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축구에서 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유럽 축구나 국가 대항전에서 매머드 급 구단도 한 시즌에 5~6번 이상은 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일상적인 패배라면 그 다음 경기를 위해서라도 빨리 잊고 넘기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대패는 이야기가 다르다. 예상치 못한 대패로 흑역사를 쓴 팀이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감은 상상 이상이다.
지난 주말 무난히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던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과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모두 대패했다. 뮌헨은 27일(한국시간) 프리제로 아레나에서 열린 2020~21 분데스리가 2라운드 TSG 1899 호펜하임 전에서 1-4로 패했고, 맨시티도 28일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0~21 EPL 3라운드 레스터 시티 FC 전에서 2-5로 졌다.
전반 이른 시간 2골을 내준 뮌헨은 키미히 추격골로 후반전 반전을 노렸지만, 후반전 수비가 무너졌고 크라마미치에게 두 골을 더 내주며 완패를 당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2월 쾰른 전 4-1 승리를 시작으로 공식전 22경기째 이어진 연승 기록도 ‘22’에서 마무리됐다.
맨시티는 전반 4분 만에 터진 마레즈 선제골로 일찌감치 승기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전반 36분과 후반 12, 40분경 페널티킥을 세 차례나 내주며 경기를 망쳤다. 맨시티 수장 펩 과르디올라는 686경기 만에 1경기 5실점, 6년 반 만에 1경기 5실점, 17년 만에 맨시티 홈 경기 1경기 5실점이라는 온갖 불명예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정도로 치욕적인 대패는 감독과 선수들뿐만 아니라 구단 관계자, 팬들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대패의 흑역사는 인구에 회자되기 마련이다.
# 제라드의 성대한 고별식 – 리버풀 1-6 스토크 시티
리버풀은 2014~15 시즌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963년 이후 가장 굴욕적인 패배를 맞이했다. 복병 스토크 시티를 상대로 1-6으로 크게 졌다. 물론 리버풀 역사상 더 큰 점수 차 패배가 있었고, 시즌 막판이라 순위 변동도 없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경기였다.
문제는 그 경기가 제라드의 리버풀 고별전이었다는 점이다. 리버풀에 있어서 제라드가 가진 상징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리버풀은 제라드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자 굳은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리버풀은 전반전에만 5골을 허용했다. 스토크 시티는 전반 22분과 26분 디우프 멀티골 이후 왈터스, 아담, 은존지 추가골로 사실상 경기를 끝냈다. 다행히 제라드가 후반전 만회골을 터뜨렸으나, 대량 실점에 위로가 되진 못했다. 스토크 시티 선수인 쇼크로스는 당시 팀 동료들이 라커룸에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는 비화를 밝히기도 했을 정도로 일방적인 경기였다.
# 원조 ‘2-8 가르마’ 참사 – 아스널 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난 2019~20 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가장 큰 이변을 꼽으라면 뮌헨과 바르셀로나 맞대결이었다. 이전부터 선수 노쇠화와 감독 문제가 겹치며 잡음이 터져 나오긴 했지만, 바르셀로나가 2-8로 무너질 것이라 예상한 팬들은 없었다. 하지만 약점을 파고드는 기세등등한 뮌헨을 멈춰 세울 인재가 바르셀로나에는 없었고, 졸전을 펼친 끝에 8강에서 탈락했다. 이 경기 이후 바르셀로나 국내 팬들 사이에선 ‘2대8 가르마’ 참사라는 조롱 섞인 비판이 이어졌다.
2-8 가르마 참사에도 원조는 따로 있다. 바로 2011~12 시즌 있었던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였다. 전반 40분 만에 맨유가 웰백, 애슐리 영, 루니 연속골로 3-0으로 앞서갔을 때만 하더라도 이 경기가 2-8까지 갈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맨유 소속이었던 박지성도 팀 6번째 골을 성공해 현지 팬들뿐만 아니라 한국 팬들에게도 인상 깊었던 경기가 됐다.
반면 아스널 팬들은 침통했다. 스코어가 계속 벌어질수록 올드 트래포드에 있던 원정 팬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아스널 8실점은 1896년 2부 시절 당했던 0-8 대패 이후 115년 만이었다. 그나마 당시 대패는 창단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기도 적었고 2부 리그 시절이었으나, 맨유 전 대패는 함께 선두 경쟁을 하던 중 벌어진 참사라 더 굴욕적인 셈이었다.
# 악몽이 된 무리뉴의 엘 클라시코 데뷔전 – 레알 마드리드 0-5 바르셀로나
조세 무리뉴 감독은 2009~10시즌 인터 밀란을 이끌고 사상 첫 트레블을 기록하며 최고 전성기를 보냈다. 좋은 성과를 내 다음 시즌 재계약이 점쳐졌지만, 그는 레알 마드리드 행을 택했다. 유럽 3대 리그(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모두 UCL 우승을 거두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우겠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이전까지 무리뉴가 맡았던 팀들이 모두 뛰어난 성적을 거둬왔기에 팬들 기대가 높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리그 첫 경기부터 무승부를 거두며 그의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맞이한 첫 번째 엘 클라시코에서 무리뉴는 0-5로 대패했다. 무리뉴가 오고 신입생들도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앞선 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해볼만 하다는 분위기가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흠씬 두들겨 맞은 꼴이 됐다. 인터 밀란에서 보여줬던 수비적 전술 대신 라인을 올리는 맞불 작전을 놨으나, 미드필더 싸움에서 완패해 주도권을 뺏겼다. 여기에 수비 조직력이 흔들리면서 상대 뒷공간 패스에 약점을 노출해 대패의 쓴맛을 봤다.
이 결과에 대해선 무리뉴가 외부 기대에 시달린 끝에 자포자기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본인도 “어차피 이길 가능성이 없었기에 편하게 앉아서 경기를 지켜봤다”고 밝힌 바 있고, 후반전 0-4 상황에서 수비수 아르벨로아를 투입한 교체 지시는 ‘이 정도에서 끝내겠다’는 경기 포기 선언이었다. 세계 최고 더비 매치인 엘 클라시코에서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한 무리뉴 감독 태도는 레알 마드리드 팬들 마음을 더욱 속상하게 했다.
# 마라카냥 비극 이은 미네이랑 대참사 – 브라질 1-7 독일
제 2차 세계대전으로 12년 만에 재개된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개최권을 따낸 브라질은 첫 우승 기대를 품고 있었다. 지역 예선이 시작되기 전 아르헨티나가 세계대전 여파로 기권했고,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역시 전력이 누수된 탓에 일찍 짐을 쌌다. 브라질 입장에서 남아 있는 난적이라곤 우루과이밖에 없었다.
최종 리그 경기에서 2승을 거둔 브라질은 1승 1무를 거둔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우승하는 상황이었기에 한껏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나, 생각지도 못한 1-2 역전패를 당하면서 우승컵을 놓치고 말았다. 경기 직후 브라질 전국에 조기가 게양되는가 하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잇따라 나왔다.
그리고 64년이 지나고 마라카냥 비극을 뛰어넘는 미네이랑 대참사가 일어났다. 다시 자국에서 월드컵을 치르게 된 브라질은 어느 때보다도 우승에 대한 큰 기대를 받았고, 천신만고 끝 준결승에 올라왔다. 하지만 전반에만 5골을 허용한 브라질은 우승 자격이 없었다. 전반 11분 만에 뮐러에게 선제골을 먹혔고, 이후 클로제와 크로스, 케디라, 쉬를레 릴레이 골이 터지며 무려 1-7이라는 기록적인 점수로 대참패했다.
브라질과 독일이라는 두 정상급 팀 대결에서 명승부를 꿈꿨던 팬들의 기대감은 박살났다. 물론 팀 주축 멤버였던 네이마르와 티아구 실바가 결장하긴 했어도 ‘브라질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겠느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예상을 빗나가는 엄청난 결과에 일찌감치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브라질 관중들이 속출했고,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관중도 카메라에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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