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8년 만에 값진 승리를 거두며 대회를 마감했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세계최강 독일을 격파하며 많은 감동을 안겨줬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에만 도취돼 있을 수는 없다. 스포츠Q는 이번 대회 한국 축구가 남긴 의미와 보완점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한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은 답답함-기대감-해피엔딩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그 과정까지는 축구 팬들의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로 인해 격한 반응을 보이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 선봉엔 단연 대표팀의 수장 신태용 감독(49)이 있었다. 스웨덴을 ‘1승 제물’로 삼겠다고 밝힌 그는 지난해 12월 조 추첨 이후 스웨덴만을 바라보는 맞춤 전술 구상에 돌입했다.
그러나 월드컵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플랜 A를 확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답답함을 보였다.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다고는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판단이 적지 않았다. 스웨덴전을 앞두고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용병술을 쓰며 결과가 좋지 않자 ‘트릭’이었다는 발언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선수들 중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건 장현수(27·FC도쿄)였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도 줄곧 대표팀의 중앙 수비를 맡았지만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스웨덴전에도 불안감을 야기했던 그는 멕시코전 두 차례의 치명적인 실수로 패배의 원흉이 됐다. 이는 안정환, 박지성 등 국내 축구 해설위원들의 가슴도 답답하게 만들었다.
김민우(28·상주 상무)는 장현수 다음으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선수다. 스웨덴전 교체 출전해 때 아닌 태클로 결승골로 이어지는 페널티킥을 내줬다. 멕시코전에도 선발로 나섰지만 좀처럼 안정감을 보이지 못했다.
‘경험하는 무대가 아닌 증명해야 하는 자리’라는 월드컵에서 한국을 대표해 나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의 숙명이다.
그러나 끓어오른 민심은 이들의 경기력과 실수에 대한 지적에만 그치지 않았다. 장현수, 김민우가 연세대 출신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파벌’ 논란을 부추겼다. 장현수의 경우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부터 대표팀에서 가장 중용된 자원이고 축구계에선 뛰어난 라인 컨트롤과 발밑 기술 등으로 대중의 시선과 달리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다. 또 FC도쿄에서도 외국인 선수로서 이례적으로 주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 또한 뛰어난 선수다.
김민우도 군 입대 이후 다소 폼이 하락하기는 했지만 부상으로 낙마한 김진수(전북 현대)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왼쪽 수비수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는 점, K리그에서 동 포지션 최고 수준의 자원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을 달기 어려운 선수였다.
그럼에도 월드컵에서 부진을 이유로 발탁 자체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삼는 반응이 많아졌고 이러한 댓글들은 포털사이트에서 많은 공감을 사며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냈다. 신 감독의 대표팀 명단 발표 당시 이들의 발탁에 문제를 삼았던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반응이었다.
나아가 이들 뿐아니라 신 감독과 선수단 전체를 두고 인신 공격성 발언과 가족을 겨냥하는 악플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최고의 활약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골키퍼 조현우(대구FC)를 향해서도 가족에 대한 공격을 하며 괴롭히는 이들이 있었다.
그 시기도 아쉬웠다.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감독과 선수들과 경질 혹은 추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는 등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대회 기간 도중 지나친 비난은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장현수와 김민우는 1차전 이후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은 듯 크게 흔들렸다.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감독은 “한 선수가 성장하고 스타가 되려면 팬들의 칭찬과 비판이 절대적이다. 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지나고 보면 다 도움이 된다”면서도 “그러나 언제 그러느냐가 중요한데 장현수 선수 같은 경우 시기가 안 좋았다. 부정적인 여론을 조장하고 가족들을 끌어드려 선수들을 힘들게 하는 것 등은 앞으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카잔의 기적’을 일으킨 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선수단에 격려를 해주기 위한 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손흥민의 인터뷰 때 계란을 던지는 등 과격한 반응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최용수 감독은 “독일도 귀국할 때 계란을 던지는 등의 팬들의 소요가 없었다”며 “그런데 우리는 계란을 맞는 등 세계에 한국 축구 문화의 민낯을 보여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팬들이 비난, 비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객관성 여부를 떠나서 본인에게는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축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마음의 상처가 크다”고 전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감독의 행동, 발언 하나 하나에 거센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뜨거운 축구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도 과격한 팬 문화를 일삼는 ‘훌리건’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꼭 현장에서의 일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인터넷 속에서의 무책임한 발언 하나가 선수단에는 크나 큰 상처로 다가올 수 있고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말의 무서움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댓글 하나, 발언 하나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따끔한 쓴 소리인지, 단순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배설할 하나의 장치인지를 구분할 줄 아는 성숙한 비판 문화의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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