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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활보하는 '소시오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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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활보하는 '소시오패스'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4.04.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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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 활발해지며 드라마의 소시오패스 캐릭터 인기

[스포츠Q 이예림기자] 한국 드라마에 소시오패스의 등장이 흔해졌다.

'쓰리 데이즈'의 최원영, '호텔킹'의 이덕화, '갑동이'의 이준, '골든 크로스'의 엄기준과 정보석을 비롯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별에서 온 그대'의 신성록,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손여은에 이르기까지 수와 면모가 다양해졌다. 최근 국내 드라마에 장르물인 스릴러, 추리수사극이 많아지면서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캐릭터들이 늘어났고 '세결여'와 같은 휴먼 드라마까지 나타나는 중이다.

▲ '골든 크로스'의 엄기준, 정보석, '별에서 온 그대'의 신성록, '쓰리 데이즈'의 최원영 (사진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 갈등의 축, 이들이 나와야 작품이 뜬다?

최원영은 SBS 수목극 '쓰리 데이즈'에서 재신그룹 김도진 회장으로 등장한다. 정계·군부 수뇌, 대통령마저 좌지우지하며 막대한 돈을 차지하고자 민간인 학살극 및 도심 테러를 획책한다.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갑동이'에서 이준은 잘생기고 기억력이 비상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바리스타 류태오를 연기한다. 지난 12일 전파를 탄 '갑동이'에서 류태오가 치료감호소에서 출소하자마자 살해 대상을 물색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연쇄살인범 갑동이가 류태오라는 가능성도 있어 이준의 섬뜩한 연기는 시청자의 몰입을 배가했다.

MBC 주말극 '호텔킹'의 이덕화는 이중성격의 호텔 회장 이중구로 나온다. KBS 2TV 수목극 '골든 크로스'에서 엄기준이 맡은 마이클 장은 준수한 외모와 위트 있는 말솜씨를 갖췄다. 반면 돈 버는 일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펀드매니저다. 극 중 정보석은 경제기획부 금융정책국장 서동하로 나온다. 지난 10일 방송된 2화에서 서동하는 마음에 드는 연예인 지망생 강하윤(서민지)이 다른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 사실을 알고 광기에 휩싸인 채 살해했다.

신성록은 '별에서 온 그대'에서 그룹 후계자로 겉보기엔 완벽하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살인을 저지르는 소시오패스를 연기해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손여은은 부잣집 가문에 일류대를 졸업한 참한 며느리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남들을 무시하는 말을 천연덕스레 내뱉으며 유리한 상황을 위해 고자질과 이간질을 서슴치 않는다.

▲ '갑동이'의 이준,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손여은, '호텔킹'의 이덕화 (사진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며 말끔한 외모에 화술이 좋다. 하지만 야망과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는 소시오패스를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을 지배하고 이용하기 위해 여러 매력을 발산한다.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과시하고, 범죄에 대한 지각이 전혀 없어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와는 구분된다.

◆ 극단적인 범죄자인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현실감 있는 캐릭터

스릴러, 공포, 미스터리와 같이 장르물 제작 역사가 오래된 할리우드에서는 '양들의 침묵' '적과의 동침' '한니발' '아메리칸 사이코' 등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으로 심심찮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2004년 한 해 동안 20명을 연쇄 살인한 유영철에 대해 '사이코패스' 진단을 내린 이후 그 개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추격자'(2008년)는 당시 엄청난 반응을 몰고 왔다.

소시오패스 캐릭터들의 원조는 추리소설의 주인공 셜록 홈즈다. 홈즈는 의뢰인들의 심리는 고려하지 않고 사건, 범인에만 집중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지낸다. 100년이 흐른 지금도 전 세계는 이 괴짜 탐정에 열광하고 있다.

▲ 영국 BBC 드라마 '셜록' 방송캡처

심진섭 건국대 심리학 교수는 "소시오패스 성향의 역할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작가의 욕심이다. 악역이 등장해야 극이 흥미로워지듯이 복잡한 성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해야 작품은 몇 배로 재밌어진다. 독자 및 시청자가 여러 번을 봐도 지겹지 않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라며 대중이 소시오패스 캐릭터에 빠져드는 이유를 언급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사이코패스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 아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성공한 악당들이다. 실제 돈, 권력,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극단적인 범죄자가 아닌 현실감 있는 캐릭터"라며 소시오패스들이 평면적인 악역과 극단적인 사이코패스와의 차별화된 특징을 설명했다.

◆ 인간 본성과 현대 사회가 낳은 '소시오패스'

성공을 위해 주위 사람들을 파괴하는 인물들의 등장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위선'이란 단어와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설명됐다. 현대 사회가 정신 이상 증세로 '소시오패스'란 개념을 정의해버림으로써 사람들이 피해야 되는 유형으로 설정했다.

드라마 '골든 크로스'의 정보석은 "악역을 연기할 때마다 얻는 쾌감이 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연기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시청자들 또한 사회적인 기준으로 '악'이라 불리는 본성을 현실에서 표출하지 못하고 극중 선하지 않은 캐릭터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

심 교수는 "인간이란 혼자 있고 싶다가도 타인의 일에 관여하고 싶은 복잡하고 이상한 존재다. 예전에는 여자들과 남자들의 문화가 이분법적으로 구분됐다면 요즘은 경계가 흐려졌다. 이전보다 복잡해진 사회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며 인간에게 내재된 복잡한 심리가 다변화된 현대 사회와 맞물려 소시오패스 성향의 인물이 흔해졌다고 밝혔다.

김 평론가는 소시오패스들이 드라마에서 활개를 치는 현상은 물질 만능에 사로잡힌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말한다. 그는 "'별에서 온 그대'에서 신성록이 그룹 후계자 후보인 형을 죽였듯이 정상적인 구조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니 평범하게 잘 살자'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경기가 안 좋으면 히어로물과 판타지 영화들이 많이 개봉된다'는 할리우드 영화계의 속설이 있다. 영웅, 신들이 실재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2시간의 러닝타임동안 만큼은 고단한 현실을 갈아엎을 만한 힘이 있는 존재에 의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 시기에 장르물이 집중되는 현상은 현실의 병폐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안방까지 침투한 소시오패스의 범람은 이제 웬만한 자극으로는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 사회가 돈과 권력 남용, 비리와 범죄로 얼룩져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은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pres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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