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스포츠Q 글 강두원·사진 노민규 기자]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무대는 단연 올림픽이다. 누구나 다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하고 메달 입상을 노린다.
이런 목표를 위해선 국가대표 선발전에 통과해야 한다. 특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은 종목일수록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한국의 올림픽 메달밭인 양궁이 대표적이다.
혹자는 말한다. 한국에서 양궁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 설마 그렇겠냐고 되묻는 이도 있지만 올해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궁사들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종목이 열리는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는 19일부터 23일까지 양궁 국가대표 2차 평가전이 열렸다.
지난달 26일 열린 양궁 국가대표 5차 선발전에서 뽑힌 남녀 각각 16명의 궁사들이 4장의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얻기 위해 피가 마르는 승부를 이어갔다.
아시안게임 출전티켓을 거머쥐기 위한 16명의 궁사는 23일 2차 평가전 마지막 4회전 경기를 위해 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22일 끝난 여자부 3회전까지 정다소미(24·현대백화점)가 1위를 달린 가운데 장혜진(27·LH), 이특영(25·광주광역시청), 전성은(20·LH)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기보배(26·광주광역시청)와 윤옥희(29·예천군청)이 일찌감치 탈락해 새로운 얼굴이 태극마크를 달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여자대표팀의 류수정(47) 감독은 “여기(계양아시아드양궁장)가 바람이 상당히 많이 분다. (기)보배나 (윤)옥희가 빠른 타이밍에 쏘는 스타일인데 바람이 많이 불다 보니까 실수가 많았다”며 금메달리스트들의 탈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류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은 누가 이 곳의 바람을 이겨내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3월 그 추운 날에 남해로 가지 않고 이 곳에서 연습을 한 이유도 적응력을 높이고 여기서 잘하는 선수를 추려내기 위함이었다. 대회를 치르기 전 경기장을 미리 경험한다는 것은 굉장한 소득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것도 한 쪽으로 부는 것이 사방팔방으로 변화무쌍한 바람이 줄곧 불어왔다. 그러나 깃발이 흔들릴지언정 선수들의 마음은 흔들림 없이 과녁만을 조준하고 있었다.
특히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서로 한 마디 말조차 하지 않은 채 경기에 집중하며 한 발 한 발 시위를 당겼다.
반면 남자 대표팀은 여자 대표팀에 비해 비교적 여유롭고 화기애애했다. 사선에서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길에도 연신 이야기꽃을 피웠다.
남자 대표팀 김성훈(46) 감독 역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1,2위는 가려졌다. 임동현이 떨어진 자리에 이승윤이 막차를 탈 것으로 보인다”며 조심스런 예상을 내놓았다.
또한 김 감독은 “경기장 시설이 상당히 멋있고 좋다. 다만 조금 아쉬운 면이 있다면 경기장 오른쪽에 방호벽이 있었으면 한다. 지나다니는 차들로 인해 소음이 조금 걱정되지만 선수들이 잘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며 웃어보였다.
남자대표팀은 3회전까지 오진혁(33·현대제철)이 1위를 달리고 있었고 구본찬(21·안동대), 이우석(17·인천체고), 이승윤(19·코오롱)이 뒤를 잇고 있었다.
◆ 냉정한 승부의 세계…불은 자도, 떨어진 자도 계속 정진해야
경기에 집중하던 선수들은 휴식시간만큼은 다 같이 모여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두고 물러섬 없는 싸움을 벌이는 경쟁자지만 지난 몇 달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이기도 했다.
이날 한 회전당 3발씩 5번을 쏘는 기록경기가 이어졌고 총 5번의 회전이 끝난 후 선수들은 ‘이제 다 끝났다’라는 표정과 함께 자신의 장비를 정리한 후 결과발표를 듣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아시안게임에 나갈 남자 대표팀에는 ‘맏형’ 오진혁(16점)을 비롯해 메이저 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구본찬(12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 김우진(12점), 그리고 지난해 세계선수권자인 이승윤(10점, 이상 1,2차 평가전 합계)이 선발됐다.
오진혁은 선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일단 경기를 잘 마쳐서 후련한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경기장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먼저 경험했다는 것이 큰 수확이다. 항상 많은 관심과 기대를 보여주시기 때문에 부담도 되지만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 대표팀 1진에 포함돼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된 ‘대학생 궁사’ 구본찬은 “얼떨떨하다. 진혁이형만 믿고 좋은 성적 낼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남자 대표팀이 발표된 직후 여자 대표팀 4명의 이름이 호명됐다. 1위는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3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정다소미(15점), 2위는 이특영(13점), 3위는 장혜진(11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린 이름은 ‘주부궁사’ 주현정(32·현대모비스, 9점). 그는 5위 전성은(9점)과 총 배점이 같았지만 1,2차 평가전 기록 합계에서 8580점으로 8577점의 전성은을 제치고 마지막 아시안게임 출전티켓을 거머쥐었다. 전성은은 냉정한 승부의 세계 앞에 눈물을 보였고 그런 그를 주현정은 꼭 안아주는 모습이 펼쳐졌다.
1위를 차지한 정다소미는 “기분이 좋다. 2011년 선발된 이후 3년 만이다. 항상 동점상황에서 떨어진 적이 많아 아쉬웠었다. 오늘도 그런 상황이 나와 조금 마음이 아프다. 동점상황에서 떨어졌을 때 항상 한 발만 더 잘 쏠 걸이란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게 큰 약이 된 것 같다. 상실감도 컸지만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피 말리는 승부 끝에 막차에 오른 주현정은 복합적인 감정이 얽혀 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힘들게 올라가서 좋긴 한데 아시안게임에 대한 걱정이 크다”며 “마지막 3발을 남기고 동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알고 쏘는 것과 모르고 쏘는 것은 천지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중하게 후회 없이 쐈다는 것이다. 10점을 쏘면 잘 쏜 것이고 낮은 점수를 쏘면 내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운에 맡기는 것이다. 내가 마지막 3발을 10-9-9를 쏘고 (전)성은이가 9-8-8을 쏘면서 3점차로 이겼지만 떨어졌어도 후회는 안했을 것 같다”며 마지막 순간을 회상했다.
발표를 진행한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이사는 평가전에 참가한 전 선수들에게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겐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떨어진 선수들도 좌절하지 말고 다음 대회를 준비하기 바란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앞으로 기회는 많고 언제든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 있다”며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줬다.
선발전은 끝났지만 이제 남녀 8명의 한국 국가대표 양궁선수들은 새로운 시작이다. 아시안게임의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한국 양궁은 해마다 걸출한 유망주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며 언제든지 국가대표의 얼굴이 바뀔 수 있는 곳이다. 이날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들도, 떨어진 선수들도 멈춤 없이 계속 정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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