내 체육관에서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19시즌 가운데 16차례 정상을 맛본 명문이다. 나머지 세 차례도 준우승. 실업배구 시절엔 무려 77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이 팀의 지휘봉을 새로 잡는 이가 누구든 부담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임도헌 감독은 두려운 마음을 잠시 내려놨다. 대신 그동안 신치용 단장이 지켜온 팀 문화를 유지하면서 코치시절부터 다져온 자기만의 배구철학을 녹여낼 계획이다. 주전 공격수와 백업 세터가 군 입대로 빠져 있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려 다가오는 시즌을 잘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감독이 되고 나서 축하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부담 되겠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팀에 가든 감독 자리에선 부담감과 더불어 책임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감독은 감독답게, 선수는 선수답게'

2003년까지 현역 선수로 뛴 임도헌 감독은 은퇴 후 캐나다에서 1년간 지도자 수업을 한 뒤 2006년 삼성화재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9년 동안 신 단장을 보좌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무려 11년간 삼성화재의 라이벌팀 현대자동차서비스의 간판 공격수로 뛰었기 때문. 코치로 영입될 당시 삼성화재 내부에서 반대가 심했는데 신 단장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팀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자기관리를 잘하고 일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기로 유명한 신 단장은 임도헌 감독에게 “선수들이 가장 무섭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지도자가 조금만 나태해지면 선수들도 긴장을 풀어버린다는 것. 때문에 임 감독은 “코치를 시작했을 땐 정말 뭣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 임도헌 감독은 "사령탑 자리에서 부담감과 더불어 책임감,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임도헌 감독은 코트 안에서는 코칭스태프와 선수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눠져 있어야 한다고 봤다.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하고, 선수는 선수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임 감독은 “신치용 단장님은 워낙 부지런하시고 배구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신 분”이라며 “기본 원칙에 대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각자 자리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이에 임 감독 역시 코치 시절 훈련 중 선수들을 혹독하게 지도했다. 사령탑에 오르고 나서도 훈련시간 선수들에게 직접 스파이크를 때려주는 임 감독이다.

경북 경산 출신인 임도헌 감독은 훈련할 땐 말 그대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다. 선수들에게 할 말만 하고 묵묵히 훈련을 지도하는 데 집중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모 선수가 임 감독의 부인을 보고는 대뜸 “코치님과 어떻게 사세요?”라고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는 것. 그만큼 선수들에게 독사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임 감독의 실제 성격은 코트에서 그것과 달랐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시간이 나면 여행도 다니는 평범한 중년이었다. 불교 신자인 임 감독은 “한 번씩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때 절에 올라가 며칠간 지내기도 한다”고 웃었다.

▲ 코트에서 감독은 감독답게, 선수는 선수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게 임도헌 감독의 지론이다. 적어도 일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다고 강조하는 임 감독이다.

◆ 주전 공백, '맞춤형 전략'으로 메운다

9년간의 코치 생활을 거쳐 처음으로 지휘하는 임도헌 감독의 삼성화재는 어떤 배구를 펼칠까.

2014~2015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프전에서 패한 삼성화재는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V리그 9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임도헌호’가 야심차게 첫 발을 디뎠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다. 주전 라이트 박철우와 백업 세터 황동일이 군에 입대했고 센터 지태환도 입대 시기가 시즌 끝까지 연기되지 않을 경우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된다. FA(자유계약선수) 영입을 하지 못해 외부 수혈에 실패했다. 기본 전력이 지난 시즌만 못하다.

이에 임 감독은 상대 맞춤형 전략을 세웠다. 특정 팀에 강한 선수를 잘 파악해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봤다. 이는 감독의 판단력과 결단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감독이 되고 나서도 선수들에게 직접 스파이크를 때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을 치면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고 무언의 공감을 하기도 하지요. 수비하는 것을 보면 선수들의 특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전승불복과 신한불란, 겸병필승, 헌신이라는 문구가 체육관 한편에 걸려 있다. 임 감독은 여기에 '진인사대천명'을 추가로 강조했다.

◆ '진인사대천명' 수천 번 내리쓴 사연

임도헌 감독과 선수들이 우승의 꿈을 키우는 삼성화재 배구단 훈련장에는 곳곳에 승부욕을 키우는 문구가 적혀있다. 전승불복(戰勝不復·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과 신한불란(信汗不亂·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겸병필승(謙兵必勝·겸손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헌신(獻身)이다.

임 감독이 여기에 추가하고 싶은 글이 있다. 바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여기엔 특별한 사연이 숨어있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대거 빠진 2010~2011시즌. 삼성화재는 초반부터 꼴찌를 달리고 있었다.

임 감독은 “그땐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순간 ‘진심으로 모든 걸 바치면 하늘이 알아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그 이후로 노트에 ‘진인사대천명’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썼다. 그러다보니 설령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간절한 마음에 하늘이 감동했을까. 시즌 중반 이후로 무섭게 치고 올라간 삼성화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대한항공을 꺾고 극적으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임 감독은 이때 다짐하고 체험한 것을 배구 인생이 끝날 때까지 가져가려 한다.

◆ "팀 문화가 바르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배구에 집중하기 위해 이에 방해되는 것을 절제하는 문화는 신치용 단장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부터 삼성화재의 고유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임도헌 감독은 “지금도 자기 전에 휴대전화를 걷는다. 야식도 웬만하면 절제한다”고 기존 문화를 지키고 있음을 밝혔다.

임 감독은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로 통제하는 건 아니다”며 “휴대전화는 취침시간에만 걷지 평소에 심하게 통제하진 않는다. 야식도 팀에서 마련해 줄 때 한 번씩 먹는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런 문화가 있기에 팀이 정상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임 감독은 앞으로도 삼성화재만의 고유문화를 지켜갈 참이다.

▲ 임도헌 감독은 "신 단장님 때부터 지켜오고 있는 팀 문화를 잘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운동에 방해되는 것을 통제하는 만큼 배구에 집중했다. 신치용 감독 시절부터 선수들은 코트에서 치열하게 훈련을 소화했다. 이따금씩 임도헌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만큼 뛰고 또 뛰었다. 임 감독은 “내가 현역 때 소화했던 운동량보다 많이 뛴 선수에게는 존경심이 들 때도 있다”며 “코치 때부터 삼성화재란 팀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추구해왔다”고 말했다.

“제가 감독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삼성화재가 정상권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후임자가 ‘이 팀은 참 바른 문화 속에서 운동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 그런 문화를 유지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투지 있는 플레이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배구를 하겠습니다.”

■ 임도헌 감독 프로필

△ 생년월일 = 1972년 6월 9일
△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
△ 체격 = 194㎝ 96㎏
△ 출신학교 = 하양초-무학중-경북체고-성균관대
△ 주요 경력
- 현대자동차 배구단 선수(1993∼2001년)
- 현대캐피탈 배구단 선수(2001∼2003년)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립대학 코치(2003∼2004년 연수)
- 청소년대표팀 코치(2004년)
- 국가대표팀 코치(2005년, 2014년)
- 삼성화재 배구단 코치(2006년 7월~2015년 5월)
-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2015년 5월~)
△ 수상
- 슈퍼리그 신인상(1990년)
- 아시아선수권대회 MVP(1993년)
- 슈퍼리그 MVP(1995년)
- 슈퍼리그 베스트6(1993~1997년)

[취재후기] 임도헌 감독은 인터뷰 내내 겸손했다. 처음에는 그저 ‘신임 감독이기 때문에 언행에 신경쓰나보다’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현역 시절 인기 팀에서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음에도 “나는 배구를 못했던 사람”이라고 낮춘 임도헌 감독은 라이벌 팀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도 “상대가 우리를 라이벌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고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매순간 진중한 모습에서 왜 신치용 단장이 차기 감독으로 그를 적극 추천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