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권대순 기자] 아직 이승훈(26·대한항공)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19일 오전(한국시간)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이 종목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 이승훈이 13분11초68의 기록으로 4위에 올랐다. 금,은,동메달을 휩쓴 네덜란드의 돌풍에 밀려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8일 5000m에서 6분25초61로 12위에 그쳐 아쉬움을 삼켰던 것에 비하면 훨씬 좋은 성적이었다.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은 아시아인의 볼모지나 다름없다. 4년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은 아시아선수 최초의 쾌거였다. 이승훈이 비록 메달은 아깝게 놓쳤지만 4위 성적도 빛나는 이유다.
이번 대회는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남녀 부문 가리지 않고 금,은,동메달을 휩쓸고 있다. 5000m가 그랬고 1만m도 마찬가지였다. 이승훈은 이날 그들 바로 아래 위치했다.
특히 레이스 중반까지 30초대 랩타임을 유지하며 선전을 펼쳤기에 막판 뒷심 부족이 아쉬웠다. 이승훈은 레이스 뒤 방송 인터뷰를 통해 “초반에 조금 오버페이스 한 것같다. 훈련 때는 이 정도 기록이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해 페이스를 맞췄는데 오늘 레이스를 하다보니 (앞선 선수들의) 기록이 좀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실제 이승훈은 9바퀴를 돌 때까지 30초대의 랩타임을 유지하며 1위 요리트 베르그스마의 기록보다 앞섰다. 10바퀴를 돌며 31초31로 기록이 떨어졌던 그는 11바퀴 째 곧바로 30초74로 페이스를 올렸으나 이후에는 속도가 떨어졌고, 결국 3위였던 밥 데 용의 기록에 4초49 뒤진 13분11초68로 레이스를 마쳤다.
오버페이스를 한 것도 그에게 메달을 따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5000m 보다는 잘했지만 그래도 기대에 못 미쳤다”고 전한 그는 “메달 욕심을 냈었는데”라며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 그 아쉬움을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이승훈이 주력으로 준비해온 팀추월 종목이 다.
팀추월은 3명으로 이뤄진 두 팀이 400m 트랙을 각각 다른 지점(출발선과 200m지점)에서 같은 방향으로 출발한다. 남자는 3200m, 여자는 2400m를 각각 달리며 마지막 주자가 그 팀의 최종 성적으로 기록되는 경기다.
이 종목 역시 네덜란드의 강세가 계속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이번 시즌 월드컵 1~4차 대회를 모두 우승하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가장 최근 열린 4차 대회 당시 한국은 3분41초92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1위 네덜란드와는 고작 0.46초. 이정도면 해볼 만한 경기라는 판단이다.
김철민, 주형준과 함께 출전하는 이승훈은 “가장 자신있어 했던 종목이 팀추월이다”라며 “5000m보다 1만m가 나아졌듯이, 팀추월에서 더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승훈은 한국선수단에서 가장 오랫동안 소치를 지키고 있다. 대회 첫날부터 폐회 전날까지도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개막일인 지난 8일 5000m, 19일 1만m에 나섰다. 이제 21일 오후 10시30분 팀추월 예선에 나선다. 예선을 거쳐 준결승까지 통과한다면 22일 오후 10시50분 결승에 출전하게 된다. 14일간 무려 5차례의 레이스에 나서는 강행군일정이다.
이승훈이 대회 첫날 첫 단추를 잘 끼지 못한 뒤 절치부심한 끝에 두번째 도전에서 4위까지 페이스를 끌어올린 상승세를 이어 대회 폐막 하루 전날 한국선수단에 마지막 메달 소식을 안겨줄 지, '철인' 이승훈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집념으로 볼 때 소치의 도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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