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박상현 기자] '축구종가'의 위엄이 여지없이 구겨지고 무너졌다. 잉글랜드로서는 치욕스러운 결과다. 잉글랜드는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좌절을 맛봤다.
이탈리아전에 이어 우루과이전에서 1-2로 연속 패배했던 잉글랜드는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가 브라질 헤시피의 아레나 페르남부쿠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경기에서 0-1로 지면서 남은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16강 탈락이 확정됐다.
잉글랜드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1958년 스웨덴 이후 무려 56년만이다. 당시 잉글랜드는 브라질, 구 소련, 오스트리아와 같은 조에 편성됐지만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3무승부를 기록했다. 구 소련과 함께 승점이 같아졌던 잉글랜드는 단판 플레이오프에서 0-1로 져 8강에 오르지 못한채 짐을 싸야만 했다.
이후 잉글랜드는 유럽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1974년 서독 대회와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1994년 미국 대회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해왔다.
잉글랜드는 4년전에 열렸던 남아공 월드컵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미국, 알제리와 비겨 16강 진출을 자신할 수 없었던 잉글랜드는 마지막 경기에서 슬로베니아에 간신히 1-0으로 이기면서 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하지만 16강전에서 잉글랜드는 토마스 뮐러에게 2골을 허용하고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에게도 실점하면서 1-4로 완패했다. 당시 잉글랜드가 기록한 13위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던 1958년 대회 이후 가장 낮은 것이었다.
◆ 수비진은 경험 부족, 미드필드진은 노쇠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적절히 이뤄져야만 한다. 경험이 많은 기존 선수들로만 구성하면 체력적인 부분이 문제가 돼 이것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젊은 선수들로만 바꾼다면 경험이 없어 문제가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이 가장 적절한 세대교체로 꼽힌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이나 송종국, 이영표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정작 수비진은 홍명보, 김태영, 최진철 등 30대 선수들에게 맡겼다. 경험이 많은 선수들을 통해 수비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활동량이 많은 미드필드진은 주로 젊은 선수들로 꾸렸다. 유상철을 제외하면 대부분 미드필더는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였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정반대였다. 수비는 경험없는 선수들로 꾸리고 미드필드진은 노쇠했다.
그동안 잉글랜드의 중앙 수비진은 리오 퍼디난드, 존 테리 등이 맡아왔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는 게리 케이힐과 필 자기엘카로 바뀌었다. 케이힐이나 자기엘카 모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실력이 검증된 선수이긴 하지만 무게감이 떨어졌다. 케이힐과 자기엘카 모두 A매치 경력이 30경기가 안됐다.
결국 이들은 이탈리아와 첫 경기에서 마리오 발로텔리에게 결승골을 내줬고 2차전 역시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반면 미드필드진은 너무 노쇠했다. 여전히 제라드만 고집했다. 제라드의 짝이 없었다. 잭 윌셔, 조던 헨더슨, 로스 바클리 등과 호흡을 맞추게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호지슨 감독은 리버풀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헨더슨을 제라드의 파트너로 낙점했지만 공격 성향이 강한 헨더슨과 호흡이 불안했다. 결국 제라드에게 허리의 안정화라는 중책이 주어졌지만 30대 중반의 그에게 이 부담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앨런 한센 BBC 방송 축구 분석위원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선수들은 그야말로 '황금세대'였다"며 "리오 퍼디난드와 테리, 프랭크 램퍼드, 제라드, 마이클 오언, 웨인 루니, 애쉴리 콜 등 젊은 선수와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적절한 조화를 이뤘다. 이상적인 팀에 가깝다"고 밝혔다.
◆ 능력있는 지도자도 부재, 호지슨 감독도 부재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멤버였던 크리스 웨들은 호지슨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BBC 라디오의 파이브 라이브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능력있는 지도자 부재가 잉글랜드의 실패 원인"이라며 "잉글랜드는 자금과 축구시설 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만 지도력에서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잉글랜드는 '축구종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명 감독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명성을 얻고 있지만 정작 잉글랜드 출신 감독은 20명 가운데 7명에 불과하다. 범위를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영국 전역으로 확대시켜봐도 12명이다.
능력있는 지도자의 부재는 결국 잉글랜드 대표팀의 '순혈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13년전인 2001년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을 영입함으로써 첫 외국인 감독을 맞아들였다.
잉글랜드는 2006년 스티븐 맥클라렌 감독 체제를 출범시켜 다시 잉글랜드 출신 지도자를 자리에 앉혔지만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본선 진출 실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에 이탈리아 출신 파비오 카펠로 감독에게 잉글랜드를 맡겼지만 그 역시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그쳤다.
기대를 모았던 호지슨 감독은 탁월한 전술가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기대와 달리 출중한 전술을 보여주지 못했다.
안정된 포메이션도 없었고 선수들의 포지션을 시시때때로 변화시켰다. 전술의 잦은 변화는 상대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정작 헷갈렸던 것은 잉글랜드 선수들 본인들이었다. 포메이션과 선수들의 포지션이 안정되지 못하다보니 조직력이 흔들거렸다.
호지슨 감독은 지난 시즌 리버풀의 부활을 가져온 다이아몬드형 4-4-2 포메이션을 잉글랜드 대표팀에 적용시켜봤지만 실패에 그쳤다. 이에 호지슨 감독은 4-2-3-1 포메이션을 적용했다. 또 루니는 이탈리아와 1차전에서는 왼쪽 측면, 우루과이와 2차전에서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등 혼란만 계속 이어졌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호지슨 감독을 계속 유지시켜 2016년 유럽축구선수권까지 끌고 가겠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정해놓았다. 실패는 있었지만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을 동시에 맡긴다는 4년 임기라는 기본 원칙을 계속 지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직 호지슨 감독의 뒤를 이을 잉글랜드 출신 지도자가 없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영국 일간지 더 미러의 마틴 립튼 컬럼니스트는 "게리 네빌이 후계자가 될 것인가? 가레스 사우스게이트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스튜어트 피어스와 해리 레드냅 역시 대표팀 감독을 맡을 일이 없다"며 "샘 앨러다이스, 스티브 브루스, 앨런 파듀 등도 모자라다. 그나마 가장 현실성있는 후보가 글렌 호들이지만 그는 8년 전 울버햄튼에서 경질된 뒤 현장 경험이 없다"고 꼬집었다.
◆ 미래를 위한 세대교체 이뤄질까
스페인도 잉글랜드처럼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2연패를 당하며 전 대회 우승후보로서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겼다.
이 때문에 립튼 컬럼니스트는 일단 세대교체가 과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립튼은 더 미러를 통해 "제라드는 매우 뛰어나고 잉글랜드 대표팀에 헌신적이었지만 이제 대표팀 경력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됐다. 램퍼드와 자기엘카, 글렌 존슨도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라힘 스털링과 로스 바클리, 대니얼 스터리지, 애덤 럴라나, 잭 윌셔, 조던 헨더슨, 앨릭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루크 쇼 등이 향후 잉글랜드를 이끌어갈 선수들"이라고 밝혔다.
잉글랜드는 비록 2연패를 당하긴 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능력은 기대를 갖게 했다. 특히 스털링 등 리버풀의 젊은 선수들은 향후 잉글랜드 대표팀을 더욱 풍성하게 할 재목으로 떠올랐다.
잉글랜드는 1966년 자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 정작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만큼 잉글랜드는 축구종가의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 세계 축구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잉글랜드가 세대교체와 과감한 개혁을 통해 다시 한번 발돋움할 수 있을지는 2년 뒤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다시 한번 평가될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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