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 Tip!] 배구는 한국의 역대 올림픽 도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상적인 종목이다. 한국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 위업을 달성했다. 어느덧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진천선수촌에서 강화훈련 중인 한국 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은 40년 만의 올림픽 메달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크게 기합을 넣고 있다. 주장 김연경(28·페네르바체)부터 막내 이재영(20·인천 흥국생명)까지 한데 똘똘 뭉쳐 4년 전 런던 올림픽 4위라는 아쉬운 성적을 만회하고 활짝 웃겠다는 결의다.
[진천=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한국 여자배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브라질, 러시아, 일본, 아르헨티나, 카메룬 등과 함께 A조에 속했다. 미국, 중국, 세르비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푸에르토리코가 한데 묶인 B조보다는 나은 조 편성이라고는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도 한일전으로 시작되는 조별리그 성적에 첫 번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별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8강, 4강 대진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4강까지 오르면 마지막 목표인 메달까지 가기가 수월해진다.
4년 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해 36년 비원을 이루지 못했던 런던의 아픔을 새기고 있는 에이스 김연경과 첫 번째 메이저 세계대회를 준비하는 차세대 에이스 이재영의 '뜨거운 수다'는 진천의 훈련 열기와 기합소리를 뛰어넘는다.
◆ MVP보다 메달 획득 실패가 더 아쉬웠던 김연경, 마지막 올림픽에 '올인'
김연경은 런던 올림픽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당시 금, 은, 동메달은 브라질, 미국, 일본이 가져갔지만 세르비아전 34득점 등으로 올림픽 여자배구 최다득점상에다 MVP까지 수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을 더욱 원했던 김연경에게 MVP와 득점상은 큰 의미가 없었다.
"정말 리우 올림픽을 위해 4년을 기다려왔어요. 특히 메달이 결정됐던 3~4위전이 일본전이었잖아요. 예선전에서 이겼던 일본을 맞아 3-0으로 너무 허무하게 졌던 기억은 제 배구 인생에서 하나의 아픔으로 다가오죠. 그래서 더욱 리우 올림픽이 기다려졌어요. 이번에는 첫 경기부터 일본을 만나게 됐으니 운명이라고나 할까요."
일단 한국 여자배구의 첫 목표는 좋은 성적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각조 4위까지 8강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한국(9위)보다 세계배구연맹(FIVB) 랭킹이 낮은 아르헨티나(12위)와 카메룬(21위)은 확실하게 잡고 가야 한다.
또 8강 이후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높은 순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최국 브라질(3위)를 비롯해 러시아(4위), 일본(5위)과 맞대결에서 최소 1승 이상을 거둬야만 3위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
"조별리그에서는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한 경기, 한 경기에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해요. 조별리그 일정도 일본(8월 7일) 이후 러시아(8월 9일), 아르헨티나(8월 11일), 브라질(8월 13일)을 차례로 만나게 되어 있어요. 아르헨티나가 FIVB 랭킹이 우리보다 낮다고는 하지만 절대 무시할 전력이 아닙니다."
김연경은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에이스다. 첫 올림픽 출전이었던 4년 전에도 그랬고,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40년 만의 메달이라는 기대감도 받고 있다.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김연경은 담대하다.
"그걸 부담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봐요. 격려이자 기대죠. 이 정도의 기대를 부담으로 생각하면 안되죠. 오히려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고맙죠. 대표팀을 이끌어가고 해결해줘야 하는 것은 제 숙명이기도 하고요."
김연경은 올림픽 메달에 대해 무서운 집착을 보이고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도 있지만 김연경은 올림픽 메달이 선수인생의 최종 목표다.
"제게는 더이상 '다음'은 없어요. 리우 올림픽이 마지막이죠. 제 마지막 올림픽에 배구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 합니다. 제가 많은 것을 이뤄봤잖아요. 아시안게임에도 두 번 나가서 금메달을 따냈고 프로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요. 하지만 올림픽 메달은 내 선수인생의 마지막 꿈이에요. 메달 꿈만 이룬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는 셈이죠."
◆ 김연경과 많은 것이 닮은 막내 이재영, 그의 첫번째 올림픽 목표는?
옆에서 올림픽에 대한 각오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선배 김연경을 바라보는 이재영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여덟 살 위의 대선배가 인정해준 '차세대 대표팀 레프트'라고는 하지만 아직 이재영은 김연경이 멀고도 높아만 보인다.
"올림픽을 생각하면 기대 반, 걱정 반이에요. 항상 대표팀에 들어오면 설레기도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요. 언제나 언니들과 함께 뛰면서 실력도 많이 느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있어요. 대표팀 막내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운동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많은 배구인들이 이재영을 두고 '차세대 에이스'로 평가한다. 이미 고교 시절부터 남다른 활약을 보여주며 김연경의 뒤를 이을 차세대 레프트로 꼽아왔다. 아직 방년의 나이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에 기대감이 쏠리고 있다.
또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해머던지기 국가대표인 아버지 이주형 씨와 1988 서울 올림픽 여자배구대표팀 세터였던 어머니 김경희 씨의 '스포츠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쌍둥이 동생 이다영(수원 현대건설)과 함께 '스포츠 가족'이기도 하다. 대형 선수로 커나갈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된 셈이다.
이재영에게 리우 올림픽은 첫 메이저대회 출전이다. 2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부상 때문에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부상 때문에 뛰지 못했고 올림픽 예선전에서도 부상과 컨디션 저하 때문에 대표팀에 제대로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소속팀에서와 달리 대표팀에서 단 한 번도 확실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내 욕심만으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40년 만의 메달 획득에 일조하고 싶어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이재영은 세계 무대에서 뛰기에 적지 않은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리시브 불안이다. V리그에서도 상대팀이 이재영을 향해 목적타를 날릴 정도다. 이재영에게 리시브 불안은 풀어야 할 숙제다.
"많은 분들이 리시브 불안에 대해 얘기해주시고 저 역시 이를 고쳐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디 방법이 있나요. 그저 열심히 훈련하면서 고쳐나가야죠. 제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아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이재영의 목소리가 다소 기어들어가려는 듯 하자 김연경은 눈을 찡긋거린다. 이재영의 옆구리를 툭 치며 "야,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 자신감을 가져"라며 리시브 불안에 대해 설명한다.
"사실 에이스인데다 레프트의 숙명이 바로 리시브예요.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고쳐나가는 거고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보는 재영이의 리시브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많이 날아오고 실패가 있으니까 불안해 보이는 것이지, 스무살 나이에 이정도면 평균 이상이라고 봐요."
◆ 공통점이 많은 김연경과 이재영의 같으면서도 다른 올림픽
김연경과 이재영은 공통점이 참 많다. 우선 레프트라는 포지션이 같고 어린 나이에 팀의 에이스가 됐다는 점도 있다. 흥국생명이 V리그 정상을 차지했던 2006년과 2007년, 2009년 당시 김연경의 나이가 겨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그때도 김연경은 에이스였다.
또 김연경과 이재영은 흥국생명 출신이라는 공통 분모도 있다. 그래서인지 훈련 때도 서로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다. 시원시원한 김연경의 성격과 달리 이재영은 조용한 편이지만 정작 코트에 나서면 김연경처럼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서인지 이재영은 김연경을 친언니처럼 생각하며 평소 궁금했던 점이나 고민거리를 거침없이 말하고 김연경도 친동생처럼 여기며 보살핀다. 인터뷰 도중 둘 사이의 대화에서도 잘 느껴진다.
"처음 올림픽이라 긴장도 되고 대표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언니 뒤에서 제가 잘 지원을 해야할텐데 고민이 커요."(이재영)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너는 너대로 잘하고 있고 훌륭한 선수로 커나가고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갔던 것이 24살이었어. 이미 그때 에이스라는 말을 듣고 있긴 했지만 첫 경험이라 기대만큼 부담도 컸어. 그런데 너는 이제 20살이잖니. 걱정과 고민보다는 큰 기대감을 품고 좋은 경험을 쌓는다는 각오로 임하면 될거야. 열심히 하다보면 될거고, 네 자신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해."(김연경)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답게 막내를 보살피는 것도 김연경의 몫. 김연경이 주된 공격루트이자 에이스이긴 하지만 중심축으로서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훈련장에서는 김연경의 파이팅 소리가 그 누구보다도 크다.
"제가 이렇게 파이팅을 불어넣고 있는데 동생들이 뒤에서 어떤 소리를 할지는….(웃음) 농담이고요. 동생들도 다행히 저를 잘 믿고 따라줘서 힘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대표팀에서 분위기 메이커로서 항상 선수단을 긍정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것이라는 김연경과 이제 메이저 대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이재영의 리우 올림픽은 어떤 식으로 귀결될까. 많은 배구팬들은 김연경에게 '해피 엔딩', 이재영에게 새로운 에이스의 탄생을 바라고 있다. 에이스와 막내의 의기투합 속에 진천의 리우행 시계가 째깍째깍 재촉할수록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은 하나로 똘똘 뭉치며 점점 강해지고 있다.
■ 김연경 프로필 ■ 이재영 프로필 |
[취재후기]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과 달리 남자배구 대표팀은 계속된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올림픽 무대에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FIVB 월드리그에서도 최하위로 떨어져 배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런만큼 여자배구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여자대표팀은 다음달 22일까지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진행한 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일주일의 전지훈련을 진행하고 리우에 입성하게 된다. 한국 여자배구가 보여줄 뜨거운 열정에 팬들도 다같이 힘을 불어넣어준다면 남자배구도 힘을 얻고 국내 V리그 경쟁력도 그만큼 올라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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