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유근호 기자] 은행에 돈을 빌린 뒤 갚지 못하면 신용도가 떨어져 상당한 곤란함을 겪는다. 심지어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은행은 일만 시키고 돈을 지급하지 않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한국감정평가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분석 결과 은행권의 관행적 불공정 행위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시중은행이 감정평가사들에게 줘야 할 수수료나 실비를 최근 3년 동안 800억 원 이상을 미지급해 왔다는 것. 농협중앙회와 KEB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농협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나란히 이름을 올려 빈축을 사고 있다.
은행권은 감정평가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토지를 비롯한 담보 등 감정평가를 위해 감정평가사와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특별한 약정이 없는 경우 감정평가서를 송부 받은 은행은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서 의원은 은행들이 협약사항을 악용해 관행적으로 수수료를 미지급해 왔다고 꼬집었다.
금융기관들이 대출로 이어진 경우에만 수수료를 지급하고 대출실행 지연 등의 경우엔 수수료 지급을 연기할 수 있게 했다는 것. 감정평가사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금융기관이 통보해 줄때까지 대출실행 여부를 파악할 수 없고 대출이 실행되지 않으면 실비는 물론이고 대출이 실행된 경우에도 수수료를 지급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은행권의 총 미지급액은 805억4600만 원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수수료는 697억4600만 원, 실비를 포함한 나머지가 108억 원이었다.
은행별 미지급 총액은 농협중앙회가 163억3100만 원으로 최고액을 기록했고 KEB하나은행(106억3700만 원), 기업은행(99억9100만 원), 농협은행(77억1700만 원), 신한은행(74억800만 원), 국민은행(59억6900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연도별 미지급 총액은 2016년 167억5900만 원(수수료 118억5600만 원), 2017년 187억2700만 원(158억9000만 원)에 이어 지난해는 전년의 2배가 넘는 450억5900만 원(420억 원)에 달했다.
은행권은 ‘무료자문 서비스’도 악용했는데 서 의원에 따르면 이들 금융기관은 감정평가 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탁상자문’을 정식의뢰 대비 과다요구한 뒤 이를 기초로 대출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감정평가사에겐 불공정 거래, 금융소비자들에겐 부실 대출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 등 금융기관의 탁상자문은 257만 건이었는데 정작 정식 감정평가 의뢰는 38만 건(탁상자문 대비 14.7%)에 불과했다. 이는 법인 전산시스템 등록건 기준인 만큼, 개인적 의뢰건수를 합할 경우 탁상자문 건수는 30~40%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수수료 지급에 대해 갑질을 벌이면서도 은행권은 ‘만족도 조사’ 등 평가에서 감정평가사 등급을 자체적으로 정해 업무량을 배정하며 영향력을 휘둘러온 것으로 알려진다. 피평가자 입장인 감정평가사로선 이러한 갑질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
서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에 이러한 자료를 넘기며 은행권의 행각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