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콜라 대신 물을 마셔요."
세계 최고 스포츠스타로 꼽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포르투갈)가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기자회견 앞서 책상에 놓인 콜라를 멀리 치우고 대신 물병을 올려놓아 화제다. 이번 대회 공식 스폰서인 코카콜라 입장에서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호날두는 심지어 코카콜라 모델 출신이기도 하다.
호날두는 지난 15일(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푸슈카시 아레나에서 열린 헝가리와 F조 조별리그 1차전 사전회견에 포르투갈 주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책상에 놓인 코카콜라 2병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코카콜라 2병을 멀리 치운 뒤 물병을 들더니 "콜라 대신 물을 마시세요"라고 말했다.
호날두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지금껏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5년생 노장이지만 신체나이는 아직도 23세에 불과할 만큼 몸을 잘 가꿔왔다. 지난해 연말 시상식에서 "아들이 가끔 콜라나 환타를 마셔서 화가 난다. 과자나 감자튀김을 먹을 때도 아들과 다툰다. 다른 아이들도 초콜릿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공교롭게 호날두는 한때 코카콜라 모델로 활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몸 관리의 대명사가 됐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콜라를 치우는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코카콜라는 유로 2020 공식 스폰서다. 이튿날인 16일에는 폴 포그바(프랑스)가 비슷한 행동으로 UEFA를 다시 언짢게 했다.
포그바는 독일전 경기 최우수선수(MOM)로 선정됐다. 이번 대회 MOM에게 주는 상은 스폰서 '하이네켄' 이름이 붙은 '하이네켄 스타 오브 더 매치'(Star Of the Match)인데, 포그바는 기자회견에서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하이네켄 무알코올 맥주병을 조용히 아래에 내려놨다. 이에 대해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무슬림인 그의 종교적 신념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스폰서 업체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는 만큼 대회 주최측은 스폰서 업체 제품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노출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대회에 참가 중인 간판스타들이 잇따라 자신의 소신에 따라 스폰서십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UEFA가 좌불안석일 수밖에. 코카콜라는 이 해프닝에 대해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선호하는 음료를 고를 권리가 있다"고 넘겼지만, 호날두의 돌발 행동은 코카콜라 시가총액에 타격을 입혔다.
스페인 마르카는 "코카콜라가 주식시장에서 40억 달러(4조5000억 원)를 잃었다"고 전했다. 56.10달러(6만3000원)였던 주가는 호날두가 콜라를 치운 뒤 55.22달러(6만2000원)로 1.6%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2420억 달러(273조1400억 원)에서 2380억 달러(268조6300억 원)로 줄었다. 이후 주가를 약간 회복했지만 결국 55.41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이후 UEFA는 참가 팀 24개국에 "기자회견장에 놓인 후원사 제품을 치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마르틴 칼렌 유로 2020 디렉터는 "이 문제에 대해 각국 대표팀과 의견을 나눴다. 후원사 수익은 이 대회와 유럽축구의 발전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힘줬다.
그는 "선수들은 각국 축구협회와 대회 규정에 따라야 할 계약적 의무가 있다"며 "UEFA가 선수들에게 벌금 징계를 내리진 않지만, 각국 축구협회를 통해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며 징계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선수와 감독들은 스폰서 제품을 반겨 눈길을 끌었다.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16일 기자회견장에서 코카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호날두와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17일 북마케도니아전에서 1골 1도움을 올린 안드리 야르몰렌코(우크라이나) 역시 책상에 놓인 코카콜라와 하이네켄 맥주병을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다 놓았다.
그는 "호날두가 콜라를 치우는 걸 봤다. 나는 콜라와 맥주를 내 앞에 놓고 싶다"며 "후원사 여러분, 연락주세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간접적으로 호날두를 비판한 셈이기도 하다.
지난 10여년 테니스계를 삼분해 온 또 다른 슈퍼스타 라파엘 나달(35·스페인)의 경우 스폰서를 각별히 챙기기로 유명하다.
기대주로 각광받다 부상 이후 주춤하던 나달은 2004년 기아자동차 스페인 현지 판매법인과 후원계약을 맺은 뒤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나달이 긴 슬럼프에 빠졌던 2015년 기아차는 장기 재계약을 제안하며 힘을 실어줬다.
나달은 그해 독일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메르세데스컵에서 우승한 뒤 부상인 벤츠 스포츠카를 받고는 “기아차는 아니지만 좋은 차”라고 밝히며 화답했다.
기아차는 나달과 오래 동행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효과적으로 높였다. 실제로 나달의 고향인 스페인과 서유럽에서 기아차 판매량은 2004년 18만 대에서 2018년 49만 대로 뛰며 175% 증가했다.
기아차는 지난해 호주오픈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다. 나달이 2회전 경기 도중 자신이 친 공에 맞은 볼걸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고 '볼 키스'로 위로해줬던 장면이 크게 주목 받았다. 볼걸이 입고 있던 유니폼과 담장에 새겨진 기아차 로고, 그리고 기아차 후원을 받는 나달이 겹쳐지는 장면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기아차와 나달은 지난해 후원계약을 5년 연장했다.
나달은 또 지난해 프랑스오픈에선 스위스 시계 브랜드 리처드 밀을 기쁘게 했다.
나달은 리처드 밀에서 특수 제작한, 무게가 30g에 그치는 초경량 손목시계를 차고 경기에 나섰다. 장비 하나하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테니스다.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없는 종목에서 순전히 홍보 목적으로 스폰서 제품을 착용하고 나서는 의리를 보여준 것이다.
나달과 함께 '빅3'로 불리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와 로저 페더러(스위스) 또한 각각 시계 브랜드 세이코, 롤렉스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지만 이들은 경기 중 후원사 제품을 착용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달은 "피부처럼 느껴진다"며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지원해준 리처드 밀 시계를 대회 때마다 차고 등장했다.
이번에 소신을 택한 호날두의 행동은 스타가 스폰서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모범사례가 된 나달과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세계 최고 상업성을 갖춘 스포츠선수로 통하는 호날두가 다음 기자회견에선 어떤 장면을 만들어낼지 관심이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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