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개막한 지 이틀째 되던 지난 1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CGV 고양백석.
평일 오후 5시인데 110여 석의 상영관이 가득 들어찼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고 축구단 마크가 새겨진 마스크를 착용하고 온 관객도 눈에 보였다. 스크린에 펼쳐진 다큐멘터리는 ‘수카바티’. 프로축구 FC안양의 공식 서포터즈 ‘A.S.U. RED’의 역사와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수카바티(Sukhāvatī)는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이라는 의미다. 경기도 안양(安養)의 지명 뜻과도 같다. FC안양이 응원 구호를 수카바티로 정한 이유다. RED는 1996년 LG 치타스(현 FC서울)가 안양을 연고지로 정한지 1년 뒤인 1997년 4월 탄생했다. LG는 2000년 K리그 우승을 하며 강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용수, 이영표, 서정원, 정조국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활약하고 거쳐 갔다.
하지만 LG는 2004년 2월 갑작스럽게 연고지를 서울로 변경하며 안양을 떠났다. RED와 안양 시민들은 이에 큰 반발을 하고 시위를 벌였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축구 팀을 잃었다.
안양에 프로축구팀이 생긴 건 그로부터 9년 뒤. RED와 시민들이 힘을 합친 덕에 2013년 시민구단 FC안양이 창단됐다. 안양에 축구 바람이 다시 불었고 서포터즈도 관중석에 힘껏 목청을 높였다.
수카바티를 제작한 나바루(39·본명 나현우), 선호빈(42) 감독은 RED와 프로축구 서포터즈의 현재와 과거, 축구에 모든 걸 바친 ‘축덕’(축구 마니아)들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안양시의 역사와 잘 버무려 102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한 RED의 서포터는 “나한테 RED는 내 삶”이라며 “이걸로 인해서 행복했으면 좋겠고 슬펐으면 좋겠고 그냥 그것”이라고 말한다.
이날 영화가 끝나고 열린 스페셜 토크에서 나바루 감독은 “처음에는 축구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서 약간 축구에만 집착했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인간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FC안양의 선수와 팬, 감독과 선수의 팬 같은 관계들이 파라다이스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구단의 서포터들을 접촉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공식 루트로 가면 만나기 힘들더라”고 웃었다. RED 서포터가 친한 다른 팀 서포터를 소개해줬다고 했다. 선호빈 감독도 “공식 홈페이지에 (나온 서포터즈 번호로) 전화하면 안 된다. (서포터의) 결혼식 갔다가 (다른 팀 서포터를) 섭외했다”고 했다.
나바루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저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FC안양을 찍기 전에는 영화를 계속할지 그만둘지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지쳐있었고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며 “이 사람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기던 지던 자기 팀 선수나 감독을 변함없이 응원해주는 보며 패배자였던 제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이분들도 이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RED는 16일 수카바티 상영 때 단체관람을 하며 상영관 관객석을 가득 메웠다. FC안양 구단주인 최대호 안양 시장도 이날 상영에 참석했다.
나바루 감독은 17일 스포츠Q와의 인터뷰에서 “3살 때부터 (30년 가까이) 살았던 안양에서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막연하게 안양 곳곳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이라고 했다.
“안양 특산물이 포도잖아요? 포도농장을 카메라로 찍고 내려오다가 FC안양이 경기를 하고 있는 걸 보게 됐어요. 경기장에 들어가 반대편에서 서포터즈를 지켜봤죠. 유니폼 색깔이 포도의 보라색이거나 안양이라는 지명 용어가 불교에서 오거나 하는 얘기를 알게되니 재밌었죠. 호기심이 들어서 적극적으로 서포터즈를 찍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선호빈 감독에게 공동 연출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말에 서포터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RED와 관련한 영상을 찍겠다고 찾아왔지만 중도에 중단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나바루 감독은 술까지 마시며 그들과 어울렸고 이들의 마음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서는 좀 더 편하게 촬영을 위해 FC안양 홈구장인 안양종합운동장 근처로 집을 구했다. 친한 서포터들이 지금도 가끔 잔다고 한다.
나바루 감독은 2019년 4월부터 영상을 찍기 시작했고 최근까지도 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수카바티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 경기를 치렀던 시기까지를 주로 다룬다.
나바루 감독은 “FC안양의 얘기지만 다양한 서포터즈의 군상을 보여주며 (과거) 그 당시 시대의 젊은이들을 보여준다”며 “중요한 건 그 당시 러브스토리 같았던 팬들의 마음이었다”고 했다.
수카바티는 오는 20일 영화제 마지막 상영을 앞두고 있다.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도 예정돼 있다.
나바루 감독은 후속작 ‘두 번째 그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2020년 12월부터 팀 사령탑을 맡은 이우형 감독과 선수들의 얘기를 주로 담는다. 지난해 정규리그 3위에 올라 승격 플레이오프를 거쳐 창단 첫 1부리그 진출의 꿈을 키웠으나 아쉽게 실패했던 경기 현장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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