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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예능의 꽃’ 자막 과잉시대,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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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예능의 꽃’ 자막 과잉시대, 빛과 그림자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2.03 0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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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실수, 실패, 모자람, 부끄러움...이 모든 걸 딛고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그것이 바로 젊은 청춘의 특권입니다.'(tvN ‘꽃보다 누나’)

‘짐’에서 ‘짐꾼’으로 서서히 성장해가는 청춘스타 이승기의 모습 위로 흐르며 훈훈한 감동을 자아낸 자막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에서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필수 장치로 자리매김한 자막이 한껏 위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90년대 중반 MBC 김영희PD가 日서 자막 도입

자막이 국내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MBC 김영희 PD가 94년 일본 후지TV 연수 후 ‘TV파크’에 도입하면서부터다. 여기에 91년 개국한 민영방송사 SBS가 예능에 방점을 찍으면서 예능프로에 대대적으로 사용, 확산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 '꽃보다 누나' [사진=tvN 제공]

이후 MTV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현장 분위기 및 진보적인 정치 색깔 등 자신의 연출철학을 자막에 녹여내며 정점을 찍었고 케이블TV, 종편 등 다채널 시대를 맞아 예능프로 뿐만 아니라 교양, 심지어 드라마에까지 범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연자의 코멘트까지 일일이 자막으로 처리하는 상황을 두고 자막 과잉 문제가 입길에 오르는 중이다. 회사원 김진만(35)씨는 “이제는 시각 공해 수준”이라며 “제작진의 생각을 주입하고, 재미를 강요하는 것에 불쾌함과 피곤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막은 종합 편집 단계에서 PD나 조연출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구성 작가들이 담당한다. 하루 이상이 걸리는 중노동이다. 요즘 예능프로의 추세가 현장성이 강화되고, 여러 대의 ENG 카메라가 투입되기에 현장에서 촬영해온 그림(영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짜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럴 때 연출진의 의도를 녹여내는 것과 아울러 깨알과 같은 재미, 극적 효과를 부여하는 요소가 자막이다. 자막의 역할이 확대되며 이제 내레이션, 지문, 대사 역할을 다 해내는 상황이다.

◆ "상황 요악ㆍ영혼없는 자막 문제" 한목소리 지적

전진실 방송작가는 “자막을 보는 순간 나와 타인의 감정이 똑같은 것을 확인하기 때문에 각광받는 것 같다”며 자막의 필요성을 짚었다. 예를 들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노래할 때 비전문가들이 놓치기 쉬운 기교, 창법을 상세히 설명해줌으로써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도할 경우 월권이 될 수 있다. 또한 상황을 서머리(요약)하는 자막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박준배 방송작가 역시 “‘저런 자막을 뭐하러 넣을까’ 싶은 영혼 없는 자막들이 문제”라며 “치밀한 계산 없이 영상을 그대로 설명하거나 출연진의 멘트를 고스란히 받아 적는 자막은 시청자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도구”라고 못 박았다.

▲ '무한도전' [사진=MBC 제공]

두 작가가 손꼽는 모범적인 자막 프로그램은 나영석 PD-이우정 작가 콤비의 tvN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시리즈와 STV ‘자기야 백년손님’, MTV ‘무한도전’이다. ‘꽃보다…’ 시리즈는 감각적인 재미와 감성을 자극하는 내레이션 식 자막이 빼어나며 ‘자기야’는 상황에 걸맞은 자막과 시청자가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챙기는 꼼꼼함, 잔재미가 강점이다. ‘무한도전’은 세심한 부분조차 고려해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한다.

KBS 교양제작국의 한 PD는 “미국, 유럽권 방송사는 자막 보다 오디오 위주로도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며 “자막이 이미 우리나라 방송 스타일로 정착돼 거부할 수는 없으나 과잉의 폐해 역시 만만치 않으므로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덜어냄의 미학을 발휘할 때”라고 조언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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