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8년 만에 값진 승리를 거두며 대회를 마감했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계최강 독일을 격파하며 많은 감동을 안겨줬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에만 도취돼 있을 수는 없다. 스포츠Q는 이번 대회 한국 축구가 남긴 의미와 보완점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한국 축구가 큰 대회를 치를 때마다, 그리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두지 못할 때마다 가장 먼저 문제로 지적된 건 ‘수비 불안’이었다.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선수들의 능력을 이겨내지 못했고 골키퍼 또한 내줄 만한 골들은 ‘역시나’ 다 먹히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예외는 없었다. 권창훈(디종)이 부상으로 빠졌다고는 해도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나고 있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필두로 황희찬(레드불 잘츠부르크), 이승우(헬라스 베로나), 이재성(전북 현대) 등이 이뤄낼 공격력은 기대를 모았다. 후방에서 양질의 패스를 찔러 넣어 줄 기성용(뉴캐슬 유나이티드)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 탄탄한 미드필더진도 있었다.
반면 수비진은 이름값만 보더라도 많이 떨어졌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전무했다. 베스트 라인업으로 평가를 받은 포백 라인 박주호(울산 현대)-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장현수(FC도쿄)-이용(전북)은 모두 소속팀에서 아시아권 선수들을 상대로만 활약한 이들이었다. 대회 내내 골문을 지킨 조현우(대구FC)는 큰 무대 경험이 전무했다. 월드컵에 나서기 전까지 A매치 경험이 단 6경기에 불과했다.
물론 축구는 이름값으로 하는 게 아니지만 이들이 구성하는 한국의 수비는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대회 직전 치른 4차례 평가전에서 5골을 내줬는데 무실점한 2경기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57위)보다 더 낮은 볼리비아(59위)와 온두라스(62위)였다. 물론 두 국가 모두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베스트 전력으로 나선 3월 유럽 원정에서도 폴란드에 3골, 북아일랜드에 2골을 내주며 졌다. 단순히 많은 골을 내준 것보다 먹히지 않아도 될 장면에서 실점하는 패턴이 반복돼 더욱 우려를 키웠다.
스웨덴과 치른 운명의 조별리그 첫 경기. 한국은 예상 외로 탄탄한 수비를 보였다.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불운하게 결승골을 헌납했지만 필드골 실점은 없었다. 실언과 잦은 실수로 불안감을 키웠던 김영권의 반등이 놀라웠다. 그를 바탕으로 한국의 수비진은 몸을 날리는 투혼을 불사치 않으며 스웨덴의 예봉을 꺾었다.
대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승규(빗셀 고베)에 밀려 ‘넘버2’로 평가를 받았던 조현우의 선방 또한 눈부셨다. 스웨덴전에도 믿기지 않는 선방을 수차례 해냈다. 대표팀의 적은 실점 기록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다.
멕시코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2경기 연속 페널티킥을 내주며 선제 실점했지만 1차전과 달리 위협적인 역습을 펼치면서도 수비는 안정적이었다. 김영권은 스웨덴전 이후 완전히 자신감을 찾은 듯 했고 이용 또한 투쟁적인 플레이로 멕시코 에이스 이르빙 로사노의 활약을 저지했다. 페널티킥을 내준 장현수와 1차전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김민우 등이 자신감을 잃은 듯 위축된 플레이를 펼치기는 했지만 한국 수비는 전반적으로 안정감이 넘쳤다. 2번째 골을 먹힐 때 나온 심판의 오심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었다.
독일전이 백미였다. 세계최강 독일은 유럽 지역예선에서 10전 전승을 거둔 팀이었다. 10경기에서 43골을 몰아친 가공할 위력을 지닌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수비는 위축되지 않았다. 스웨덴, 멕시코전과 마찬가지로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가 빛을 발했다. 장현수 대신 센터백으로 나선 윤영선(성남FC) 또한 든든한 면모를 보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조현우의 선방은 달리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결국 한국은 3경기에서 3골을 내줬다. 이는 16강에 진출하지 못한 국가들 중 이란, 페루(이상 2실점)에 이어 3번째로 적은 실점이었다.
한국의 역대 월드컵 역사를 봐도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2002년 4강 신화를 써냈던 한일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들은 조별리그에서 2승 1무 조 1위로 16강에 올랐는데 당시 3경기에서 단 1골만을 내줬다. 그러나 원정 첫 16강에 진출했던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서도 조별리그 3경기에서 6골을 내줬고 직전 대회인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6실점을 기록했다.
결과로만 따지면 러시아 월드컵 한국의 수비는 2002년 이후로 가장 탄탄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단순 수치로만 비교 우위를 가리기는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수비에 있어서 만큼은 당초 걱정했던 것과 달리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도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수들도 적지 않게 나왔지만 합심해서 상대에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아쉬운 플레이로 페널티킥을 내주기도 했지만 필드 플레이에선 견고한 수비를 자랑했다. 이러한 안정감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김영권, 윤영선, 이용, 골키퍼 조현우 등이 값진 경험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수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 월드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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