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낯선 이와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상대가 가진 역사로부터 내 역사가 단단해지거나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하물며 스쳐 지나가는 아무개의 모습에도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지 않는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고정관념은 관계맺음에서 오는 상호 작용과 자기 성찰로 전복된다. 만남 후에 오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달라진 나'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두 주인공 홍과 준고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만남 속에 서로를 알아가고,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며 변화한다.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헤어진 두 사람이 한국에서 재회하는 장면과 첫 만남 장면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더 이상 그 시절의 홍과 준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준고를 연기한 사카구치 켄타로 역시 이세영과 문현성 감독, 한국 스태프들을 만나며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경험을 새롭게 쌓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낯선 이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체험했다. 그러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만난 이후의 그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그의 삶을 이루는 아주 작은 일부라도 분명히 달라졌을 테니.
지난달 27일 첫 공개 후 매주 금요일 새로운 회차를 선보이고 있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유학을 결정한 한국인 홍(이세영 분)이 우연히 글을 쓰는 일본인 준고(사카구치 켄타로 분)를 만나면서 애절한 사랑과 이별을 겪은 후 5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 작가' 공지영과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 집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국 배우' 이세영과 '일본 배우' 사카구치 켄타로가 두 주인공을 맡았다. 여기에 '한국 스태프'와 '일본 스태프'가 한국-일본을 오가며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기존 한일 합작 작품과 달리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에 일본이 참여한 형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등장과 함께 콘텐츠의 국경이 허물어진 덕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작품 공개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만난 사카구치 켄타로는 "최근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가 부상하면서 콘텐츠를 여러 매체에서 공개할 수 있게 됐다. 일본 작품을 동시기 한국에서 만나볼 수 있고, 한국 작품도 일본에서 빠르게 시청할 수 있다"며 "이런 시스템 덕분에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스태프들과 함께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기쁘다"고 밝혔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생기면서 국가 간 장벽이 낮아졌죠. 예전에는 일본에서 훌륭한 작품이 탄생해도 일본 극장에서만 관람할 수 있었잖아요. 훌륭한 작품이라도 누군가 찾아주고 봐주지 않는다면 그 가치는 탄생할 수 없어요. 스트리밍 서비스가 시청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젊은 시청자를 겨냥해 러브스토리 위주로 양국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향후에는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한국-일본 간 글로벌 콘텐츠 제작 흐름에 'Eye Love You'(아이 러브 유)와 우리 작품이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준고가 5년간 홍을 마음속에 담아뒀다면, 사카구치 켄타로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영상화되기까지 꽤 오랜 작품을 마음에 담아뒀다. 드라마 제작에 앞서 영화화를 계획 중이던 문현성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변함없는 마음을 유지한 것.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제작 결정이 났을 때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출연을 확정했다.
사카구치 켄타로는 "대본을 처음 읽고 국경을 뛰어넘는 국가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고와 홍 두 사람 사이 언어의 장벽이 있어도 결국 사랑으로 연결된다"며 "물론 부담은 있었다. 한국 스태프들 안에서 홀로 연기를 해야 해서 제가 그동안 일본에서 쌓아온 경험과 감정이 잘 통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그렇지만 감독님의 열정에 마음이 동했다. 이런 감독님이면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었다"고 출연 결정 계기를 설명했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제작 형식이 변경된 건에 대해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준고와 홍의 다양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었다. 2시간 분량의 영화였다면 두 사람이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이별을 겪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사랑을 확인하는 긴 감정의 흐름을 담을 수 없었을 거다. 영화는 일부를 잘라내야 했을 것"이라며 "하나의 사랑을 다양한 감정으로 보여줘야 하는 작품이어서 시리즈가 적합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준고와 홍처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사카구치 켄타로와 이세영은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통역에 기대기보다 서로의 언어를 일상처럼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사카구치 켄타로는 극중 한국어 대사가 없음에도 촬영장 내에서 최대한 한국어를 사용하려고 했다고.
그는 "평소 스태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지 항상 고민했다"며 "현장에서는 이세영 배우가 일본어를 썼고 제가 한국어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의식하지 않고 말하는데 스태프들이 '왜 한국어로 말하고 있느냐'고 할 정도였다"며 "촬영을 하면서 언어의 벽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느꼈다.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고 한국 작업에서 느낀 바를 전했다.
하루하루 현장에서 새롭게 쓸 수 있는 단어를 외웠다는 그는 "촬영 직전 조감독님의 무전기를 빌려 '화이팅할게요'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매번 촬영 시작과 끝에 한국어 멘트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마지막 컷을 찍고 있으면 조감독님이 무전기를 들고 대기하고 있더라.(웃음) 이것이 한국어 실력이 는 이유 아닐까"라고 회상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어 표현은 '맛있게 드세요'였다. 그는 "촬영 도중 점심 먹으러 갈 때 스태프들이 매번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이 표현이 인상 깊었다"며 "일본은 밥을 먹은 뒤 '밥은 맛있었어?' 등의 이야기를 한다. 밥 먹기 전에 '맛있다'라는 표현을 곁들이지 않는다. '밥 먹으러 다녀와'와 비슷한가 싶으면서도 그 정서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말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인터뷰 말미, 준고처럼 오랜 시간 무언가를 마음에 품어본 적이 있냐고 묻자 "배구"라고 답했다. 그는 학창시절 배구부 주장으로 활약할 만큼 실력 있는 선수였다. 사카구치 켄타로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특정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진다.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집중했던 것은 배구가 아닐까. 학교 동아리로 배구를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연습에 매진했다. 힘들기도 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카구치 켄타로가 출연하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쿠팡플레이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