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용원중 이희승기자] ‘도전정신과 이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 나서는 김연아의 쇼트(20일), 프리(21일)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전 국민적 열망을 안고 현역 마지막 무대를 꾸미는 김연아는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안주하지 않은 채 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김연아는 그동안 ‘강한 쇼트’와 ‘서정적인 프리’ 패턴을 고수했다. 4년 전 밴쿠버 대회 땐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메들리’(쇼트)와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 장조(프리)로 사상 첫 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일궜다. 이번엔 다르다. 금빛 양 날개(음악과 의상)를 단 ‘피겨여왕’이 비상할 순간이 다가왔다.
쇼트 프로그램- 뮤지컬 넘버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
◆ 난해한 곡임에도 박자·프레이즈 놓치지 않은채 순식간 소화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스위니 토드’ ‘어쌔신’으로 유명한 미국 뮤지컬계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작곡한 발라드다. 스웨덴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영화 ‘여름밤은 세 번 미소 짓는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1973년 뮤지컬 ‘리틀 나이트 뮤직(A Little Night Music)’에 삽입됐다.
얽히고설킨 여주인공의 애정관계를 통해 다양한 사랑의 단면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중년의 여배우 데저래가 엇갈린 사랑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드러내며 부르는 노래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이 돋보인다. 대회용으로 현악기 편성됨으로써 애절함이 더해졌다. 김연아는 “그리움과 애절함, 과거를 회상하며 행복했던 모습을 떠올리는 내용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 표현을 연결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변희석 뮤지컬 음악감독은 “손드하임은 즐겁고 익숙한 음악보다 극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로 유명하다. 그만큼 감정과 드라마 표현에 탁월하다”며 “김연아 선수는 손드하임을 전문 배우보다 더 철저히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에 따르면 랄프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이나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 F장조와 같은 클래식곡은 음악 밀도가 서서히 흘러가지만 뮤지컬곡은 감정 표현이 극단적으로 이뤄져 배우들도 힘겨워하는데 김연아는 어려운 박자와 프레이즈(작은 악절)를 놓치는 법 없이 순식간에 소화한다. 변 음악감독은 “특히 이 곡은 손드하임의 초기작이라 난해한 패시지(경과악구)가 있음에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얼굴표정이나 동선이 너무 뮤지컬적”이라며 “드라마적 연기, 예술적 표현력이 가히 레전드급”이라고 극찬했다.
◆ 푸른색 징크스 일축…‘연아그린’으로 여성미 강조
여자 피겨 스케이터 사이에선 '푸른색=금빛'이나 다름 없었다.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기대주 타라 리핀스키(미국)가 푸른색 홀터넥 원피스를 입고 금메달을 딴 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엷은 청색을 입은 사라 휴즈(미국)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미셸 콴을 누르자 ’블루 신드롬‘을 믿는 선수들은 더욱 늘어났다. 김연아 역시 지난 밴쿠버 대회 때 “이 속설을 듣고 파란 옷을 골라 입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하지만 올해 김연아의 선택은 빙판에서 보기 힘들었던 겨자색이다. 쇼트 의상은 안규미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차분한 이미지,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안 디자이너는 “올리브 그린 원단에 골드레이스가 들어간 스타일이다. 팔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김 선수의 취향을 고려한 대신 등 라인은 과감히 살렸다. 하늘거리는 소매와 치맛단으로 여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디자인학교(SADI)의 김승현교수는 “쇼트와 프리의상은 우아하고 성숙해진 선수의 이미지를 반영했다. ‘여왕’의 자신 있는 선택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쇼트의 겨자빛이 도는 노란색은 빙판에 잘 조화되는 색상으로 선수의 전체적인 모습과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지만, 동양인의 이목구비가 잘 드러나지 않는 색상이라 김연아 선수의 외모가 강조되지는 않는다고 부연 설명했다.
프리 프로그램-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 표현 까다로운 리듬패턴…탱고예술 정수 피겨로 구현
아르헨티나의 대중적 무곡인 탱고를 클래식, 재즈와 결합한 ‘누에보 탱고’로 격상시킨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작품이다. 1959년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만든 곡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라틴 특유의 가족애가 구슬픈 가락과 리듬 속에 잘 살아난 명곡이다. ‘아디오스’는 이별의 인사이며, ‘노니노’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아버지의 중간이름이다.
김연아는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4분10초라는 경기 시간에 맞게 편곡, 선율과 리듬을 피겨 스케이팅과 조화시키기 위해 힘을 쏟았다. 조원희 음악평론가는 “탱고음악을 피겨 스케이팅으로 소화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김연아는 17세에 이미 ‘록산느의 탱고’를 통해 탱고의 본류를 피겨로 구현했다. 이번에는 더 진화했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탱고의 예술적인 정수를 구현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 곡은 탱고의 보편적 리듬에서 많이 벗어난, 표현하기 까다로운 리듬패턴이라 피겨선수 심지어 무용수조차 소화하기 만만치 않은데 현역 마지막 무대임에도 도전을 택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벨벳소재 투톤 드레스…우아ㆍ성숙ㆍ자신감 표출
프리에서는 “탱고=빨간색”이라는 예상을 깨고 ‘검은색’을 집어 들었다. 김연아는 '2013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착용했던 검은색 원단의 긴팔 드레스대신 벨벳 소재의 블랙&퍼플 투톤 컬러 드레스로 변화를 줬다. 탱고의 열정과 그리움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곡의 특성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먼저 벨벳 소재와 보라색으로 우아함을 더했다. 크로아티아 대회 당시 의상에는 상의에 전체적으로 보석 장식을 했으나 이번에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디자인을 넣어 시선분산을 막았다. 왼쪽의 치마와 어깨에는 트임을 넣어 섹시함까지 가미했다,
김승현 교수는 “검정과 보라 배색은 성숙함, 자신감, 우아함을 표현한다. 긴 소매는 김연아 선수의 신체적 장점인 길고 가는 팔을 강조해 주고, 다소 길어진 스커트는 성숙함과 우아함을 한껏 드러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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