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박상현 기자]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발톱을 감추면서 실리를 챙기며 일주일도 남지 않은 브라질 월드컵을 완벽하게 대비했다.
러시아는 7일(한국시간) 모스크바 로코모티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모로코와 평가전에서 전반 29분 바실리 베레주츠키(31·CSKA 모스크바)의 선제 결승골과 후반 13분 유리 지르코프(31·디나모 모스크바)의 쐐기골로 2-0으로 이겼다.
러시아는 이날 승리로 A매치 10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해 8월 16일 벨파스트에서 열렸던 북아일랜드와 월드컵 유럽예선전에서 0-1로 졌던 러시아는 9월 7일 룩셈부르크전부터 A매치 10경기에서 7승 3무를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2012년 11월 15일 미국과 평가전에서 2-2로 비긴 이후 A매치에서 14경기 연속 1골 이내의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14경기를 치르면서 한 골도 내주지 않은 '클린 시트' 5경기이고 한 골을 내준 경기가 9차례다.
◆ 지르코프, 부상으로 빠진 시로코프 대체자 '합격'
모로코전에서 카펠로 감독은 사실상 '플랜B'를 들고 나왔다.
포백 수비 라인은 큰 변화가 없었다. 선발 왼쪽 풀백으로 거론되고 있는 드미트리 콤바로프(27·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대신 게오르기 쉬체니코프(23·CSKA 모스크바)가 나온 것을 제외하면 베레주츠키-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35·CSKA 모스크바)의 중앙 수비라인과 오른쪽 풀백 안드레이 예쉬첸코(30·안지 마하치칼라)가 그대로 나왔다.
또 최전방 공격수에는 알렉산더 코코린(23·디나모 모스크바)이 기용됐다. 코코린은 왼쪽 측면도 설 수 있지만 최전방 스트라이커로도 활용될 수 있는 선수다.
문제는 부상으로 오랫동안 전력에서 제외되어 있었던 중원의 핵 로만 시로코프(33·크라스노다르)의 빈자리였다. 카펠로 감독으로부터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지만 시로코프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제대로 뛸 수 없는 상태였다.
카펠로 감독은 2일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한 23명 최종 엔트리에 시로코프를 포함시켰지만 부상 회복 속도가 기대에 못미쳐 6일 전격적으로 그의 월드컵행 제외를 공식 발표한 뒤 파벨 모길레베츠(21·루빈 카잔)를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공수를 조율하며 중원에서 가장 핵심 역할을 해온 시로코프를 대신한 선수는 바로 지르코프였다. 원래 왼쪽 측면을 맡는 지르코프는 모로코전에서 시로코프의 자리인 중원 미드필더로 기용됐고 카펠로 감독의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모로코 골문 쪽으로 공격을 진행할 때도 페널티지역으로 간간이 침투하는가 하면 페널티지역 바깥에서 흘러나오는 공을 호시탐탐 노리는 등 플레이메이커로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지르코프의 생애 첫 A매치 골도 바로 페널티지역 바깥에서 때린 중거리슛이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모로코의 수비수를 맞고 바깥으로 흐른 것을 곧바로 환상적인 왼발 논스톱 슛으로 연결해 오른쪽 상단 골망을 흔들었다.
◆ 주전 대거 제외했지만 카펠로 축구 특징만큼은 확실
모로코전이 자국에서 치르는 마지막 평가전이기 때문에 한번쯤은 '베스트'를 가동할 필요는 있었다. 그러나 카펠로 감독은 한껏 '발톱'을 감췄다. 그래도 공격의 특징만큼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러시아 선수들의 체력은 70% 정도밖에 되어보이지 않았다. 전반에는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몸놀림으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래도 공격으로 전환할 때 4명의 미드필더가 한번에 모로코 진영으로 넘어서는 모습은 여전했다.
또 좌우 측면에서 올라오는 한박자 빠른 크로스와 빠른 침투 역시 매서웠다.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음을 생각한다면 100%로 돌아왔을 때는 더욱 날카로운 공격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경계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두 골이 모두 세트 플레이에서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베레주츠키와 지르코프의 골 모두 코너킥 상황에서 나왔다.
베레주츠키의 골은 코너킥이 코코린의 키를 넘은 것을 한차례 슛으로 연결했다가 상대 수비의 몸을 맞고 나온 것을 재차 때리면서 나왔고 지르코프의 골은 상대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흐른 것을 중거리 슛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모두 리바운드된 공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집중력을 발휘해 골로 연결시켰다는 뜻이다.
이는 세트 플레이에서 실점하는 경우가 잦은 한국 월드컵대표팀이 경계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최근 경기당 한 골 이내로 막아내는 수비력을 갖춘 러시아를 상대로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못한다면 승리를 따낼 수 없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 수비 허점 있었지만 허리가 탄탄
최근 러시아는 수비에서 다소 헐거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르웨이와 평가전에서 1-1로 비긴데 이어 모로코전 역시 무실점 경기를 하긴 했지만 종종 위기를 맞았다. 수비에서 다소 허점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올만하다.
좌우 양 측면 풀백이 오버래핑이 활발하다보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탄탄한 허리로 메우는 모습이었다.
러시아의 주 포메이션은 4-1-4-1이다.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이고르 데니소프(30·디나모 모스크바)가 섰고 공수를 조율하며 합격점을 받았다.
또 앞선의 미드필더도 공격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며 중앙에서 허점은 좀처럼 노출하지 않았다.
이날 평가전에서 러시아가 거둔 수확은 여러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플랜B'를 가동했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축구를 최대한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플랜B' 역시 베스트 11 못지 않은 경기력을 기대케했다. 주전 베스트 11 외에는 이렇다 할 대안이 보이지 않는 한국 축구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내에서 치른 마지막 평가전에서 사실상 베스트 11을 전부 가동하며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한국과 평가전에서 계속 발톱을 감춰오며 한국전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러시아의 대결은 오는 18일 쿠이아바에서 벌어진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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