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문소리가 영화 '관능의 법칙'에 출연하며 노출을 고민했다. 여배우로서 노출을 부끄러워한 적은 없지만 악의적으로 '활용'되는 게 퍽이나 아쉽다. 배우라는 직업을 이해해주는 감독 남편에 4세된 딸을 둔 결혼 9년차 주부,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관능적인 40대 주부 미연 캐릭터를 소화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결국 미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요즘 문소리는 아내, 엄마, 학생, 교수 그리고 여배우로 하루를 25시간으로 쪼개 사는 데 충족감을 한껏 느낀다.
[스포츠Q 글 이희승 기자·사진 이상민 기자] 시작부터 화끈하다. 메이드 복장을 하고, 남편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달려든다. 아이스크림 위에 뿌려 먹는 초콜릿은 이 부부의 판타지를 위해 침실 한 켠을 차지한지 오래다.
배우 문소리가 맡은 40대 주부 미연은 좋은 집에서 곱게 자라 하고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인물이다. 1주일에 부부관계 3번을 ‘결혼 조건’으로 내걸었다. 남편과 짜릿한 밤을 위해 오전 내내 헬스클럽에 다닐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만 그만큼 밝히는 캐릭터를 맡은 그는 “정말 오랜 시간 고민했다”며 부끄러워했다.
13일 개봉을 앞둔 ‘관능의 법칙’은 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작으로 ‘싱글즈’의 권칠인 감독과 명필름이 제작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화끈한 대사만큼이나 주인공을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상 시나리오가 등장했다. 원래 주인공 나이가 50대였다가 문소리의 캐스팅을 위해 40대로 바꿨다.
그동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제작사인 명필름과 남다른 인연을 자랑한 그였지만 대답은 단호했다. 문소리는 “정작 나에게는 러브콜이 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가장 늦게 캐스팅됐겠냐” 며 말문을 열었다.
◆ 여배우 중심 '관능의 법칙' 출연 행복했으나 캐릭터ㆍ노출 고민
‘관능의 법칙’은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다. 최근 몇 년간 남자 중심의 영화만이 기획ㆍ제작됐던 충무로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 영화에 쏠린 여배우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누가 봐도 '될 수밖에 없는 영화'였음에도 파격적인 노출과 대사가 마음에 걸렸다. “노출은 여배우로서의 숙명”이라고 밝혀왔지만 최근 들어 시대가 변했음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노출을 부끄러워 해 본적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장면들만 악의적으로 편집돼 돌아다니고, 문제가 돼 얼마 전 소속사 대표가 법적인 절차를 취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이제 애 엄마고, 한 사람의 아내인데…제 작품들이 그렇게 소비되는 거에 대한 아쉬움이 크죠.”
문소리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 ‘화이’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과 결혼한 지 9년째 됐다. 이제 막 네 살이 된 딸을 둔 '아줌마 배우'다.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손에 물 한방을 안 묻히게 해 주겠다’던 약속을 지켜주고 있는 남편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관능의 법칙’의 노출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당시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지 않으냐?”면서 등 떠밀어준 고마운 남편이다.
“(설)경구오빠가 그렇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나라고. 일 이해해주는 남편에, 애는 친정 부모님이 키워주지, 주변사람들 다 건강하지, 데뷔 후부터 좋은 감독들하고만 쭉 일하지. 나 같은 여배우가 없다고. 제 대답은 얄밉게도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아?’였지만요.(웃음)”
◆ "다시 찍어도 화끈하고 의리 있는 미연 맡을 것"
미연을 하기로 작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태국 마사지 배우기였다. 남편 역인 배우 이상민의 매니저가 마사지 자격증이 있어서 남성 갱년기에 좋다는 혈자리를 모두 외웠다. 그래서일까. 능숙한 손놀림과 더불어 남편의 기를 살리기 위한 문소리 특유의 콧소리는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아내와의 밤이 무서워 결국 약에 의존하는 남편을 위해 특별히 ‘두 번!’으로 줄여주는 미연의 대사는 ‘관능의 법칙’의 웃음 포인트 중 하나다.
“사실 '신혼도 아닌데 중학생 아들을 둔 아줌마가 그렇게 밝힌다는 게 말이 되냐'며 감독님께 항의 아닌 항의를 했어요. 나는 영화에 나오는 속옷을 입어 본 적도 없는데, 미연이는 날마다 바꿔 입고 나오니 현실성이 좀 떨어진달까. 그래서 동부이촌동을 돌아다니며 있는 집 여자들의 말투나 행동을 눈여겨 봤죠.”
자신이 이해 할 수 없는 캐릭터였기에 미연의 하루 일과를 일기로 쓰며, 1주일 스케줄을 적어 감독에게 가져가 현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했다. 문소리는 “결국엔 나에게 없는 면이 많은 미연이 3명의 여주인공 캐릭터 중 가장 현실적이고, 사랑스럽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다시 캐스팅 제안이 와도 이 캐릭터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을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극중 친구들에게 바람난 남편 욕을 하며 “그 인간 결혼 후 지금까지 아침밥 해주고, 아들 낳아줘, 제사 지내줘 내가 못 한 게 뭔데?”라고 흥분하거나, 대장암에 걸린 친구의 병원비를 남편 카드로 긁는 화끈함은 문소리가 ‘관능의 법칙’을 사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비록 영화지만 내가 봐도 멋진 여자예요. 흔히들 여자들 우정, 가볍다고 하잖아요. 내 주위에 'DKNY(독거노인)'라는 친목 단체가 있거든요. 결혼 안 한 친구들인데 전 나중에 돈 벌면 이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늙어가고 싶어요. 나이가 들수록 가족 말고 친구들도 소중한 걸 느끼거든요. 한 가지 걱정되는 건 딸 연두가 골드미스 이모를 보면서 자기도 결혼 안한다고 하면 큰일인데...하하.”
◆ 학생, 교수, 아내, 엄마로 바쁜 나날 즐겨
요즘 대학(건국대 예술학부 영화전공)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지난해부터 중앙대 첨단 대학원에 진학해 연출 제작분야를 배우고 있다.
“전문가가 되도 시원찮은데 아이를 낳고 부터는 생활에 치여 영화를 보는 게 싫어지더라. 그래서 아예 학교 등록을 해버렸어요. 나이 어린 동기들에게서 자극을 얻고, 그러다보면 힐링이 돼요. 엄마이자 아내, 교수이자 학생인 내가 자랑스럽다. 힘들지 않느냐고요? 원래 배우란 직업이 여러 인물을 연기하는 거니까. 하하.”
[취재후기]
기센 언니들과의 작업, 우려의 시선도 많았지만 정작 문소리는 “즐거웠다”고 가볍게 일축한다. (조)민수 언니는 할 말 다해도 뒷말이 없어서 좋은 선배고, (엄)정화 언니는 하는 행동이 얼굴처럼 예뻐서 좋았단다. 세 여배우 간 기싸움? 화통한 캐릭터들끼리 만나면 그런 것도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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