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자 Tip!] ‘공’은 많은 이들을 미치게 한다. 스포츠팬들은 공의 궤적, 흐름 하나하나에 열광한다. 구기 종목 중에는 물속에서 열리는 수구도 있다. 수구는 한 마디로 ‘수중 핸드볼’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생소하지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종목이다. 격렬한 몸싸움과 빠른 공수전환으로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국 수구대표팀은 오는 9월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포츠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 한다. 몸짱 ‘짐승남’들을 만나 정열의 수구 이야기를 들었다.
[진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노민규 기자] “손 들어야지 손!”, “압박! 압박!”
안기수(54) 한국 수구대표팀 감독의 목소리가 수영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파란 모자를 쓴 7명, 흰 모자를 쓴 7명이 쉴새없이 물살을 가르며 공수를 전환한다.
수비가 대형을 이루고 이내 공격팀이 패스를 주고받는다. 센터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레슬링이나 다름없다. 혈투에서 진 선수의 머리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센터를 점유한 선수가 강슛을 날려 골망을 흔든다.
잠시 쉬는 시간. 남성미 넘치는 건장한 체격의 선수들이 밖으로 나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더니 금방 다시 물속으로 뛰어든다.
수구. 쉽게 말하자면 ‘수중 핸드볼’이다.
한국 수구대표팀은 오는 9월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값진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강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 “나는 메달이 고프다”, 안기수 감독의 간절함
“온통 수구만 생각합니다. 자다가도 깨서 메모해요. 어떤 전술이 잘 먹힐지 궁리하고.”
안기수 감독은 1세대 수구인이다. 30년 전의 짜릿했던 기억은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선수 시절인 1984년 제2회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목에 걸었던 금메달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한국 수구는 1986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간혹 아시아 3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이후 아시안게임 메달은 없었다. 2010 광저우 대회에서는 아쉽게 4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번만큼은 최소 메달권, 그 이상을 꿈꾼다.
그는 “그로부터 30년 5개월이 지났다. 지도자로서 일본과 중국을 물리치고 메달을 따는 그림을 늘 상상해왔다”며 “진심이자 소망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인천 아시안게임 수구에는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을 비롯해 홍콩,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이란,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등이 참가한다.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이 아시아 3강인데 이들은 물고 물리며 묘하게 얽혀있다. 한국은 이 틈새를 노린다. 더군다나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다.
대표팀의 하루는 오전 4시50분에 시작된다. 5시10분부터 7시까지 아침훈련을 한 후 9시30분부터 12시까지 오전 훈련을 소화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3시30분부터 7시까지 오후 훈련을 진행한다. 8시간에 걸친 강훈련이다.
안 감독은 “빠른 수영은 기본이다. 수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며 “특히 경기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진천선수촌 트레이너의 지도로 오후 2시간씩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스포츠팬들과 체육계 관계자에게 수구를 널리 알릴 절호의 기회”라며 “수구인들이 기대하는 바를 알고 있다. 메달로 보답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안 감독은 14일부터 나흘간 광양에서 열리는 전국수구선수권대회를 지켜보고 아시안게임에 나설 최종 엔트리 13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 올해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도전의 신호탄, “아시안게임은 절호의 찬스다”
2019년 광주에서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안 감독은 아시안게임은 물론이고 5년 뒤를 조준하고 계획을 짰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세계와의 격차를 단시간내에 줄일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안 감독의 구상에 발맞춰 선수들도 하나된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2019 세계선수권을 향한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대표팀의 유일한 유부남인 주장 김원민(31)은 “홈이라는 조건이 좋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아시안게임인데 당시보다 멤버 구성이 좋다”며 “연령대가 낮은 선수들과 잘 소통해 좋은 성과를 이뤄내고 싶다”고 밝혔다.
형제 선수인 송근호(29)와 송원호(25)의 각오도 남다르다. 둘은 2010 광저우 대회에 이어 두 번째 동반 출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당시에는 3·4위전에서 일본에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한 기억이 있다.
송근호는 “동생은 신체조건이 탁월해 힘이 좋다”라며 “기술력만 좀 더 보완하면 더 많은 골을 터뜨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칭찬했다. 송원호는 “형은 우수한 키퍼다. 뒤가 든든하다”며 보답했다. 둘은 “운동량이 많아서 힘들긴 하지만 이번 대회는 남다르다”며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막내 중 한 명인 이민규(21)는 “형들이 매우 잘해준다. 분위기가 최고조”라고 웃으며 “선배들을 따라 잘 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 어렵사리 이어온 수구의 명맥, “국제대회 경험만 있다면”
안 감독은 누구에게 제대로 수구를 배운 적이 없다. 가끔 나가는 국제대회에서 어깨너머로 외국팀의 훈련 방법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수구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그는 책자, 동영상을 모조리 찾아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는 테이블에는 A4 용지가 빼곡히 쌓여있다. 'OX'를 수없이 반복해 그리며 공부한 흔적이 보였다. 전반적인 전술 공부는 물론이고 득점을 얻는 다양한 방법, 지도 역량 등을 모조리 찾아 학습했다. 그는 그렇게 한국 수구의 명맥을 이어왔다.
모두 모여 헤엄치고 공을 던지던 수준의 대표팀은 그의 노력에 힘입어 포지션별로 특화된 훈련을 하고 있다.
안 감독은 “2011년 진천선수촌이 생기며 수구대표팀이 입촌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며 ”지금은 웨이트장이 갖춰져 있고 전문 트레이너까지 있는 선수촌 환경이 만족스럽다“고 털어놨다.
현재 국내 수구팀은 고교부에서 8개, 대학일반부에서 6개가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종목으로서 전국체전에서도 굳건히 정식종목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 지도법과 훈련 환경이 크게 개선된 수구계가 이제 필요한 것은 바로 ‘국제대회 경험’이다.
이현규(29)는 “경기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 실전 경기가 많았으면 한다”며 “그 부분만 보완되면 우리는 충분히 더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수영연맹은 이같은 문제점에 크게 공감해 지난 4월 대표팀에게 호주 전지훈련 기회를 줬다. 호주 클럽팀에 번번이 패하던 예전과 달리 시스템화된 훈련을 받기 시작한 대표팀은 여러 차례 승리하고 돌아오는 성과를 얻었다.
안 감독은 "아시안게임 전에 호주의 클럽팀을 진천에 초청하고 싶다.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연맹에 적극 건의할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이어 "연맹 지원금, 숙식 등 비용 문제가 늘 발목을 잡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면서도 "수구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다.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국제대회 출전 기회들이 지속적으로 주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매력 덩어리, "섹시하지 않아요?"
“보시니까 아시겠죠?”
안 감독이 자신있게 수구의 매력을 어필한다. 경기를 보다보니 왜 그렇게 자신있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거친 몸싸움과 빠른 공수 전환은 박진감이 넘친다.
“무엇보다도 섹시하지 않나요?”
대표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선욱(24)은 수구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 “섹시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인 1조 잡기 훈련, 5kg에 달하는 메디신 볼을 들었다놨다 하는 훈련 과정을 살펴보니 선수들이 모두 ‘몸짱’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구 선수들은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2~3kg가 빠질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격렬하고 다이내믹한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하루 2시간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화한다. 지상에서보다 7배 힘이 드는 물에서 움직이니 살이 찔 수가 없다.
이현규는 '생소한 스포츠'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그는 수구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그게 뭔데”라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면 하나같이 멋지다는 반응이 돌아오더라”며 종목 홍보에 적극 나섰다.
안 감독은 수구의 운동효과도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는 수영과 달리 수구는 앞뒤좌우로 움직인다”며 “상하체가 고루 발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근육량을 늘리고 골반, 복근을 강화시켜주는데 일품”이라고 설명했다.
■ 수구는
수심 2m 이상인 수영장 코트에서 7명(필더 6명, 골키퍼 1명)으로 구성된 2팀이 서로의 골대에 공을 넣어 점수를 겨루는 경기다. 6명의 교체요원이 있어서 총 13명으로 한 팀이 구성된다. 8분씩 4피리어드 경기를 치른다. 머리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이 물속에 잠겨서 하는 경기라 상대팀과 물속에서 몸싸움을 하는 매우 격렬한 경기이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남녀 메달이 하나씩 걸려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여자 수구대표팀은 없다.
■ 수구 대표팀은
안기수 감독, 정윤석 코치, 송근호 이승훈 김원민 이현규 정주화 유병진 강준원 이선욱 송원호 박정민 추민종 윤영관 이현우 이민규 이상호 등 15명이 훈련중이다. 전남 광양에서 열리는 전국수구선수권대회를 통해 곧 13명의 최종엔트리가 발표된다.
[취재 후기] 여자 수구는 올림픽에서 생중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몸싸움이 워낙 격렬해 어떤 노출사고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훈련과정을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선수들의 팔, 어깨에는 미세한 상처들이 많았다. 격렬한 몸싸움은 물론이고 한 골을 뽑아내기 위한 위치 선정, 공간 활용 등 두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어느 종목이나 죽을 힘을 다한다는 것을 알지만 수구 선수들의 운동량은 그 중에서도 최상위권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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