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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웸블리' 목표, 첫 결승전 성과와 과제 [코리아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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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웸블리' 목표, 첫 결승전 성과와 과제 [코리아컵]
  • 신희재 기자
  • 승인 2024.12.0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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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신희재 기자] “앞으로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중립 경기를 계속하면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이 열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처럼 상징성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올해는 처음이라 애매했던 걸 제대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 (포항팬 김원준 씨)

지난달 3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하나원큐 코리안컵 결승전. 포항 스틸러스와 울산HD의 ‘동해안 더비’를 보기 위해 2만7184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이날 경기의 가장 큰 특징은 중립 지역에서 단판으로 결승전이 개최된 점이었다.

코리아컵 결승전. [사진=KFA 제공]

대한축구협회(KFA)는 지난 2월 FA컵의 명칭을 코리아컵으로 바꾼 뒤 결승전 방식을 홈 앤드 어웨이가 아닌 단판, 장소를 올해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정했다. KFA는 “잉글랜드 FA컵은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코리아컵 결승전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경기장에서 치르는 전통을 정착시킬 것”이라 설명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특히 결승전에 오른 두 팀 모두 비수도권팀이라 연고지 팬들에게 부담이 큰 상황이었다.

포항 응원석 카드 섹션. [사진=신희재 기자]
울산 응원석 깃발 응원. [사진=신희재 기자]

다행히 흥행에는 성공했다. 경기 전부터 포항과 울산 팬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 덕분이다. 포항은 관광버스 75대, 울산은 관광버스 19대에 KTX 300여 석을 사전 예매해 서울로 이동했다. 포항은 POSCO, 울산은 HD 등 모기업 고위 관계자를 비롯한 임직원 2000여 명이 참석해 힘을 보탰다.

경기 당일 관중석에는 장관이 펼쳐졌다. 기자석 기준 왼쪽은 포항의 붉은 물결, 오른쪽에는 울산의 푸른 파도가 넘실댔다. 경기 전 포항은 카드 섹션, 울산은 깃발 응원을 펼치며 분위기를 더 뜨겁게 달궜다.

기대 이상이었던 경기장 분위기에 감독과 선수 모두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판곤 울산 감독은 “오늘 코리아컵 구성이 포항 반, 울산 반이었는데 파란 물결의 좋은 응원을 많이 받았다”며 “울산 팬들의 충분한 응원 속에서 경기를 치렀으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다. 내년에는 반드시 코리아컵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태하 포항 감독은 “많은 포항 팬이 추운 날씨에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응원하러 오셨다”며 고마워했다. 코리아컵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포항 공격수 김인성은 “오늘 타지인데도 정말 많은 팬이 경기장을 가득 채워 주셨다. 몸 풀 때부터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색 풍경에 만족했다.

울산 응원석 절반이 관중 이동 문제로 비어있다. [사진=처용전사 공식 SNS 갈무리]

관중몰이엔 성공했지만 옥에 티는 KFA의 운영이었다. 울산 서포터즈 ‘처용전사’는 3일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해 KFA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관중 입장이 시작된 뒤 ‘경기장 지붕에 쌓인 눈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울산 응원석인 S석 절반을 통제, 관중들을 강제 이동시킨 데 대한 불만이다.

실제로 이날 경기 중에는 전광판을 통해 일부 구역의 안전 문제로 좌석 이동을 요구하는 안내 방송이 수차례 나와 의문을 자아냈다. 처용전사는 “좌석을 강제로 옮길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면 입장 시간을 미뤄 정비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며 “문제가 발생한 구역의 예매자들에게 상황을 사전에 전달하고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그러나 KFA는 ‘강제 이동’이라는 일차원적인 대응을 했을 뿐, 이동할 좌석의 구체적인 위치와 절차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고 성토했다.

처용전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S석 절반이 공석이 된 사진을 공개했다. 이날 울산 팬들이 겪은 불편은 유튜브, 울산 팬 커뮤니티 울티메이트 등을 통해 상세하게 알려졌다. 앞서 KFA는 "코리아컵 결승전을 A매치에 버금가는 이벤트로 준비하겠다"고 공언했으나 경기 준비와 사건 대응 과정에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채운 포항과 울산 팬들 다수는 KTX 기준 왕복 5시간, 버스 기준으로는 왕복 12시간 이상을 내달려 경기장을 찾았다. 표면적으로는 중립 경기지만 두 팀 모두 KFA 정책에 따라 장거리 원정을 감수한 셈이다. 더군다나 내년 이후 수도권 대 비수도권 팀의 구도가 잡히면 형평성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FA컵 결승전이 열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은 축구 팬들에게 장거리 이동을 감수할 만한 가치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성지로 불릴 수 있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한국 축구의 성지가 되려면 경기장의 규모와 입지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코리아컵 결승전을 주최하는 KFA의 보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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