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김진수 기자] 태권도 김유진(24·울산시체육회)의 롤 모델은 ‘배구 황제’ 김연경(36·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이다. 카리스마와 강한 정신력을 가진 김연경의 멘털적인 부분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키가 183cm인 김유진은 192cm로 프로배구에서 최장신급인 김연경처럼 태권도계에서 키가 큰 편이다.
김연경처럼 강해지려고 노력한 덕분일까. 그는 세계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하고 세계 정상에 섰다.
김유진(세계랭킹 24위)은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태권도 57㎏급 결승전에서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세계 2위)를 라운드 점수 2-0(5-1 9-0)으로 꺾고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언더독의 반란’이다. 세계랭킹 ‘톱5’ 중 4명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김유진의 세계랭킹은 24위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57kg급 출전한 16명의 선수 중 12위다.
김유진은 16강에서 하티제 일귄(튀르키예·세계 5위), 8강에서 스카일러 박(캐나다·세계 4위)에게 한 라운드도 내주지 않고 격파했다.
준결승이 최대 고비였다. 상대는 세계 1위 뤄쭝스(중국).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석권한 강자다. 이번 올림픽에서만 금메달을 따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김유진은 1라운드에서 7-0으로 이겼지만 2라운드에서 뤄쭝스의 발차기 공격에 흔들리며 1-7로 졌다. 하지만 3라운드에서 초반에 머리 공격만 3번 성공하며 세계 1위를 꺾었다.
김유진은 경기 후 "진짜 운동을 관두고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 한탕, 한탕 나갈 때마다 정말 지옥 길을 가는 것처럼 했다"며 "정말 나 자신을 몰아붙이면서 혹독하게 했다"고 말했다. 체중 감량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계속 먹지 못했다는 그는 “삼겹살에 된장찌개와 맥주를 먹고 싶다”고 웃었다.
김유진의 여자 태권도 57kg급 금메달은 한국의 올림픽 16년 만의 쾌거다. 한국은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도입된 2000 시드니 대회 때 정재은을 시작으로 장지원(2004 아테네 대회), 임수정(2008 베이징 대회)이 이 체급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2 런던과 2016 리우, 2020 도쿄 대회에서는 메달 자체가 안 나오면서 부진했다.
사실 김유진은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대한태권도협회 내부 선발전과 대륙별 선발전을 거쳐 올림픽에 출전했다. 대표팀 동료 박태준(경희대·세계 5위), 서건우(한국체대), 이다빈(서울특별시청·이상 세계 4위)과 달리 세계랭킹은 떨어졌다. 발목 부상 때문에 국제대회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에서 보란 듯이 랭킹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유진은 8살 때 태권도를 시작했다. 호신술을 배우라는 할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키워준 사람은 할머니라고 했다. 서울체고 시절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돼 2016년 캐나다 버나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여자부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걸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금메달을 딴 뒤 "할머니! 나 드디어 금메달 땄어. 너무 고마워. 나 태권도 시켜줘서!"라고 외쳤다.
남자 58㎏급 박태준과 김유진이 금빛 발차기를 해내면서 한국 태권도는 파리에서 자존심 회복에 성공했다.
2020 도쿄 대회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로 ‘노골드’의 수모를 이번에 지웠다. 도쿄 올림픽은 한국 태권도가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지 못한 대회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미국 스포츠전문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한국 태권도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딸 것이라는 아쉬운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국은 두 체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전망을 뒤집었다.
태권도에서 금메달이 더 나올 수 있다. 남자 80㎏급 서건우와 여자 67㎏초과급 이다빈(서울시청)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