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강두원 기자] ‘주목받지 못해도 다시 축구화 끈을 조일 뿐이다.’
올 시즌 K리그도 드래프트 6순위 안에 들어가지 못해 ‘번외지명’으로 팀에 입단한 선수들이 있다. 연봉 2000만원에 자신의 꿈을 맡기는, 흔히 말하는 ‘연습생’들이다
프로구단에 입단을 희망하는 신인선수는 많고 그들을 선택하는 구단은 한정돼 있기에 실력이 조금 부족하면 어김없이 상위 라운드에 지명을 받지 못하고 축구화를 벗는 선수들이 많지만 그래도 ‘번외지명’으로 뽑힌 선수들은 프로구단의 유니폼을 입어보는 영광을 누리지만 그마저도 정식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선수들이 많다.
올시즌 K리그는 '2군 리그'가 완전히 폐지됐기에 그들의 도전 기회 자체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피나는 노력과 밤낮 없는 훈련으로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어 1군 무대를 밟는 선수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이 K리그 무대에 서기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은 절대 그들을 배신하기 않기 때문이다.
◆ 경남 김슬기, ‘연습생 선배, 이용래의 발자취 따라가겠다’
2014 K리그 클래식이 현재 4라운드까지 열린 가운데 연습생으로서 주목 받고 있는 선수가 있다. ‘2014년 연습생 신화는 나의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경남FC의 공격수 김슬기(22)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2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3라운드에서 경남-전남전에서 맹활약한 김슬기는 올 시즌 번외지명으로 경남의 유니폼을 입은 새내기다.
이날 주전 멤버인 이재안(26)을 대신해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김슬기는 선제골의 단초를 제공한 패스와 함께 저돌적인 돌파와 공격진영을 전부 아우르는 폭넓은 활동량을 과시하며 신인 답지 않은 공격을 보여줬다.
경기 중에는 삼촌뻘이라 할 수 있는 전남의 현영민(35)과 기싸움을 벌이는 등 당돌함(?)도 갖추고 있어 팬들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김슬기는 지난 겨울 터키 전지훈련에 동행하지 못했으나 국내에서 훈련을 이어가던 중 코치진에 눈에 띠어 이차만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코칭스태프는 김슬기에 대해 “스피드와 볼 컨트롤이 좋고 어린 나이에도 주눅들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거친 몸싸움도 피하지 않는 저돌적인 면도 갖췄고 드리블과 크로스는 물론 킥도 좋아 코너킥도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약간 볼터치가 긴 부분은 보완해야 할 점이다”라고 말했다.
김슬기는 “프로 입단을 하면서 세상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나에게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히면서 과거 경남에서 ‘연습생 신화’를 썼던 이용래(28)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가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 1년 간 묵묵히 축구화 끈을 조이는 그들 ‘연습생’
번외지명을 통해 ‘연습생’ 신분으로 팀의 입단한 선수들은 연봉 2000만원에 1년 계약을 체결하고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기 위해 그 누구보다 피나는 훈련을 소화한다.
이 중에는 김슬기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용래처럼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내고 ‘연습생 신화’를 써내려간 이들이 있다.
올 시즌 부산의 왼쪽 풀백으로 수비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장학영(33)은 경기대 출신의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미드필더였다. 졸업 후 대전 시티즌에서 테스트를 받으며 입단을 시도했지만 떨어진 후 당시 성남 2군 코치였던 안익수 감독에 눈에 띠며 연습생 신분으로 성남에 입단했다.
그는 한 달에 80만원을 받는 연습생으로 입단했지만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고 포지션도 왼쪽 풀백으로 변경한 후 강철체력과 왕성한 활동량을 뽐내며 2006·2007시즌 성남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또한 2010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수행하면서 챌린저스리그 팀인 서울 유나이티드에 임대돼 선수생활을 하는 등 경기감각과 체력, 활동량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자기관리를 하는 등 K리그의 많은 ‘연습생’들의 표본이 되고 있다.
부산 윤성효(52) 감독은 장학영에 대해 “팀 플레이에 가장 부합하는 영리한 선수이고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갖췄으며 그가 걸어온 길이 말해주듯 매사 성실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7일 제주에서 포항으로 임대영입된 강수일(27)은 K리그의 대표적인 혼혈선수다. 그는 강수일은 홀로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를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드래프트를 통해 인천에 번외지명 된 또 하나의 연습생 출신 K리거다.
2008년 R리그에서 4골 6도움으로 MVP를 수상하며 주목을 받은 그는 2009년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가 축구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역시 혼혈선수라는 이유로 자신의 모욕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위해 분한 마음을 꾹 참고 오로지 축구에만 전념했다. 지금은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시로 국내 팬들에 사랑 받고 있는 선수 중 하나다.
김슬기의 롤모델인 이용래는 어린 시절 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유학프로그램에 선발돼 프랑스 FC메츠로 유학을 다녀온 유망한 선수였다. 그는 유소년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축구 명문 고려대에 입학해 탄탄대로를 보장받나 했지만 U-20 월드컵 연습경기 도중 발목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고 이후에도 무릎, 골반 등에도 부상이 이어지며 경기력이 크게 저하됐다.
대학 졸업 후 드래프트에 나왔지만 아무도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고 번외 지명으로 경남에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한 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망주라고 불렸던 자신이 번외지명으로, 연습생으로 입단한 것이 이용래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고 훈련에 매진하며 몸상태를 끌어올린 그는 2009년 K리그 개막전 선발 명단에 연습생 신분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연습생 신화’의 시작을 알렸고 2011년 K리그 명문 구단인 수원으로 이적했으며 그 해 1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컵에 출전하며 신화의 정점을 찍었다.
◆ 이제 ‘연습생’은 사라지지만 사정은 더욱 열악해질 수도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각 구단의 신인선수선발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드래프트제는 2016년 끝으로 폐지되고 이후 자유선발만으로 신인선수를 영입하게 된다.
이는 나름의 명과 암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드래프트제의 폐지는 곧 번외지명이라는 조항의 폐지로 이어질 것이며 연봉 2000만원에 1년 계약을 맺고 언제 방출당할지 모르는 초조함 속에 운동을 이어나가는 선수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번외지명을 통해 구단에 합류했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방출된 많은 선수들이 듣는다면 화색이 돌 소식인 것이다. 항간에는 번외지명이라는 제도가 젊은 선수들에게 프로에서 뛴다는 희망을 안겨주지만 막상 뛸 수 있는 무대로 갖춰놓지 않고 선수만 선발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곤 했다.
반면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가 더 적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낮은 연봉을 받는 것이 당연지사다. 하지만 자유선발로 변경된다면 이전에는 번외지명을 통해 정해진 연봉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적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선수 본인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 해서 프로 진출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선수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구단의 ‘갑’의 위치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전까지는 선수수급을 위해 실력이 부족해도 번외지명으로 영입해 일정금액을 줘야 했지만 이제는 실력에 맞는 연봉 수준을 책정해 선수와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돼 구단으로서는 좀 더 높은 위치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노력해 ‘신화’를 만든 연습생 출신 K리거들. 이제는 이런 눈물나는 스토리보다는 유소년 시절부터 체계적인 관리와 육성을 통해 초기부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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